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뒤 '엄마', 앞으로 옮겨... 작가의 일은 이런 것"

[인터뷰] 8일 정정엽 작가 '49개의 거울전' 열려... 여성들의 역경과 고독 표현

등록 2017.09.08 17:40수정 2017.09.0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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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개 거울전 옆으로 흐르는 눈물,200x270cm, 49개 손거울 ⓒ 박건


한국과 현대 사회에서 여성과 생명, 공존 문제들을 다양한 예술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는 정정엽 작가가 이번에는 거울을 들고 나선다.

여성들의 지난했던 역경과 고독의 세월. 그 안에 담긴 깊은 한숨과 때때로 한줄기 빛 같았던 웃음을 거울이라는 매체로 이끌어낸다. 정정엽이 보여주는 거울은 세대를 초월한 여자이며, 삶이며, 작가 자신이다. 49개 이야기 속에 유머와 슬픔이 섞여 다채롭게 펼쳐진다.(정창미/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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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개인전 정정엽 거울전 스페이스몸미술관 전시장면 ⓒ 정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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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개인전 49개 거울 스페이스몸미술관 전시 모습 ⓒ 정정엽


충북 청주시 스페이스몸미술관에서 '사물사고'를 주제로 릴레이 전시가 열리고 있다. 4가지 사물을 네 작가의 느낌과 사유로 풀어 보는 전시다.

앞서 이종목, 김을 작가 전시가 있었고, 이어 3번째로 정정엽 작가의 개인전이 펼쳐진다. 주제는 거울이다. 스페이스몸미술관(서경덕 관장) 측에서 오래되고 버려진 거울들을 모아 작가에게 건넸다.

하여 작가노트의 첫 문장은 "49개의 거울이 내게로 왔다"로 시작한다. 다음은 전시를 이틀 앞둔 6일 작가와 나눈 대화다.

- 왜 49인가?
"미술관에서 거울을 건네받고 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49개였다. 주인의 손을 떠난 거울들이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떠도는 기간이 49일이다. 시간을 간직한 거울인 만큼 그사이에 많은 사연을 담아내고 싶었다. 예전에 하던 콩과 팥 작업과 같이 소재는 달라도 여성 입장에서 작업을 풀어 나갈 생각이었다."

- 거울을 처음 받고 든 느낌은?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 왜?
"오래된 거울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아름다웠다. 섣불리 손을 대기가 조심스러웠다. 주인의 손을 떠나온 거울이다. 당연 상처도 사연도 많을 거다. 처음엔 보기만 했다. 편지를 쓸까! 묘비명을 지을까? 거울 하나하나에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점점 친숙해지고 설렘으로 바뀌게 되었다."

- 벌레와 나방을 그려 넣은 거울도 있다.
"옛 거울을 보면 장식으로 모란꽃이 그려 있다. 붉은 작약 칠이 벗겨져 낡았지만 벌레들을 그려 넣어 그 시절과 현재를 만나게 하고 싶었다."

- 나비가 아니라 웬 나방인가?
"거울은 혼자 본다. 우월감보다는 여러 감정으로 보게 된다. 남 몰래 울 때도 있고 속으로 삭혀야 할 때도 많다. 거울을 그런 자신을 비추고 흐느끼고 스스로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환한 대낮 보다 밤의 외로움과 고독과 어울린다. 화려한 나비가 아니라 소외받고 멸시 당하는 여성의 아픔을 상징하는 벌레다."

- 작업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점이 있나?
"오래된 거울이 아니라 현재 거울로 재탄생하는 거다. 옛 거울이었는데 작가를 통해 오늘과 만나게 된다. '작가가 할일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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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정엽 개인전 ⓒ 정정엽


- 특별한 거울이 있다면?
"뒷면을 돌려 보니 '엄마'라고 글자를 쓴 거울이 있었다. 그래! 엄마는 늘 뒤편에 있었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글씨를 그대로 먹지에 베껴 거울 앞면으로 옮겨 썼다."

- '옆으로 흐르는 눈물'은 베갯잇을 적시는 눈물 같다.
"이 작업의 거울은 내가 모은 것이다. 친구가 준 것도 있고, 새로 산 것도 있다. 이 작품도 49개로 맞추었다. 눈물 한방울 속의 49개의 작은 손거울들은 방울방울 별빛이고 눈꽃이다. 살아온 날의 문양, 흔적으로 거울너머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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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개인전 ⓒ 정정엽


- 뜻 모를 글자들도 보인다.
"닿, 눌, 흘, 춰, 슨, 믓, 옵, 뵈, 픔, 핍. 꾸, 느, 렁, 져, 헤, 딨…. 이 글자들 하나로는 의미도 해석도 불가능하지만 글자가 전해주는 울림, 착잡함은 긴 여운을 남긴다. 무엇인가를 말하기위해 길 없는 길을 헤매는 심정, 땅과 살과 하늘을 오가며 움켜지고, 놀고, 버리며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뜻 모를 단어들과 연상된 사물의 그림들을 조합한 16개의 거울은 부표 없이 떠도는 우리네 삶과 같다. 모호한 우리 삶 속에서 명확한 말로 표현해 내기 힘든, 그렇지만 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소리이자 글이다(정창미/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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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개인전 포스터 49개의 거울- 스페이스몸미술관 ⓒ 박건


덧붙이는 글 전시명: 정정엽의 '49개의 거울전'
일시: 2017.9.8~9.28 Opening 9.8 금 6시
장소: 스페이스몸미술관 2, 3 전시장
주소: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 1205번길 183 (043-236-6622)
#49거울 #정정엽 #몸 #박건 #사물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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