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취급 받던 우리 아이, 중국에서 서러움 풀다

한국에선 일부의 잘못 때문에 '맘충' '유아충' 낙인, 중국에선 '보배'라 불리며 배려받아

등록 2017.09.12 20:18수정 2017.09.1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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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아들의 손을 이끌고 길을 나선다. 걸어가기에는 멀고, 택시를 잡아타기에는 가까운 애매한 거리의 외출이다. 잠시 마른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이내 버스를 타기로 결심한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제 무릎보다 한참 높은 버스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아들을 낚아채다시피 들어 올려 재빨리 버스에 몸을 싣는다. 


아이에게 차창 너머로 흘러가는 바깥세상은 신기한 것투성이다. 요즘 들어 부쩍 '왜?' 라는 질문이 많아진 아이에게 눈에 힘을 잔뜩 주며 '입 다물고 얌전히 있으라'고 엄숙하게 타이른다. 애꿎은 운전사 아저씨를 무서운 사람으로 만들어 가며 겁박을 해보기도 하지만, 실상은 아이에게 통사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게 제발 조용히, 그리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게 도와 달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아이에게 애원하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소리 높여 엄마라도 부르면 나는 화들짝 놀란 토끼 눈으로 '조용히 하라'며 아이의 입부터 틀어막는다. 주위에서 차가운 눈빛들이 쏟아진다. 어디 감히 미취학 아동을 동반한 엄마 주제에 겁 없이 집 문을 나섰느냐는 무언의 질책과 경멸 어린 눈빛이 사방에서 날아들어 가슴에 박힌다.

상대를 '벌레 보듯 한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8세 미만 어린이를 데리고 집 밖을 나서는 행위는 나와 내 어린 아들 이마에 '맘충'과 '유아충'이라는 낙인을 하나씩 나눠 붙이고 다녀야 하는 용서받지 못할 행위가 되고 말았다.

'보배'와 '친구'로 불리는 중국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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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아이들(자료사진) ⓒ flickr


나는 현재 중국에 거주 중이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두 나라의 사회 분위기나 문화에 대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저울질하곤 한다.


흔히 중국의 육아를 생각하면 '소황제(小皇帝)'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산아제한 정책으로 한 자녀밖에 갖지 못하게 된 중국의 부모들이 자식을 황제 받들 듯 애지중지한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란 게 어디 한국 사람만의 이야기일까.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소황제', '소공주'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만큼 귀하고 어여쁜 자식이라는 애정의 의미이지만, 너무 '오냐 오냐'하고 키워서 버릇없고 이기적인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 역시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이 부정적인 의미가 널리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의 육아관을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엿볼 수 있는 새로운 단어를 소개해볼까 한다.

중국에서는 '아기'를 '바오베이(宝贝)'라고 부른다. 정해진 규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갓난아기부터 두 돌 전후의 아이들을 보통 이렇게 부른다. 두 돌 이후의 아이부터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은 '샤오펑요우(小朋友)'라고 부른다. '宝贝'라는 단어를 우리 식으로 독음하면 '보배'라는 한자어다. 중국인들은 아이들을 보고 '보배야. 보배야', 혹은 '꼬마 친구'라고 부르는 셈이다.

비단 호칭만의 문제가 아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유난히 강한 중국 사람들이지만 아이를 데리고 길을 나서면 사정은 달라진다. 남녀노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어머나, 이 보배는 몇 개월이에요?", "꼬마 친구, 안녕? 몇 살이야?"하며 살갑게 아이를 대한다. 아이가 있기 전에는 찬바람 쌩쌩 몰아치며 그렇게 차갑기만 하던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나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닌 사람들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난 5년간의 중국 생활에서 경험한 가장 짜릿한 반전이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유아용 식탁이 잘 구비되어 있고, 어린아이들을 위한 풍선이나 사탕을 마련해둔 곳도 많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듯한 앳된 얼굴의 직원들도 아이에게 대체로 상냥하다. 기계식으로 교육받은 서비스가 아니라, 세련되진 않아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함과 애정이 느껴지기에 두 손을 맞잡고 감사의 인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인다. 우리 아이를 무례하고 개념이 없는 '벌레' 보듯 하지 않고 그냥 사람의 아이로 봐줘서 감사하다고, 우리 아이에게 따뜻한 눈빛과 미소를 보여줘서 고맙다고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

한국 엄마들은 어쩌다 '맘충'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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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자료사진) ⓒ flickr


물론 한국에서 최근 일고 있는 '교양 없고 매너 없는 엄마'들의 행동에 대한 분노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식당에서 아이 기저귀를 버젓이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갔다거나,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김밥 한 줄을 당연한 서비스로 요구하는 행동은 누가 보아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던 '엄마'라는 신분 자체가 잘못의 원인으로 지적받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결혼 전 한국에서 영업점 대민 서비스 업무를 담당했었다. 많을 때는 하루 200여 명의 고객 업무를 처리하면서 각계각층,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에는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이 더러 있었다. 막무가내식으로 매너 없이 행동하는 사람 중에는 커피 한 잔 내오라던 고명하신 대학 교수님, '금배지'를 달고 영업점이 떠나가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시의원님, 직원의 실수와 태도를 꼬치꼬치 지적하던 중학교 선생님, 긴 대기 시간에 불만을 품고 영업점을 한바탕 쑥대밭으로 만들고 간 어느 대기업 과장님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있었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되지 않는 일을 '빨리해내라'며 드러누우시던 일흔 넘는 어르신, 신분증이 없이는 업무 처리가 어렵다는 설명에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으며 돌아서던 고등학생 등이 기억에 남는다.

만일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며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엄마를 싸잡아 '맘충'으로 불러야 한다면, 우리는 '노인충', '교사충', '학생충', '직장인충'이라는 신조어를 당장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행동이 한 개인의 일탈과 비매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난을 해당 직업군이나 연령, 성별로 일반화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엄마들만이, 그리고 그런 엄마를 따라다니는 어린아이들만이 일부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한꺼번에 '죄인'도 아닌 '벌레'가 되어야 하는가?

대상을 규정하는 방식이 세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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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충이라는 말에서 온전히 벗어나 당당하고 행복한 엄마가 있을 수 있기는 한 건가. ⓒ pixabay


'공공시설의 서비스나 위생은 여전히 중국보다 한국이 우수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에는 중국이 훨씬 마음 편하다.'

중국에서 육아를 경험한 엄마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물론 중국이라고 해서 공공질서를 해치는 아이들의 버릇없는 행동까지 이해받아 마땅하다는 말은 아니다.

정부는 인구절벽, 역대 최저 출산율, 초고령 사회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며 출산 장려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나고 자라는 사회가 아이를, 그리고 엄마를 '벌레 보듯'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엄마는 내 아이가, 그리고 내 이웃의 아이들이 사랑과 관심 어린 애정 속에서 자라나는 사회를 꿈꾼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눈치받을 바에는 차라리 커다란 가방 하나를 더 이고 다니는 게 낫다'는 어느 '육아맘'의 푸념을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우리 아이들을 그저 아직은 덜 성숙하고 불완전한 한 인격체로 봐줄 수 있는 아량이면 족하다. 대다수의 부모가 통제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때와 장소에 맞는 예의와 올바른 습관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만 하면 된다. 우리 아이들을 '보배'까지는 아니더라도 '꼬마 친구'로만 바라봐 줄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제 자식만 생각하는 맘충의 이기적인 욕심일까.
#맘충 #한국육아 #중국육아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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