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경찰과 교육청은 한 달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유성경찰서-시교육청 앞에서 울분 토한 '3인의 목소리'

등록 2017.09.11 15:16수정 2017.09.11 15:33
0
원고료로 응원
a

11일 오전 10시 대전성폭력피해청소녀사망사건공동대책위원회 소속 관계자 100 여명이 유성경찰서 앞에서 모여 경찰의 안일한 수사 관행을 질타하고 있다. ⓒ 심규상


11일 오전 10시 전국 곳곳에서 100여명의 시민이 유성경찰서 앞에 모였다. 대전성폭력피해청소녀사망사건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 관계자들이다. 하나같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현숙 대전성폭력상담소장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첫 번째 이유는 숨진 여중생을 추모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 다시는 이런 허망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사건을 전담 수사한 유성경찰서에 대해 "피해자 가족에 대한 2차 피해를 중단하고 공식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또 유성경찰서를 비롯 대전시교육청에 대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지 말고 진실을 밝히라"고 강조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수사 전문성을 키우고,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를 재정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달 25일, 대전에서 한 여중생(16)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다. 숨진 여중생은 지난 2월부터 20대 성인 남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수사와 교육당국의 대응은 여중생이 숨지기 한 달 전인 지난 7월 말 시작됐다.

경찰 수사와 교육 당국의 지원이 시작됐는데도 아이가 목숨을 끊은 연유는 무엇일까? 이날 유성경찰서 앞에서 경찰과 교육청을 질타하며 호소한 세 명의 울분이 섞인 목소리를 요약해서 정리했다.
  
원민경 피해자유족 변호사 "경찰은 한 달 동안 뭐했나"

a

원민경 피해자유족 변호사 "경찰은 한 달 동안 뭐했나" ⓒ 심규상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한 지 31일만에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피해자유족은 피해자에 대한 보복, 협박, 극단적인 선택 등이 염려되어 경찰, 교육청, 학교에 수시로 문의를 하였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적극적인 조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경찰은 피해자 휴대전화를 제출 받을 때, 어린 피해자에게 '무고죄로 더 크게 걸릴 수 있고, 뇌파검사, 휴대폰 검사 다 하면 더 큰 죄를 받는다'고 위협적인 언사를 하였습니다.


경찰은 도대체 한 달 동안 무엇을 하였습니까! 피해자유족은 기다리다 못해 피해자가 죽음을 선택하기 10일 전 경찰에 직접 연락했습니다. 가해자들 휴대전화는 압수되었는지,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협박할 가능성은 없는지를 물었습니다. 경찰은 중립적인 입장을 강조하면서 조사가 끝나야 보호조치가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피해자유족이 다시 개학 직전에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지만 경찰은 '우리는 중립적이다. 아직 수사 중이니 아이 말만 믿지 말라'는 입장만 반복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 사망 다음 날(토요일) 경찰에 가해자 여부를 확인하고자 전화를 하자, '담당 경찰관이 비번이니 월요일에 다시 전화하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자 갑자기 경찰 수사가 급진전되었습니다. 피해자 사망 후에도 연락이 없던 경찰이 먼저 피해자유족에게 수사브리핑을 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결국 지난 8일 가해자는 '성적학대' 등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정도의 심각한 성적 학대 행위를 인지하고도 왜 경찰은 그 동안 중립적 입장만 강조한 것일까요? 왜 피해자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입니까? 구속수사가 2주일만 빨랐다면, 아이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릅니다.

학교와 대전시교육청 또한 경찰 수사를 이유로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유족은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경찰과 교육당국은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게을리하고 가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아 죽음을 막지 못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소장 "설동호 교육감에게 묻는다"

a

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소장 "설동호 교육감에게 묻는다" ⓒ 심규상



"그동안 교육청은 이 사안에 대한 어떠한 입장표명이 없었습니다.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은 중대 사안이 발생했는데도 외부행사만 참석하고 있다는 비난성 기사가 나간 후인 지난 3일 밤이 되어서야 추모현장을 찾았습니다. 설 교육감은 취재 중인 기자에게 '민감한 사안이니 기사를 내지 말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교육청 측은 또 사실무근의 가족문제를 운운하고, 현재 재학 중인 관련 학생의 안전을 이유로 추모공간 설치마저 만류했습니다. 학생보호체계의 문제점과 대안모색은커녕 사망한 아이와 가족에게 원인을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우리는 대전시 교육당국에 묻습니다. 학교는 7월 21일 사건을 인지한 직후 무엇을 했습니까? 학교는 피해자와 그 부모의 호소에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학교는 사건인지 이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아이에게 어떤 지원을 하였습니까? 대전시 교육청은 사안 발생 이후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계획과 대안은 있습니까?

이 사건을 두고 일부 경찰과 언론, 교육관계자들은 숨진 여중생이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라거나 '성폭력이 아니'라는 등의 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성폭력이 아니라고 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만 15살 여자청소년이 성인의 성적 학대의 대상이 되고, 죽음에까지 이른 이 사안이 성폭력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말로 대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다양한 성적착취 범죄에 대응하는 법과 제도를 촘촘히 정비하고, 경찰과 교육당국이 진정성 있는 피해자 지원체계를 실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피해 여중생 모욕하는 수사 관행과 보도 멈춰라"

a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피해 여중생 모욕하는 수사 관행 멈춰라" ⓒ 심규상



"반(反)성폭력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로서 고인을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피해 학생의 부모는 학교 측에 사건에 연루된 같은 반 학생과 분리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은 두 학생의 진술이 다르다며 같은 반에 그대로 배치했습니다.


경찰은 피해학생의 부모님께 '딸아이는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다'는 인권침해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선정적인 제목과 추측성 기사, 피해자 비난조의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고인을 모욕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수사관행과 언론보도를 당장 멈추십시오. 우리 사회에도 호소합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넘쳐나는 불법 촬영된 사진과 영상의 유통구조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됩니다. 청소년, 청소녀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으면서 성폭력과 왕따 문화가 없는 세상에서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그 길을 찾아가야합니다.

특히 학교와 교육청, 그리고 피해자지원체계 전반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촉구합니다."

<관련 기사: 대전 여중생 투신사건 뒤, 엉터리 수사관행 있었나?>
덧붙이는 글 <대전성폭력피해청소녀사망사건공동대응위원회>에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26개소), (사)탁틴내일, (사)한국성폭력상담소, 대전여성단체연합, 대전여성폭력방지상담소․시설협의회, (사)장애여성공감, (사)평화의샘, , (사)한국여성민우회, (사)한국여성의전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십대여성인권센터,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152개소),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58개소),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여성지원시설전국협의회(30개소) 등 377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 여중생 #유성경찰서 #대전시교육청 #설동호 교육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