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요구로 아파트 주차장 빼고 수영장 넣었죠"

[사회주택의 길을 묻다 ①] 오스트리아 사회주택 설계자 “주민 참여로 주택 설계"

등록 2017.09.14 10:03수정 2017.09.1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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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사회주택 ‘자그파브릭’ 설계자인 프란츠 숨니치 베카카 드라이 건축사무소 대표(왼쪽)가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변창흠 주택도시공사 사장(가운데)과 김인제 서울시사회주택센터 자문위원장을 만나 자신이 지은 에너지 제로 주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한국의 주택 문화는 공급자 중심이다. 공급자가 설계와 외관, 내부 시설까지 결정해놓고, '공산품' 처럼 판다. 정작 집에 살 사람의 생각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집을 사는 사람은 공급자의 의도에 자신의 '욕구'를 끼워 맞춘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트리아의 사회주택인 자그파브릭(Sargfabrick)은 한국에 새로운 주택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지난 1999년 오스트리아 빈에 들어선 자그파브릭은 '입주민'이 만든 집이다. 주택 설계부터 200여명에 달하는 입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110가구 규모의 제법 큰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이 많지 않은 것도 입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은 공동부엌이나 수영장, 강당 등 여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도 함께 고민했다. 원하는 '집'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공동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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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시에 있는 사회주택, 자그파브릭(Sargfabrick)의 모습. 입주민 모두가 공동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 Hertha Hurnaus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오가면서, 이웃들을 만나고 도움을 주고 받는다.

사회주택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자그파브릭'의 설계자인 프란츠 숨니치 베카카 드라이(BKK3) 건축사무소 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8일 오후 변창흠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김인제 서울시사회주택센터 자문위원장을 만나 자신이 만든 '사회주택'을 말했다.

"수영장 만들고 카셰어링 형태로 차량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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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제 서울시사회주택센터 자문위원장 ⓒ 유성호

김인제 서울시사회주택센터 자문위원장(아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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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방문했을 때 '자그파브릭'에 대해서 감명받았다. 서울에서는 이웃간에 신뢰할 수 있는 구조가 없어졌는데 자그파브릭에서 유지되는 공동체적인 삶을 보면서 감명 받았다. 설계 단계부터 주택 운영까지 다른 주택보다 어려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는가?"


프란츠 숨니치 대표(아래 숨) : "비엔나는 삶의 질과 관련해 8년간 세계 1위다.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택에서 공동체성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적인 접근이 있다. 하드웨어는 건축이고. 건축은 커뮤니케이션(소통)을 할 수 있게 보조하는 역할이다.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은 공동체성을 만들기 위한 방법들 규칙들을 고민하는 것이다. 자그파브릭은 내부인들이 그런 규율을 만들었다.

내부인들이 일정 논의를 거쳐 자체 규율을 만들고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비엔나에는 입주민들과 시공무원들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 성격의 '게비츠페트로니엄'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 논의기구를 통해 거주민들의 의사가 주거 행정에 반영되는 것이다.

게비츠 페트로니엄이라는 조직은 시와 일반인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다. 주택이나 길, 지역 전체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 불만이 있으면 얘기하는 것이다. 자그파브릭처럼 직접적인 주민간 소통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행정과 관련된 창구를 만들기도 한다.

주민들은 이런 소통공간을 통해 자신들의 집을 만들었다. 자그파브릭의 특징 중 하나가 대단지 주택(110가구)임에도 주차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사전에 입주민들이 모여서, 논의한 결과다. 주차장이 있을 공간에는 수영장을 설치했고, 입주민들은 카셰어링 형태로 차량을 이용한다."

: "주택이 건설되려면 여러 규제가 있고, 이런 것들이 새로운 주거 형태를 만드는데 제한되는 요소기도 하다. 자그파브릭에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접근했나?"

: "자그파브릭은 150명의 사람(입주민)들이 참여해서 여러 논의를 했다. 그래서 주민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형태로 만들어서 (설계에) 적용할 수 있었다. (100세대 규모의 주택)설계 과정에서 주차공간을 7대만 만들어도 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실제로 그렇게 접근했고 주차 공간을 안 만들어도 되니까 시설비용과 공간이 절약할 수 있었다.

당시 입주민들은 카셰어링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여러 기업들이 카셰어링 시스템을 하고 있지만, 18년 전에 이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카셰어링 시스템을 하면 주차 공간이 별도로 필요가 없다. 그 자리에는 수영장을 만들었다. 수영공간에 투자하는 것이 주차장에 투자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웃음)."

"공공지원 사회주택, 파리는 20% 암스테르담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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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주택도시공사 사장 ⓒ 유성호

: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도 사회주택을 하고 있다. 빈집살리기 리모델링 지원사업,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사업 등이 있는데, 숨니치가 얘기한 것처럼 공동체를 활성화 시키는 정책은 부족하다. 입주예정자들이 설계나 전체적인 규율을 정할 수 있는 걸 지원하기 어려운 구조다. 어떻게 생각하나?"

변창흠 주택도시공사 사장(아래 변) : "우리가 공급하는 사회 주택은 외국과 달리 땅을 확보하지 않는다. 서울시가 재정이 허용하는 한에서 땅을 출자해주면 그 땅을 사회주택 사업자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사회주택 사업자들도 땅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대기하고 공동체를 만들지 못한다. 공동체를 오랫동안 형성하고 참여하는 게 제한적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공급할 토지를 미리 정보를 준다거나, 공동체들이 모여서 대기해서 여러 정보가 풍부하게 공유된다면 부족한 부분이 좀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변창흠 사장과 숨니치 대표는 유럽의 공공주택 비중이 높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숨 대표는 높은 주택의 공공성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강조했다. 변 사장은 한국의 공공주택 비중은 유럽에 비해 떨어진다며, 앞으로 공공주택 비중을 늘려가야 한다고 의견을 표했다.    

숨 :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특징은 주택의 공공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비엔나는 주거정책이 강한 도시다. 직접 비엔나가 주거에 참여해서 만들어 관리하는 건물이 전체의 30%, 22만호 정도 된다.

비엔나시는 주거진흥기금을 활용해 1980년대까지 직접 시공해 주택을 공급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직접 시공을 하지 않고, 진흥 기금을 통해, 주택을 시장에 공급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 "유럽의 여러 국가별로 임대주택이나 공공 지원주택에 대한 정책 내용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선 공공이 지원하는 주택을 공공임대주택, 서울에서 예외적으로 사회주택이라 해서 공공임대는 아니지만 서울시가 지원하는 주택이 있다.

민간 주체가 공공지원을 받아서 공급하는 주택이다. 공공이 지원하는 사회주택 비중은 파리는 전체 주택의 20%, 암스테르담은 40%로 비중이 높다. 전체 세입자의 반 정도가 혜택을 받는다. 거기 비하면 서울 임대주택 비율은 6.5%밖에 안 된다. 서울은 장기적으로 15%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주택의 길을 묻다②] "서울 사회주택 갈 길 멀다, 리츠 형태로 구상"
#사회주택 #자그파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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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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