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꼬치 요리의 환상적인 맛, 한국에서도 맛보고 싶다

바람의 나라 오키나와 5 - "도리요시 사장님, 우리집 골목에 분점을 내 주세요"

등록 2017.09.06 16:40수정 2017.09.0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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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여행에서 츄라우미 수족관은 대단한 명소다. 어딜 뒤져도 오키나와 추천 여행지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하지만 유명세에 압도되지 않고 생각할 의지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먹는 것만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고래상어를 빼면 그다지 대단할 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수족관이 크면 감동도 클 거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기대를 내려놓고 산책하듯 들르면 만족감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단독 건물이 아니라 해양박 공원이라는 관광단지의 일부다. 고래상어 말고도 더 볼 게 많은데 상대적으로 츄라우미의 명성 때문에 오히려 다른 볼 거리를 놓치게 된다. 우리도 츄라우미만 볼 계획으로 시간을 박하게 잡아놨더니 현장에서 다른 곳을 들러보려고 해도 가 볼 짬을 내기가 어려웠다. 하다못해 공원 내 놀이시설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종류다. 애들은 보자마나 정신없이 달려간다. 내 아이와 낯선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깔깔거리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지다.


그 다음으로 좋았던 건 그래도 고래상어. 그리고 오키짱 공연(돌고래 쇼)이다. 나머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어두운 실내에서 사는 물고기들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나중에 어린 아이에게도 무엇을 기억하는지 물어봤으나 거기서 사 온 오징어 인형만 아직 가지고 놀 뿐 기억은 비어 있었다.

돌고래와 고래상어를 보며 감상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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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라우미의 명물 고래상어 고래상어의 유영을 보고 있자면 최면에 걸린 듯 몽롱해진다. ⓒ 강현호


고래상어는 그 거대함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그 큰 생물이 미끄러지면 수족관을 느리게 도는 걸 보고 있자니 어쩐지 최면에 걸리는 듯했다. 환경은 딱 좋다. 어두운 쪽에 서서 집중이 잘 되는 밝은 물 속을 유유히 반복해서 도는 무언가를 보는 것 말이다.

그런데 그 최면은 정신이 조종당하는 게 아니라 졸음이 나를 덮치는 쪽으로 발현되었고 나는 고래상어를 앞에 두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스르륵 맨바닥에 앉았다. 포즈는 사진을 찍는 것과 유사했으나 눈이 자꾸 감겨서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잠깐 졸았다. 여행객이 누릴 수 있는 최단기간의 꿀잠이었다. 그대로 고래상어의 유영을 그려보며 한동안 잠을 청하고 싶었으나 일어섰다. 가족들이 이미 한참 앞서가고 있었다.

오키짱 공연은 야외해서 진행되는데 부랴부랴 달려갔음에도 시작 시각 15분 전에 도착하니 앉을 자리가 없이 꽉 찼다. 어찌어찌 엉덩이를 비집고 자리를 잡아 보긴 했는데 고래들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아이들이었다. 우리 아이도 그야말로 넋을 놓고 보면서 손뼉을 얼마나 쳐 댔는지 모른다. 그렇게 몰두해서 바라보는 건 남이 먹는 아이스크림과 '코코밍(견습엔젤이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후 처음이었다.


고래들이 조련사와 약속한 대로 요리조리 움직이고 익살스럽게 물을 튕겨내는 모든 행동이 감탄스러웠다. 정말 고생깨나 했겠다 싶다. 저 훈련을 다 견디어 내다니. 고작해야 정어리가 보상의 전부일 텐데 말이다. 사람이라면 보너스를 받아 저녁에 시원하게 맥주라도 마시며 피로를 풀겠으나 돌고래들은 그러지도 못하지 않나. 보고 웃지만 또 짠하다.

고래들은 퇴직금도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괜히 생각이 깊어진다. 이런 거 봐도 되는 거냐. 어쨌든 동물 잡아다가 고생시키는 건데? 그때는 스스로에게 답을 못했으나 이제는 조심스레 답해본다. 봐도 된다. 그리고 기왕에 쇼를 하고 있다면 그건 유지될 명분이 있다.

아이들이 동물을 보고 만지고 느끼지 않으면 그것을 아끼고 사랑할 수 없다. 그럼 밀렵이 자행되고 한 종이 멸절된다고 한들 그 아이들은 울지 않을 거다. 동물에 대한 애정을 키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TV 화면만으로는 생명이 얼마나 존귀한지 배우기는 모자라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 산에 가보지 않은 인간은 케이블카가 그저 편리하기만 할 뿐인 거다.

고생하는 돌고래들에게 초음파로 말해주고 싶다.

"너희들이 고생하는 덕에 너희 돌고래 족속들이 밀렵당하고 살육당하는 걸 막아주는 인간들이 생겨나는 거야. 고생이 많다."

뭐 그래봐야 어디까지나 지극히 인간적인 해석이다. 육식동물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이랄까.

감상에 젖어 돌고래 걱정해 주는 척 했지만 그래봐야 나는 인간이다. 육식의 매듭은 풀 수 없고 이왕 풀 수 없는 매듭이라면 맛있게 간직해 주고 싶다. 우리는 넓은 해양박 공원을 돌아다니느라 빈 위장에 고기를 채우러 움직였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외할머니 댁은 하루에 버스가 몇 번 안 들어가는 시골이었다. 거기엔 식당이 없었다. 외부인을 불러 와 큰 농사 짓는 것도 아니고 다들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니 식당은 무용지물이다. 슈퍼마켓도 드물어서 '전방'으로 불리는 구멍가게가 마을 입구에 한 개 있는 게 전부였다.

그런 시골에서는 음식냄새가 유독 진하게 퍼진다. 특히 고기를 삶고 굽는 냄새는 유난히 좁은 돌담 골목을 가득 채우기 마련이다. <도리요시>의 간판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외할머니댁 정겨운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겼다. 진한 불의 향이다. 침을 절로 삼키게 되는 순간이다. 

좀 으스스할 정도로 외진 곳이다. 하지만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한 후로는 그런 한가한 느낌 따위 잊고 만다. 빈 위장에 위산폭포가 쏟아지고 있다. 빨리 단백질을 밀어 넣어 주지 않으면 이대로 무릎이 꺾이고 말리라. 이미 잠든 아이를 들처 업고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펼쳤다.

사실 이 식당은 이번 여행 중 내가 벼르던 곳이다. 꼬치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하코다테에서 닭꼬치를 기가 막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 그 기막힘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하여 사전에 샅샅이 검색했고 철저히 준비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블로그에서 이 식당 후기를 뒤져 메뉴판을 찾아보고 일본어 해석도 해 두었다. 일본어로 주문을 못할지언정 뭔지는 알고 시켜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출발 전날까지 잠을 쫓아가며 일본 맛집 사이트까지 뒤졌다.

기막힌 맛의 일본 꼬치 요리, '왜 우리는 이런 걸 못 만들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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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요시의 아구 돼지구기 구이다. 살캉살캉 씹이는 맛이 일품. ⓒ 강현호


그런데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식당에 와 보이 떡하니 한글 메뉴판이 있질 않은가. 숨겨진 맛집이라는 소문을 접했으나 어느새 유명한 맛집이 된 듯했다. 한 꼬치에 20분 걸린다더니 우리에게는 3분 요리처럼 빨리 당도했다. 뭐 어쩌랴. 난 개척가보단 먹보가 좋다.

꼬치를 1개씩 종류별로 시키고 아구(오키나와 특산 돼지)요리도 시켰다. 먹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최고의 닭꼬치라고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맥주 한 잔 못 마셨고 실내에 손님이 거의 없어 조용했으며 실내에 연기 한 줌 감돌지 않아서 분위기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내에서 고기를 굽는 식당이라면 응당 연기가 자욱해야 한다. 연기없는 꼬치집이라니 너무 삭막하다. 

놀라운 맛이야! 하고 강력한 감탄사를 써 줄 수는 없다고 해도 2017년까지 먹어본 꼬치 중에서 3손가락 안에 든다. 특히 닭고기 경단이라고 소개된 츠쿠네, 닭날개 만두, 아구 소금구이는 일품이었다. 국내에서는 결코 먹어본 적 없는 독특함이 있다.

왜 이런 걸 만들지 못하느냐고 국내 요식업계인들을 원망하고 싶다. 만약 이 세 가지 메뉴를 걸고 한국에 지점을 내려는 사업가가 있다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투자를 하겠다. 대신 지점 위치는 우리집 근처여야 한다. 퇴근길에 들러 실컷 먹을 수 있게 구석 자리 하나쯤 늘 내어주는 조건이다. 종일 손님이나 상사에게 뒤흔들려 혼은 나갔고 이제 허벅지에 힘조차 들어가지 않아 주저 앉고 싶을 때 꼬치 한 잎 베어 물고 시원한 맥주 한 잔 원샷하면서 힘을 내기에 이 만한 곳이 없겠다.

내 투자는 안 받더라도 부디 한국에 분점이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분점이 생겨난다면 제발 인스턴트 식품을 전자렌지에 데워오면서 일식전문이니 일본식 이자카야니 하는 따위의 일본 정치인식 망언은 할 생각은 제발 하지 않아주길 바란다. 이 분위기와 맛과 공을 그대로 옮겨와주길 바란다. 4월의 오키나와 시골 어딘가에서 아련한 정다움에 빠져들게 하는 이 아늑함을 곱게 담아주기 바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편의점을 털었다. 양껏 털고 싶었으나 <도리요시>에서 밤참용으로 포장해온 음식이 있었으므로 참기로 했다. 술과 과자 정도였나보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 걸 보니 편의점표 식품은 그다지 맛이 없었던 듯하다. 맛의 여운에서 너무 차이가 나니 도리 없다.

다만 숙소에 돌아와 창문을 활짝 열었던 기억은 분명하다. 우리 속소는 옆으로는 수영장, 앞으로는 바다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바람은 그렇게 말랑말랑했다. 춤을 추듯 창턱을 타 넘으며 커튼을 헤집은 바람이 등을 훑는데 절로 의자에 몸을 기대게 된다. 마침 뜨거운 물로 샤워까지 마친 상태였다. 적당히 어두운 실내에서 참고 참다 뒤늦게 들이킨 맥주에 취기가 뭉근히 올라오고 바람이 나를 만지작거리니 생각은 옅어지고 근육은 풀어진다.

이때만은 통장잔고도, 잃어버린 젊음도, 쌓여 있는 일거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바람인지 맥주인지를 자꾸만 들이켜고 홀짝인다. 밤이 깊어지면서 말랑말랑 밤바람은 어느새 찬 기운이 감돌았으나 날카롭지 않았다.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만큼 내 기분을 다듬어주는 상쾌함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는 내내 미세먼지 수치 확인하고 창문틈새 여미는 게 일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어디든 문을 활짝 열어두고 살았다. 아. 바람이 이리도 기분 좋은 것이었구나. 그래서 유하 시인이 바람이 불면 그렇게 압구정동에 가라고 했던가.
덧붙이는 글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오키나와 #츄라우미 #도리요시 #닭고치 #해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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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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