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람세스 미라를 마지막에 봐야 할 이유

[세계일주 인문기행 - 열 아홉 번째 편지] 절대세계를 향한 열망, 이집트 문명

등록 2017.09.16 19:51수정 2017.09.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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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에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신영복의 세계여행)을 처음 접했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문명과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따뜻한 글과 그림 엽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데 큰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며 그 감동으로 막연하게 세계일주에 대한 꿈도 품게 됐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2017년, 배낭여행자가 되어 그 꿈을 실행에 옮깁니다. 당신이 보낸 첫 번째 엽서에 적혀있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에 무모한 용기를 얻어 여행지에서 편지를 띄웁니다. 이 여행기는 당신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당신들과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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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람세스 기차역 앞 차선 없는 도로 ⓒ 정수현


모래바람 때문이었을까? 


카이로의 첫 인상은 사막 색깔을 닮은 낡은 황색 건물들과 차선 없는 도로였습니다. 차선과 횡단보도가 희미하다 보니 쉼 없이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카이로 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적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아스완과 룩소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불분명함에서 비롯되는 번잡함. 이집트 여행에서 계속 경험하게 되었던 호의와 호객 사이, 친절과 바가지 사이의 피로감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습니다.

사람을 바싹바싹 말리는 더위에 지치고 이집트 특유의 관광문화에 지쳐갈 때 즈음 만난 나일강은 커다란 위안이 되었습니다.

카이로 시내에서 보는 나일강도 멋있었지만, 역시 나일강의 백미는 아스완에서 룩소르 사이를 운항하는 크루즈 탑승이라 할 것입니다. 보통 크루즈라 하면 배낭여행객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사치겠지만, 전세계 크루즈 상품 중 가장 저렴하다는 나일강 크루즈는 과감하게 선택하기에 부담이 적었습니다.

사막이 보존해준 이집트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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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문명을 낳았고, 지금도 이집트인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일강과 주변 풍경 ⓒ 정수현


'나일(Nile)'은 '강'을 뜻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별도의 고유명사가 필요 없는 절대적인 생명수입니다. 이집트 국토의 90%가 사막지대이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삶은 나일강 주변에서 이루어집니다. 식수에서부터 건물 벽돌을 만드는데 필요한 진흙, 강에서 잡는 물고기, 교통과 상업의 교역로, 비옥한 농토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나일강이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물론 강 자체가 처음부터 축복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강의 범람이 많고 적음에 따라 생기는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예측하여 대비하고, 농경에 필요한 관개시설과 양수시설을 갖추는 등 효과적으로 물을 다루는 기술을 5천 년 전의 이집트인들이 가지고 있었기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뱃머리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수시로 나일강을 감상했습니다. 강이 흐르는 주변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아이들이 멱을 감고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소는 풀을 뜯습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대한 사암지대와 사막의 풍경이 이어집니다.

녹색이 삶이라면 황색은 죽음입니다. 녹색이 생성이라면 황색은 소멸입니다. 사막 사이로 파란 물결이 길을 내고 주변부를 푸른 빛으로 물들여 가는 광경을 바라보게 된다면, 누구도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묵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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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지역의 피라미드군. 광활한 사막은 천연의 요새가 되어 이집트 문명의 안정적인 태동과 번영에 기여했습니다. ⓒ 정수현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 사막은 역설적으로 이집트 문명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었습니다. 사막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철옹성보다 견고한 천연의 요새였고, 이집트 밖 외부인들은 감히 그 죽음의 모래바다를 넘어올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천연의 요새는 방어 기능만이 아니라 공격 본능을 제어하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30개 왕조가 3천년을 이어온 이집트 문명은 후반기에 접어들어서야 본격적인 정복전쟁과 외부세력 침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집트 문명의 특성이 완성되었다고 평가 받는 전반기 시대의 영광은 사막이라는 평화의 울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사막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집트 문명의 모습을 보존시켜준 방부제이기도 했습니다. 부패와 침식의 주범은 습기입니다. 건조한 모래바람은 건축물의 노후와 침식을 자연스럽게 지연시켜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바람이 날라다 쌓은 모래 알갱이들이 종국에는 산더미가 되어 아부심벨 신전과 같은 상이집트(일반적인 지도로 봤을 때 이집트 남부지역)의 주요 유적지들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이집트가 정복된 이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의 기억과 시야에서 완전히 감추어 버린 것입니다. 아마도 사막의 모래바람이 아니었더라면 유적의 대부분은 파괴되거나 소실되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막과 강이라는 특수한 자연 조건 아래에서 이룩된 이집트 문명은 서기 30년 경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무려 3천년의 세월을 이어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긴 세월 동안 정치 및 종교체계의 변동이 거의 없었고, 동일한 문화 양식을 유지했다는 사실입니다. 비슷하게 오래된 기원을 두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수많은 전쟁을 통해 새로운 정복자들이 들어설 때마다 거듭 변화하였던 모습과는 대비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오벨리스크와 미이라, 절대세계를 향한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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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신전 앞 오벨리스크. 원래 양쪽에 쌍둥이 형태로 있었으나, 19세기에 이집트를 통치하던 총독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의 샤를10세에게 하나를 떼어 기증하여 나머지 하나는 지금 파리 콩코드광장에 있습니다. 이 엽기적인 사건은 무지한 문화재 관리와 몰상식한 문화재 약탈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 정수현


이집트의 기후와 환경은 세속적인 화려함을 추구하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로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거대 경기장이나 대중 목욕탕 같이 현세적인 문화유적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건축물과 예술의 형태에 있어서도 죽음 이후의 영원불멸의 세계를 지향한 것들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이집트 문명의 특징은 '절대세계를 향한 열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집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거대 피라미드와 태양신을 상징하여 만들어진 방첨탑 오벨리스크는 그러한 열망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었습니다. 평평한 땅에 사각으로 발을 디디고 오로지 하늘을 향해 뻗어 손 끝을 모은 듯한 형태를 보고 있자면, 간절한 마음을 담은 순일한 정성이 느껴집니다. 유럽의 정복자들에 의해 수없이 반출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유명하다는 광장의 중심에 지금까지도 우뚝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종교를 뛰어 넘는 영감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신교 문화를 가지고 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거대한 신전과 석상을 여럿 만들었습니다. 수없이 마주한 신전과 석상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눈에는 그게 그거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이집트 예술이 중시하는 정형화된 규범에 의해 창조된 작품들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 미(美)에 대한 기준은 '완전함'이었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시점(視點)이 반영된 그림, 최적의 비율로 만들어진 몰개성적인 석상은 모두 상대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그들 의식의 반영이었습니다.

미라는 절대세계를 동경했던 사람들이 창조해낸 결정체라고 할만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죽음의 신 앞에 불려가 생전 죄의 경중에 따라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확실하게 죽거나 서쪽 지평선 너머 사후세계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올 영혼을 기다리는 육체의 보존은 너무나 중요한 의례가 되었습니다. 신전과 무덤 내 벽화에 새겨진 그림과 상형문자들도 대부분 사후세계 및 영생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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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신전의 벽화. 이집트 예술은 개별 사물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나 개성 표현 보다는 정형화된 규범에 따라 '완전함'을 표현하는데 치중했습니다. ⓒ 정수현


세계사 시간에 거의 기계적으로 외웠던 인류 4대문명. 그 중에서 이집트 문명만큼 지금까지도 주목 받는 문명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피라미드를 쌓아 불멸과 영생을 도모하였듯이, 오늘 우리들 역시 저마다의 피라미드를 쌓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 쌓은 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한없이 충실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이집트에서 남긴 이 이야기 속에서, 이집트 문명이 인류에게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찾게 됩니다.

카이로에서 멀지 않은 고대 도시 멤피스에는 람세스2세의 거대 석상이 누워 있었습니다. 역대 파라오 중 가장 강력한 권세를 누렸던 인물입니다. 전시관 1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석상은 2층에 올라서도 카메라 앵글에 한 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이집트에서 만나는 모든 석상이 그러하듯이 람세스2세 역시 최상의 비율로 만들어진 젊고 늠름한 모습이었습니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는 람세스2세의 미라가 누워 있었습니다. 거무튀튀하게 변색된 살가죽에 앙상한 뼈마디의 해골이었습니다.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던 그의 치아는 태양의 아들 파라오가 말년에 여러 질병으로 고생한 노인이었음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살아서는 신에 필적하는 힘을 지녔지만 3천년이 흐른 지금 왜소하게 남은 그의 모습은, 생전 모습 그대로 영구히 방부처리된 20세기 위정자들의 시신 보다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미라 전시관은 철저하게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혹여 촬영이 허용되었더라도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라가 흉측하게 보여서라기보다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영원을 꿈꾼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습니다. 거대한 와상의 파라오와 너무나 반대되는 미라는 인간의 이상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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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박물관에 누워 있는 람세스2세의 거대 석상. 인근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와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가치와 방향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정수현


차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두 곳을 차례대로 둘러보며 나는 이집트 문명이 꿈꾸었던 '열망'과 더불어 '허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열망은 존재가 지닌 생명력을 추동 하는 긍정적인 힘입니다. 동시에 허망은 그 열망의 가치와 방향에 대하여 끊임없이 성찰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아무리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는 숙명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현대문명이 만들어 왔고, 만들어 가고자 하는 피라미드의 이상과 가치는 무엇인지, 5천년을 변함 없이 흘러가는 나일강을 보며 묻게 됩니다. 

멤피스의 파라오를 먼저 보고, 박물관의 미라를 나중에 보게 된 것은 좋은 순서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현재 세계일주 인문기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집트문명 #이집트 #나일강 #피라미드 #람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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