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투자로 30만 원 번다는데... 상추 재배 망설인 이유

올 여름 상추 농사가 '대박' 났지만... 과잉생산으로 가격 다시 떨어질까 우려

등록 2017.09.18 22:00수정 2017.09.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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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재배(자료사진) ⓒ flickr


우리 마을 박 영감 내외는 70세를 훨씬 넘겼음에도 부부가 작은 하우스와 텃밭 농사에 부지런하다.


마을의 다른 사람들보다 이들 부부와 농사에 관한 이야기, 마을 돌아가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박 영감 내외는 금년 극심한 가뭄에도 상추를 잘 길러 4kg 한 박스에 1만 9천 원까지 받은 적도 있다며 자랑을 감추지 않았다.

상추는 파종 후 한 달이 지나면 먹을 수 있고 50일 정도면 수확해 판매가 가능한 작물이다. 벌레도 많지 않아 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는 편이다. 20일가량 모판에 길러 모종하는 일과 약한 상추 사이의 풀을 매주는 일이 힘들지만 그래도 다른 작물에 비해 손이 덜 가는 작물이다.

모든 농작물의 가격이 그렇지만 상추 역시 해마다 가격은 들쑥날쑥하다. 어떤 해는 4kg 한 박스에 2~3천 원 이하로 떨어져 박스와 운송비와 공판장 수수료를 제하면 인건비도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아니 그런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금년 여름 채소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상추 농사를 했던 농민들에게는 '대박'이 난 셈이다. 박 영감도 모처럼 '대박' 난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는 우리도 하우스에 상추를 심어보자고 앞섰다. 박 영감네 하우스가 100평인데 한 철에 80박스를 생산했다니, 우리 40평 하우스면 대강 30박스 수확은 가능하다. 한 박스에 1만 원씩 받는다고 가정하며 '50일 노력해 30만 원'이라고 계산을 해본다. 1년에 최소 세 번 경작이 가능하다니 얼추 1백만 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솔깃한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내의 계산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농산물은 가격은 시장이 결정한다. 고로 농민의 소득은 농민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기후라는 변수도 있다. 가뭄이나 홍수로 인해 농산물 작황이 부진해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진다면 당연히 가격은 상승하겠지만, 기후조건이 특정 작물의 성장에 맞아떨어지는 경우 공급과잉으로 인해 가격은 하락한다.

그런데 금년 여름 채소 가격이 높았다는 소식을 들었던 농민들이 상추 농사에 눈을 돌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렇다면 기상 이변이 없는 한 공급량은 늘 수밖에 없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농협 등이 전국적인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고 조절하며 농민들의 자제를 촉구할 수 있는 법과 시스템이 없는 게 현실이다.

또한 농산물의 최저 판매가격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연재해나 멧돼지 등으로 인한 일정규모의 피해를 보전해주는 제도가 없진 않지만, 거기에도 330제곱미터, 즉 100평 미만의 소규모 피해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규정은 없다. 그러니 나처럼 소규모 농가는 피해를 입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게 된다.

농사가 일종의 도박이 되는 현실,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의 몫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하고 괜히 육체적·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아내는 비어있는 하우스가 아깝다며 아쉬워한다.

수작업으로 퇴비를 뿌리고 모판을 만드는 일, 괭이로 모종 심을 밭을 만드는 일, 모종이 자라면 옮기는 일, 물 주기와 김매기 등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수확하고 포장해 공판장에 팔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점도 부담이다.

하지만 일단 노동력은 계산하지 말고 씨앗 한 박스에 3만 원, 퇴비 10포에 약 3만 원을 투자해 밑지는 셈 치고 시도해볼까 하는 모험심도 나를 자극한다.

소신과 의욕 그리고 정보, 거기에 기후까지 살펴도 결국은 운이 작용하는 농업의 현실이다. 과감해지지 못하고 작아지는 늙은 농민의 모습을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상추 #농업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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