매주 '로또' 사면서 버티는, 우리는 '지방대생'입니다

[벼랑끝 청년빈곤 ⑤] 취업인프라 부족해 '각자도생'하는 서현·규철씨

등록 2017.09.09 16:01수정 2017.09.0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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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 많으니까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 나눠 보세요." 한 청년이 인터뷰 내내 되풀이한 말이다. 새로운 사회의 출발선에 발을 내디딘 지금, 우리 청년세대의 절망은 짙고 깊은 골짜기에 있다. '88만원 세대'는 어느새 '77만원 세대'로 전락했다. 중산층 붕괴의 소용돌이에서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로 전이된다.

가중되는 취업난의 복판에서 청년들은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그나마도 '하루살이 인생'인 단순노무직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청년들이 숨 쉴 틈이 있어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길을 개척할 수 있다. 동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쓰기로 했다. 문제 해결을 모색하려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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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도 로또를 산다 ⓒ 연합뉴스


편의점에 들렀다. 로또 복권을 한 장 샀다. 매주 되풀이한다. 공부하는 데 온전히 집중할 만큼의 돈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서. 1등 당첨은 먼 나라 얘기다. '인생역전'의 단꿈은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박서현(가명·23·청주시 개신동)씨는 지난해 상경했다. 공인회계사 자격시험(CPA) 준비를 할 요량으로 서울에서 1년 넘게 살았다. 그에 앞서 반년 가까이 공장에서 일했다. 어렵사리 1천만 원을 모았다. 하지만 돈이 모자랐다.

인터넷 강의료, 교재비, 독서실 이용료를 합쳐 매달 40만 원쯤 되는 돈이 나갔다. 밥값에 고시원 월세까지 냈으니 한 달 100만 원 넘는 돈을 쓴 셈이다. 종국에 가서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고시원 월세 낼 돈이 없어 부모에게 전화했다. 전화할 때마다 어머니는 "후우" 하곤 거푸 한숨을 토했다.

한동안 아무 말 않던 서현씨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고. 서현씨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달팽이집보다 못한 작은 방은 적막에 잠겼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홀로 숨죽여 울었다.

한국디지털정책학회가 발간한 '디지털융복합연구'에 실린 논문 <융복합시대 우리나라 지방대학생의 경제적·일상적 좌절에 관한 연구>(유지영, 2016)를 살펴보면, 연 소득 평균 5천만 원 미만 가구의 자녀가 지방대 학생의 전형으로 드러난다. 서울 소재 대학생 자녀의 집안은 한 해 평균 7085만 원을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현씨는 때때로 같은 꿈을 지닌 친구들에게 하소연했다. 그들은 서현씨를 품에 안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위로는 공감없는 동정에 불과했단다. 이들의 생애엔 한숨이 섞일 여지가 없었다. 애초 수험생활에 드는 뒷바라지 일체를 부모가 떠안았던 게다. 그들의 프리즘을 통해 본 서현씨 삶은 별세계였다.

"고3 때 정시 전형에서 '인서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점수가 나왔어요. 하지만 서울에서 지낼 형편이 되지 않아 포기한 적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지방 국립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취업을 할 때도 학벌이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돼요."

"지역 아르바이트, 카페·술집·식당이 고작"

지역 청년으로서 소외감을 느끼는 박서현씨 ⓒ 박동우


회계 전공이 적성에 맞아 회계사가 되리라 결심했단다. 국내 4대 회계법인 본사는 서울에 자리 잡았다. 처음엔 "서울에서 취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1년 서울에서 지내다 온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서현씨는 "현실적으로 서울에 거주하면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회계나 세무와 관련된 인턴 일자리를 간절하게 원했다. 간혹 뜨는 채용 공고를 살폈다. 죄다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곤 음·식료 서비스 업종이 전부였다. 취업용 경력 쌓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분석한 2015년 신규 채용공고 650만 9703건 가운데 73.3%가 수도권에 몰렸다. 정보도, 정책도, 인프라도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 공화국'이 대한민국을 표상하는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정책에 방점을 찍었지만, 서현씨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는 "일자리를 늘리는 건 물론 좋지만, 왜 우리 사회가 점점 개천에서 용은커녕 도마뱀도 나올 수 없게 바뀌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현씨는 차라리 전문직을 꿈꾸는 지방 청년들이 체감하는 진입장벽을 낮춰달라 호소했다.

"옛날엔 가난한 촌놈들도 오랫동안 공부 많이 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었고, 판·검사도 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로스쿨이 도입된 이래 가난한 학생들은 꿈조차 꾸기 버거운 형편이 됐어요. 저도 '회계사'라는 전문직을 준비하지만, 출발선이 한참 뒤처진 저는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막 새로 출발선에 선 다른 사람들과 같이 경쟁할 수 있게 됩니다."

외환위기 겨울바람을 맞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의 삶. 하버드대학교에 가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공부해 미국 '아이비리그' 프린스턴대학교에 특차합격한 열아홉 살 소년의 이야기. 학창시절 서현씨는 김현근씨의 자전 에세이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를 읽으며 꿈을 키웠다.

현실과 맞닥뜨린 순간, 책 제목은 신기루로 사라졌다. 이내 깨달았다. 자기 처지엔 거창한 제목이 어울리지 않았음을.

"가난은 대물림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수성가로 중산층이 되기엔 제약이 있다고 봅니다. 제 처지엔 오히려 '가난하면 꿈조차 마음대로 꿀 수 없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말 같아요."

"불투명한 미래, 차라리 '군대'가 나아"

지난 6월21일 오후 이규철(가명)씨가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취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규철씨는 제 손으로 삶을 개척하는 게 익숙했다. ⓒ 박동우


중부권의 한 사립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선배들 열에 일곱 여덟은 제약사 영업직 자리를 얻었다. 첫 월급은 대체로 300만 원 안팎이었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은 대신 비정규직 일색이었다. 회사 경영 사정이 나빠지면 정리해고 1순위다.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선배들은 없었다.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학과 선배들이 들려준 얘기를 듣고 나니 맥이 빠졌다. 하릴없이 놀며 1학년을 보냈다. 학점은 1.73점(4.5 만점)을 기록했다. 이규철(가명·26·천안시 두정동)씨는 2012년 1학기 장학금을 받고서 캠퍼스에 입학했다. 그는 신입생 가운데 입시 성적이 뛰어났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듬해 규철씨는 해군 사병으로 입대했다. 부사관 모집에 지원했다. 불투명한 미래에서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내맡기느니, 학비와 생활비를 벌 심산이었다.

부모는 규철씨가 속히 대학교를 졸업하길 바랐다. 사실 규철씨 가족은 차상위계층이다. 쌀을 받으려고 그가 직접 주민센터를 찾은 적도 있다.

옛날 인천 연안부두에서 중국집을 운영한 아버지는 장사 수완이 좋았다. 전에 들어섰던 식당의 하루 매출이 40만 원 안팎이었는데, 규철씨 아버지는 200만 원까지 끌어올렸다. 한 달 매출은 6천만 원쯤 기록했다.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고교 시절 건물주와 상가임대차계약 기간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났다. 영업 실적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빚이 쌓였다. 아버지가 오롯이 대출 부담을 지겠다며, 이혼 얘기를 꺼냈다. 부모님은 결국 헤어졌다.

불행은 잇따라 들이닥쳤다. 세 살 터울인 손아래 동생이 학교폭력 피해자 신세가 됐다. 학교 당국은 가해자 처벌에 뜨뜻미지근했다. 사안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고양 외할머니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부모님은 어쩌다 한 번씩 10만 원 정도 생활비를 줄 뿐이에요. 온전히 제가 번 돈으로만 스스로 먹고 살죠. 등록금도 제가 다 벌어다 내고 있어요."

정비 자격증을 따서 1년 4개월 동안 전문하사 신분으로 군에 복무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면 퇴근하는 일상이었다. 내친김에 부사관으로 2년 일한 뒤 육군 항공운항직 준사관 선발시험에 응시하기로 결심했다. 한동안 관사에 틀어박힌 채 토익과 국사 공부에 열을 올렸다.

"일 자체는 편하지 않아도 헬기를 조종하는 거라, 비행 경력이 쌓이면 나중에 월급을 300만~400만 원 정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비행수당, 생명수당, 일과수당, '떡값'이라 하는 상여금까지 다 받으면 그 정도 나와요."

맥주 만들겠다는 꿈... 준비는 오롯이 내 목돈으로

지역 청년으로서 소외감을 느끼는 이규철씨 ⓒ 박동우


먹고 살 궁리만 하던 삶에 하고픈 꿈이 들어찬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우연히 수제맥주를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내놓은 군납용 맥주를 맛본 게 계기다. 풍부한 맛과 향에 반했다. 규철씨는 17만 6천 원을 들여 부대 내 PX(매점)에서 병맥주 여덟 상자를 싹쓸이했다. 틈날 때 한 병씩 들이키며 장차 맥주를 생산하는 모든 공정을 책임지는 '브루마스터(Brew Master)'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 뒤로 규철씨는 준사관 선발시험 준비를 관뒀다. 지난해 복학했다. 미래를 둘러싼 밑그림이 생기자 학업 의지가 솟구쳤다. 2016년 2학기 성적향상장학금 122만 원을 받았다.

맥주 제조 공부도 빼놓지 않았다. 4만 원을 들여 플라스틱 통 '발효조(곡물에 누룩과 효모를 섞어 발효하는 용기)'와 25리터짜리 곰탕 냄비를 장만했다. 직접 맥주를 만들고, 마시면서 달라지는 맛을 살폈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찾느라 며칠 골똘히 고민한 적도 있다.

언젠가 학교에서 취업설명회가 열렸다. 군부대에서 맛을 본 맥주를 만든 회사 관계자가 학교를 찾았다. 규철씨는 "내가 엄청 좋아하는 맥주"라고 운을 뗐다. 업체 간부가 반색했다. 그는 규철씨에게 "나중에 서울로 놀러 오라"며 함께 맥주 마시자고 말했다.

방학을 노려 발품을 팔았다. 올해 7월 들어선 강원도 횡성 맥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도 여기저기 다니며 맥주 장인을 만나고, 주류업계 실무에 종사하는 이들을 찾았다. 취업설명회에서 눈길이 간 업체의 서울 본사도 들렀다. 관계자는 이사 직급이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진짜 올 줄 몰랐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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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 pixabay


서울과 천안을 오가랴, 등록금 내랴, 자취방 월세 내랴 곳곳에 돈을 썼다. 군 생활하며 악착같이 저축한 목돈 1200만 원을 1년 만에 날렸다. 규철씨는 중노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군대에서도 거의 막노동을 하다 온 터라, 일하는 것에 대해선 거부감이 없어요."

6월 한 달 동안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공장에서 매주 두 차례 일용직 파견 근로를 했다. 바닥에 구멍을 뚫어 배선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아침 9시 출근해 저녁 6시까지 근무하면 일당 10만 원이 손에 쥐어졌다.

취업인프라 빈터엔 '노력'과 '자기애' 강조만 남아

취업 준비에 힘을 쏟으면 가난이 스몄다. 가난을 내쫓아 겨우 구직의 발판을 마련하면 기반이 쑥 꺼졌다. 빈곤과 노동의 악순환, 그 복판에서 취업 준비를 한다. 규철씨는 제 손으로 삶을 개척하는 게 익숙했다.

"학교 선배들을 보니까 자기 스스로 찾아다닌 이들이 확실히 취업을 잘하더라고요.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취직하기 어려워요."

지방대 학생이 할 수 있는 건 치열한 노력과 자기애로 귀결된다. 기성세대가 해줄 말도 달리 없다. 강혜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지난해 펴낸 논문 <지방 사립대학 졸업생의 희망 대기업 취업성공과정 연구>에서 "지방 사립대 졸업생들이 성공적인 취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 자기결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반이 빈터엔 개인만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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