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왕국'이 완성된 순간, 신격호의 시대가 저물었다

[강남공화국의 민낯11] 송파구 잠실이 롯데왕국이 되기까지

등록 2017.09.10 11:57수정 2017.09.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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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사업가 신격호(일본명 시게미쓰 다케오)가 박정희 정권의 부름을 받아 국내에 진출한 때는 1967년이다. 그해 롯데제과의 설립을 시작으로 롯데그룹은 성장을 거듭하여 재계 5위의 대재벌로 변모했다. 일본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는 롯데그룹의 전체 매출액은 90% 이상이 한국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국내 롯데그룹의 법적 지위는 일본 롯데홀딩스 산하의 한국지사에 불과하다.

재일교포 애국기업이라는 환대 속에 국내에 진출한 롯데그룹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각종 세금면제를 비롯한 온갖 특혜를 누려왔다.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진 범정부적인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롯데그룹은 서울 중구 소공동에 거점을 확보하고, 송파구 잠실에 롯데왕국을 건설하여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롯데백화점이 롯데쇼핑센터로 허가 받은 사연

1970년 10월 서울시는 부정식품단속반을 편성, 695개 업소와 시중에 유통되는 751개의 식품을 수거하여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141개 업소와 227개 식품에서 문제가 적발됐다. 서울시는 11월 12일 이들 업소와 식품제조사에 대해 3개월간 제조정지 명령을 내렸다. 당시 문제가 적발된 227개의 식품 중에는 쇳가루와 모래가루가 검출된 롯데제과의 바브민트껌과 스피아민트껌도 포함돼 있었다.

이즈음 외자유치의 일환으로 대통령 박정희는 롯데제과 사장 신격호를 국내로 불러들였다. 신격호가 주일대사 이후락과 함께 귀국길에 오른 것은 롯데껌에서 쇳가루와 모래가루가 나왔다는 소식이 보도된 11월 13일이었다. 그날 청와대에서 신격호를 만난 박정희는 롯데껌 파문을 무마해주면서 소공동에 위치한 반도호텔을 인수하여 호텔을 지으라고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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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호텔 박정희 정권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국제관광공사 소유의 반도호텔은 1974년 6월 3일 매각 입찰이 실시되어 42억원에 롯데에 낙찰되었다. ⓒ 국가기록원


롯데그룹의 본격적인 한국 진출은 이렇게 시작됐다. 롯데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3년 5월 경제기획원은 롯데가 호텔 건설을 위해 신청한 외국인 투자 및 차관 인가신청서를 승인했다. 국제관광공사 소유의 반도호텔 민영화 방침에 따라 1974년 6월 3일 매각 입찰이 실시됐다. 형식적인 공개 입찰에 롯데가 단독으로 참여하여 42억원에 반도호텔을 낙찰 받았다.

반도호텔을 낙찰 받은 롯데는 인근의 국립중앙도서관을 8억3600만원에 매입(1974. 11. 20)했다.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국립중앙도서관은 남산 어린이회관(600평, 지하1층 18층 건물)을 매입, 1974년 12월 이전 개관했다. 여기에 더해 롯데가 반도호텔과 국립중앙도서관 주변의 사유지를 반강제적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서울시는 특정가구정비지구로 지정하는 특혜를 베풀었다.


1975년 5월 1일 롯데호텔 신축공사가 시작됐다. 롯데호텔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파격적인 세제 혜택이 주어졌다. 신격호가 10년 이상 일본에 거주한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부동산 취득세와 재산세, 소득세, 법인세가 면제됐다. 호텔 건설에 필요한 물품과 주방용품, 가전용품 등의 수입품에 대한 관세도 면제되어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또한 1972년 제정된 '특정지구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근거하여 부동산투기 억제세, 영업세, 등록세의 면제가 추가됐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전폭적인 특혜 속에 1979년 3월 10일 롯데호텔이 준공됐다. 처음 33층으로 설계된 롯데호텔은 일본의 게이오플라자호텔(47층, 높이 170m)을 의식해 45층으로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청와대 경호실이 보안상의 문제로 반대하면서 지하 3층, 지상 37층(연면적 11만2,425㎡) 건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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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 1979년 말 완공된 롯데백화점은 서울시의 도심억제정책에 반하는 사업으로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서울시는 백화점을 허가해 주기 위해 ‘롯데백화점’이 아닌 ‘롯데쇼핑센터’라는 꼼수로 사업을 승인해 주었다. ⓒ 전상봉


롯데백화점(본점)이 건설되는 과정은 탈법과 특혜의 종합세트라 할 만하다. 애초 롯데백화점은 9층 높이의 호텔 부속 건물로 허가됐다. 그러나 1976년 4월 공사가 시작된 다음 25층 높이로 설계가 변경됐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은 이 같은 설계 변경에 대해 대통령 박정희와 국무총리 김종필, 서울시장 구자춘의 전폭적인 비호와 지원 하에 가능했다고 진술한다.

롯데백화점은 1979년 말 완공됐다. 그런데 문제는 도심 내 백화점은 서울시의 도심억제정책에 반하는 사업으로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서울시는 백화점을 허가해 주기 위해 '롯데백화점'이 아닌 '롯데쇼핑센터'라는 꼼수를 생각해 냈다.

손정목은 서울시장 정상천이 대통령 박정희에게 롯데백화점을 롯데쇼핑센터로 재가 받는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그동안 강북억제책으로 서울시가 강력히 규제해온 것은 백화점이었지 쇼핑센터가 아니었으니 롯데백화점을 쇼핑센터라고 한다면 궁색하지만 명분은 세울 수가 있었다. 부랴부랴 '백화점 허가신청'이 '쇼핑센터 허가신청'으로 바뀐다. 그 명칭을 어떻게 붙이건 간에 도심부에 대형 백화점 설립을 허가하는데 서울시장 단독으로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시장이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재가가 나자 바로 허가가 났고 즉시로 롯데측에 통보되었다. 1979년 10월 26일이었다. … 말하자면 롯데쇼핑센터는 박 대통령이 신격호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던 것이다." -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2, 278쪽

잠실 롯데월드 건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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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롯데월드(롯데월드타워) 제2롯데월드 프로젝트는 1988년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일대 8만7182㎡(2만6373평)의 땅을 사들이면서 시작되어 2014년 10월 에비뉴엘동, 쇼핑몰동, 엔터테인먼트동이 개관한 다음 2017년 4월 3일 123층, 555m 높이의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면서 마감되었다. ⓒ 전상봉


서울 도심에 거점을 확보한 롯데는 강남에 새로운 부지를 물색했다. 롯데가 주목한 곳은 송파구 잠실동 40-1번지였다. 서울시는 1977년 잠실매립지 36만8160평을 매입했다. 부지를 매입한 서울시는 석촌호수 북쪽 4만7580평을 "잠실권은 물론 천호, 영동, 성남 등지의 활동 인구 5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심센터로 개발"할 목적의 상업지역으로 지정해 두었다.

잠실동 소재 상업지역 2만7600평의 부지에 대한 입찰이 실시된 것은 1978년 7월 11일이다. 율산실업은 이날 입찰에서 1만1100평을 낙찰 받았다. 이때 낙찰 받은 부지는 1979년 4월 해외자금법 위반으로 율산그룹이 해체되면서 소유권이 (주)한양으로 넘어갔다.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주)한양이 자금 압박을 받으면서 이 땅을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즈음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잠실일대가 개발되면서 (주)한양 소유의 부지는 금싸라기 땅이 됐다. 강남에 대규모 관광 위락단지 건설을 추진 중이던 롯데가 이 땅에 눈독을 들였고, 전두환 정권은 이곳에 최고급 숙박시설과 백화점을 짓기로 방침을 정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의 지원 하에 롯데가 (주)한양 소유의 부지 12만8246㎡(3만8794평)를 1984년 두 차례에 걸쳐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과 신격호의 남다른 친분이 크게 작용했다.

잠실에 부지를 매입한 롯데는 호텔, 백화점, 쇼핑몰, 테마파크를 연계한 롯데월드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도 범정부적인 차원의 특혜가 제공됐다. 신격호는 재일교포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 한 달 만에 건설 예정 부지의 교통영향 평가는 물론 주변지역의 측량과 지하수 조사까지 마쳤다. "우리나라 건축의 역사에서 구청, 소방서, 시 본청, 건설부, 상공부, 재무부, 관세청 등 관계기관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한 전무후무한"(손정목) 특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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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롯데월드는 호텔, 백화점, 쇼핑몰, 실내테마파크가 연계된 단일 건물인 롯데월드는 가히 “여러 얼굴을 지닌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완공됐다. ⓒ 전상봉


1985년 8월 27일 롯데월드 건설 공사가 시작됐다. 올림픽을 앞두고 숙박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호텔을 조기에 완공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건설공사는 속도전을 펼쳤다. 그 결과 올림픽 개막 직전인 1988년 9월 16일 롯데호텔(월드)이 완공됐다.

뒤이어 백화점(1988. 11. 12), 쇼핑몰(1988. 11. 19), 실내테마파크(1989. 7. 12), 매직아일랜드(1990. 3. 24)가 차례로 개장하면서 롯데월드가 완공됐다. 롯데월드의 건축면적은 7만3602㎡(2만2265평)이며, 연면적 55만9235㎡(16만9,168평)에 달한다. 호텔, 백화점, 쇼핑몰, 실내테마파크가 연계된 단일 건물인 롯데월드는 가히 "여러 얼굴을 지닌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완공됐다.

이명박 정부, 국가 안보를 내팽개치다

"지금의 롯데월드는 규모가 너무 작습니다. 더 이상 확장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제2롯데월드를 지어 지금의 롯데월드와 연결하여 서울의 명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21세기 첨단 산업 중의 하나가 관광입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구경거리가 별로 없어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시설을 조국에 남기려는 뜻밖에 없습니다. 놀이시설도 호텔도 제대로 한 번 세울 겁니다." - 임종원, <롯데와 신격호, 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 27쪽

신격호의 야망은 롯데월드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호텔과 쇼핑몰, 극장 등을 망라한 제2롯데월드를 짓겠다는 그의 야망과 집착은 종교와 같았다. 제2롯데월드 프로젝트는 1988년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일대 8만7182㎡(2만6373평)의 땅을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제2롯데월드를 추진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는 예정부지와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서울공항이 직선거리로 5km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예정부지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을 지을 경우 서울공항에 전투기가 이착륙하는데 장애가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1990년 7월 13일 서울시는 항공법과 공군기지법 규정에 따라 제2롯데월드 건설 계획을 불허했다. 그후에도 제2롯데월드 건설 계획은 번번이 불허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에는 서울공항의 안전을 담보하려면 동편 활주로 각도를 7° 틀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하지 않았다. 당시 공군이 허용 가능한 최고 높이는 203m(50층)였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대통령 이명박은 2008년 4월 28일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 합동 회의에서 제2롯데월드 허가에 미온적인 국방부장관 이상희를 질책하면서 "날짜 정해놓고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공군참모총장 김은기를 비롯한 공군 수뇌부는 제2롯데월드 건설을 반대했다. 이유는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가 건설될 경우 서울공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이명박이 참모총장 김은기를 해임하고 이계훈을 임명하면서 제2롯데월드 신축 허가가 기정사실화되었다. 2008년 저층부 건설 허가를 받아낸 롯데그룹은 민관 합동회의와 두 번의 행정협의조정위원회를 거친 다음 2009년 3월 사실상 정부의 승인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와 공군은 '서울공항 동편 활주로 방향을 3° 변경하고 장비를 보강하면 기지의 안보상 기능이 유지되고 비행 안전에 문제점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배포했다.

당시 국방부는 서울공항 동편 활주로를 3° 트는 데 드는 비용을 3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3000억원은 롯데가 부담할 몫이었다. 그러나 활주로를 7° 트는데 소요되는 비용 1조2000억 원에 비하면 무려 9000억원이나 적은 액수였다. 이명박은 대학 동기인 장경작이 총괄사장(롯데호텔)으로 있는 롯데그룹에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와 함께 서울공황 활주로 변경에 따른 부담금을 9000억원이나 줄여주는 엄청난 특혜를 베풀었다.

2010년 11월 11일 송파구청은 123층으로 설계된 롯데월드타워 신축 계획을 허가해 줬다. 2009년 기초공사를 시작한 상태에서 롯데는 공기단축과 저층부(에비뉴엘동, 쇼핑몰동, 엔터테인먼트동)의 조기개장을 목표로 공사를 서두르면서 여러 차례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에는 공사 현장 주변 도로에서 싱크홀이 발생했고, 석촌호수의 수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물 빠짐 현상이 일어나 시민들을 불안케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2014년 10월 에비뉴엘동, 쇼핑몰동, 엔터테인먼트동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7년 4월 3일 123층, 555m 높이의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됐다. 국내 최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의 연면적은 축구장 115개 넓이인 80만5872㎡에 이른다. 롯데월드타워의 완공으로 30년의 시간과 4조원의 건설비가 투입된 신격호의 야망과 집착의 결정체인 제2롯데월드가 완성된 것이다.

잠실, 모든 길은 롯데월드로 통한다

송파구 잠실은 롯데왕국이다. 잠실동에 자리 잡은 롯데월드에는 호텔, 백화점, 실내테마파크, 매직아일랜드가 운영 중이며, 신천동에 건설된 제2롯데월드에는 롯데월드타워, 에비뉴엘동, 쇼핑몰동, 엔터테인먼트동이 기세등등하게 솟아있다.

길(올림픽로) 건너편에는 롯데캐슬이라는 주상복합아파트가 지어져 롯데왕국의 위용을 더한다. 일찍이 누군가는 잠실에서 모든 길은 롯데월드로 통한다고 다음과 같이 갈파한 바 있다.

"서울의 대량 교통수단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잠실역에 내리면 우리는 소비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보이는 롯데월드 속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잠실역에서 내려 본 사람이라면 다 알다시피 역에서 롯데월드로 들어가는 입구가 가장 넓고 화려하기 때문에 현대 소비 생활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욕망 구조에 매여 있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흡입되어 버린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지만 여기서는 모든 길이 롯데월드로 통하게 되어 있다." - 정정호·강내희, <포스트모더니즘론>(터, 1989), 13~14쪽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롯데월드타워의 준공과 함께 신격호의 시대가 끝난다는 사실을…. 롯데월드타워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던 2015년 1월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표출되어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이 이전투구를 벌였다. 총괄회장 신격호는 장남 신동주의 편을 들었으나 승자는 차남 신동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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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타워를 방문한 신격호 총괄회장 2017년 5월 3일 롯데월드타워 118층 전망대를 방문한 신격호 총괄회장. ⓒ 롯데그룹


체면을 구긴 신격호는 2017년 5월 3일 96세의 노구를 이끌고 롯데월드타워 118층 전망대에 올라 감회에 젖었다. 그리고 달포가 흐른 6월 24일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창업주 신격호가 이사진에서 전격 제외됐다. 이로써 롯데 창업 70년, 한국 진출 50년 만에 신격호의 시대가 쓸쓸하게 저물었다.

덧붙이는 글 전상봉 시민기자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민연대에서는 <2017 한성백제시민강좌>를 개최합니다. 수강 관련 문의는 070-88834-4002 / 010-2297-0610 또는 다음 주소로 접속하시면 강좌 관련 내용과 수강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https://onoffmix.com/event/111853
#신격호 #신동빈 #롯데호텔 #제2롯데월드 #롯데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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