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에 '중국' 있다

주자·주잠 사당과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 모교 있는 전남 화순 능주

등록 2017.09.15 09:54수정 2017.09.1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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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주자묘에서 만난 주자(주희)의 동상. 주자가 정립한 성리학은 조선시대 절대적인 학문이었다. ⓒ 이돈삼


주자와 주잠, 정율성, 그리고 쌍봉사, 유마사, 천태산, 적벽...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떠오르게 하는 인물과 지명이다. 남도땅 화순과 엮인다. 조심스럽지만, 화순을 제2의 중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먼저 주자묘(朱子廟)다. 송나라 때 인물 주자(朱子)를 배향하는, 우리나라에 한 군데밖에 없는 사당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 연주산 기슭에 있다.

주자(1130∼1200)의 이름은 희(熹). 성리학자이면서 사상가, 철학자, 교육자, 시인이었다. '사서집주' 등 120여 종 4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공자, 맹자 등과 함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주자학의 시조로 불린다.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 있는 주자묘(朱子廟). 우리나라에 한 군데밖에 없는, 주자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 이돈삼


화순 연주산 자락에 들어앉은 주자의 동상. 화순 주자묘는 1905년 창건한 영모당을 토대로 들어섰다. ⓒ 이돈삼


주자학은 조선의 뿌리를 이뤘던 성리학의 토대를 이뤘다. 고려시대 안향, 정몽주, 이색, 길재 등에 의해 계승됐다. 조선시대엔 김종직, 조광조, 서경덕, 이황, 이이, 송시열 등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나라의 학문으로써 조선조 500년 동안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주자학은 주자의 증손 청계 주잠(朱潛)에 의해 이 땅에 들어왔다. 남송 때이던 1224년 주잠이 고려로 망명을 하면서다. 주잠이 한림학사로 있을 때였다. 몽골이 남송을 공격해 왔다. 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을 주장한 남송에 크게 실망한다.

주잠은 '오랑캐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남송을 떠나 고려로 향한다. 당시 고려는 몽고를 상대로 항전을 하고 있었다.

화순 연주산 자락에 들어앉은 주자묘와 주자 동상. 해마다 5월 5일이면 전국의 신안 주씨들이 모여 제례를 지내고 있다. ⓒ 이돈삼


주잠은 두 아들과 딸을 비롯 7명의 학사와 함께 뱃길을 통해 고려로 망명을 한다. 나주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이후 원나라의 압송 요구를 피해 능성(화순 능주)으로 숨어들었다. 신안 주씨(新安 朱氏)의 시조가 됐다.

화순 주자묘는 1978년 들어섰다. 신안 주씨 문중에서 1905년 창건한 영모당(永慕堂)이 출발점이다. 여기서 해마다 5월 5일 제례를 지내고 있다. 주자묘 옆 동원사에는 청계공 주잠을 주향으로 모시고 있다. 주잠의 묘도 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묘역이 그의 태자리인 중국 쪽을 향하고 있다.

한낮에 역광에 비친 주자 동상과 사당. 한적한 농촌마을인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주자묘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주잠의 묘. 주잠은 주자의 증손으로 남송 때 고려로 망명해 왔다. ⓒ 이돈삼


화순능주초등학교는 음악가 정율성에게 음악적 재능의 씨앗을 심어준 곳이다. 정율성은 '팔로군행진곡'으로 알려진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했다. 항일 전사이면서 중국의 혁명 음악가로 꼽힌다.

지금의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4살 때(1917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로 이사를 했다. 7살 때 능주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 2년 동안 다녔다.

어린 정율성은 학교 옆 신청(神廳)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음악성과 감수성을 길렀다. 신청은 지금의 국공립 국악원이다. 그의 음악적 천재성의 싹을 여기서 틔웠다. 집앞 강변의 영벽정에서 낚시도 즐겼다.

중국의 혁명 음악가로 알려진 정율성의 흉상. 그의 태생지인 광주광역시 양림동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정율성은 어린 시절 광주와 화순에서 음악적 감수성을 키웠다. ⓒ 이돈삼


광주광역시 양림동의 정율성 거리. 중국의 혁명 음악가 정율성을 기리는 기념사업의 하나로 조성됐다. ⓒ 이돈삼


정율성은 10살 때 다시 광주로 옮겨가 숭일소학교를 졸업했다. 19살 때(1933년) 독립운동을 하던 형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전사로 활동했다. '중국인민해방군가(팔로군행진곡)' '연안송' 등을 작곡했다. 중국에서 '군혼(軍魂)'으로 추앙받고 있다.

샹치엔(向前), 샹치엔(向前)으로 시작되는 중국인민해방군가는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일본에 맞선 인민해방군들에게 진군의 나팔소리였다.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포할 때 불렸다. 중국 건국 60주년 기념식에서도, 2015년 9월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불려졌다.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정율성의 옛집 터가 있다. 화순군이 기념사업을 할 목적으로 최근 사들였다. 기념사업은 내년까지 기념관 건립, 주차장 조성, 주변 정비 등으로 추진된다.

화순 능주초등학교에 세워진 정율성의 흉상과 타일 벽화. 능주초등학교는 정율성이 어렸을 때 다녔던 모교다. ⓒ 이돈삼


화순능주초등학교에 들어선 정율성교실. 정율성이 다녔던 그 시절을 떠올려볼 수 있는 공간이다. ⓒ 이돈삼


어린 정율성이 다녔던 능주초등학교에는 정율성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악보 조형물 위에 세워진 흉상이다. 학교건물 벽에 대형 타일 벽화도 조성됐다. 초등학교 100주년 기념관에 정율성이 다녔던 옛 교실도 만들어져 있다.

화순군 관계자는 "정율성을 중국에서 활약한 음악가로만 제한하기엔 그의 삶이 너무 크고 넓다"면서 "항일 음악전사이자 중국 3대 혁명가인 정율성에 대한 재조명과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순군은 정율성의 성장지를 복원해 한·중 우호교류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앞으로 주자묘와 연계한 관광상품을 개발,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방침이다.

화순능주초등학교에 조성된 정율성 교실. 초등학교 100주년 기념관에 들어서 있다. ⓒ 이돈삼


화순 능주초등학교. 정율성이 다니던 당시 능주공립보통학교였다. 이 학교에 정율성의 흉상과 타일 벽화, 음악교실이 설치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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