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Homeless)는 집이 여러 개다

캐나다에서 홈리스 보며 느낀 것들, 동병상련이었을까

등록 2017.09.11 11:50수정 2017.09.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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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하이웨이 401에서 어디든 나들목을 벗어나면 간선도로로 들어가기 전에 대부분 신호등을 만나게 된다. 그 중 러시아워 때 상습적으로 정차구간이 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있다. 이른바 홈리스(Homeless)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만나는 홈리스들과는 행색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데, 이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너무도 당당한 캐나다의 홈리스들

캐나다의 홈리스들이 들고 있는 피켓 내용(보통 '배가 고프다'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지만 '카드도 받는다'는 우스개까지 다양한 형태의 피켓을 볼 수 있다)을 보기 전에는 그냥 건널목을 지나려는 행인처럼 느껴진다.

우선 그들은 행색이 그리 남루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고급 배낭에, 등산화에, 재킷에 제대로 갖춰 입은 등산객 뺨칠 만큼의 복장을 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당당하다. 구걸하는 걸인의 태도가 아니다. 그냥 삶의 한 가지 양식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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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홈리스들이 들고 있는 피켓 내용(보통 '배가 고프다'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지만 '카드도 받는다'는 우스개까지 다양한 형태의 피켓을 볼 수 있다)을 보기 전에는 그냥 건널목을 지나려는 행인처럼 느껴진다. ⓒ pexels


그들의 표정이 그것을 얘기한다. 비굴하거나 측은지심을 유발하려는 듯한 저자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환하게 웃으며 그 삶을 즐기는 듯한 태도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에서 1960~1970년대 유행했던 무전여행자들의 마음가짐이 이러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이런 형태의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애완견과 함께한다. 그러니 이를 처음 본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제 한 입 풀칠하기도 어려운 주제에 애완견까지?'류의 생각으로는 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는 애완견을 담요로 둘둘 말아 그들의 사랑을 과시한다.


결정적으로 캐나다의 홈리스들 중에는 한국에서와 달리 '저 몸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기는 좀 어렵겠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신체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보기가 힘들다. 대부분 건강해 보인다. 잘 단련된 운동선수처럼 탄탄한 몸을 가진 경우도 더러 보인다.게다가 희한하게도 그들은 대부분 백인이다(지금까지 내겐 백인 아닌 홈리스가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몸으로 일하지. 왜? 구걸을? 영어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는 이민자보다는 분명히 영어만큼은 잘 하지 않겠나? 어디 가서 무슨 일인들 못 할까?' 하는 탄식은 그저 이민자들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홈리스는 내 친구?

그들을 둘러싼 또 하나의 다른 점은 그들을 대하는 행인들, 운전자들의 태도이다. 그들에게 동전이라도 한 푼 줄 생각이 없으면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원천봉쇄 작전에 돌입하는 우리와는 달리 캐나다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한다. 적선하고 안 하고는 개인적인 주머니 사정과 생각의 차이일 뿐 그들과 스스럼없이 말을 섞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홈리스가 데리고 있는 애완견에 관해 얘기하는지, 오늘 벌이는 어땠느냐고 얘기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너 왜 이러고사니?"와 같은 무례한 대화가 오고 가는 것 같지는 않다. 대화하는 그들의 표정이 누가 누구를 향해 질타하고 꾸중하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오래된 친구를 길거리에서 마주친 듯 자연스럽고 화기애애하기 때문이다.

버스나 전철에 오른 홈리스들의 경우에는 몸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땀에 전 듯한 배낭을 받아 들어주는 일도 예사이다. 하물며 정장으로 차려 입고 자신의 스타일 유지에 매우 예민할 것 같은 젊은여성들이 이들 '냄새 나는' 홈리스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면 저들의 대화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아니 도대체 저들 두 사람이 공통화제로 삼을 만한 것이 무엇일까? 상상력의 한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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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중 한 장면. 캐나다에서 홈리스와 대화하는 그들의 표정이 누가 누구를 향해 질타하고 꾸중하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오래된 친구를 길거리에서 마주친 듯 자연스럽고 화기애애하기 때문이다.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인터넷 테크놀로지로 양산되는 홈리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연을 맡았던 미국의 유명배우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가 영화 촬영이 끝나면 '자발적인 홈리스'가 되어 전 세계를 전전하며 다니는 건 잘 알려진 일이다. 지구상 곳곳이 인터넷 정보망으로 연결되어 있어 농경사회의 최고 가치인 '정착'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생활의 불편 없이 자유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보면 '홈리스'라는 말은 '집이 없다'가 아니라 '거처가 일정하지 않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경제적 곤궁, 가출, 그리고 구걸 행세 등으로 설명되지 않는 첨단 기술이 바탕이 되어 일구어낸 '당당한 삶'의 한 양식이 아닌가?

이런 현상은 범 지구적이어서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예전에는 주변에 외국에 나가 사는 사람이 있는 집은 매우 희귀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까운 가족 중 외국에 한 두 명쯤은 나가 사는 집이 흔하다. 그 명목이 이민이든, 유학이든 불문하고 이제는 그렇게 전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것에 익숙한 시대가 되었다. 단일민족을 유난히 강조하던 한국에도 다문화가정이라 통칭되는 사람들이 100만에 육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시대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 간의 이동과 교류를 쏟아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알 수 있다. 세계가 한 마을 같은 명실상부한 지구촌 시대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의 홈리스, '이민자'

이민 오던 날, 토론토 피어슨(Pearson) 공항에서 모든 입국수속을 끝낸 이민관이 나에게 던진 "웰컴 홈!"이라는 인사말에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내가 계획하고 찾아온 캐나다이지만 여기가 진정 나의 홈인가?'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나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진정한 홈이 한국인지, 캐나다인지 혼란스러운 나 같은 이민자들은 또 다른 의미의 홈리스라 불려야 할 것 같다. 

며칠 전 401 나들목에서 젊은 여성 홈리스를 만났다. 예의 자신의 애완견과 같이 한 모습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차할 때 쓰려고 넣고 다니는 동전 통에 손이 갔다. 그리곤 짧은 시간 동안 자기 일(?)에 집중하며 차와 차 사이를 뛰어다니는 그녀와 눈을 맞추고 동전 하나를 그녀의 장갑 낀 손에 쥐여 주었다. "땡큐 쏘우 머치!" 인사를 마친 그녀의 눈길은 다른 차량으로 바삐 옮겨가고 있는데, 내 머릿속은 캐나다에 와서 처음 해본 행동의 이유를 좇기에 바빴다.

'왜 그랬을까?' 
'홈리스라는 자각증세가 만들어 낸 동병상련의 정 때문 아니었을까?'

며칠 간의 생각 끝에 겨우 움켜쥔 가느다란 실마리였다.

#캐나다 #이민 #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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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김태완입니다. 이곳에 이민와서 산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민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에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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