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바로 내 정체성, 반드시 국민 품으로 돌아갈 것"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417] 오언종 KBS 아나운서

등록 2017.09.18 22:00수정 2017.09.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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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종 KBS 아나운서 ⓒ 이영광


어느덧 언론노조 KBS본부(아래 KBS새노조)와 MBC본부(아래 MBC 노조) 파업이 3주 차로 접어들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결방하는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퇴진 요구를 받는 고대영 사장과 김장겸 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KBS새노조는 지난 2014년 KBS 1노조와 함께 사장 퇴진 요구를 관철시켰던 기억이 있다. 때문에 파업 2주째 내부 구성원 분위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KBS 새노조 아나운서 구역 중앙위원인 오언종 아나운서를 만나 내부 분위기와 아나운서로서 겪은 일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오 아나운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파업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잖아요, 노조에서는 일주일 동안 선전전도 했는데 어떻게 보내셨어요?
"파업 2주 차 이틀째죠. 첫 주는 즐겁게 진행했습니다. 특히 지난주 금요일(8일) 활동이 많았죠. 그날 낮에는 구역별로 나눠 시민을 만나 저희 내용을 담은 유인물도 배포했고요. 저희 아나운서들은 광화문 광장으로 가서 집회 전에 MBC 아나운서들과 만나 간단히 선전전도 했어요.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같이 연대집회를 하고 돌마고 집회도 끝까지 참석한 다음 맞는 금요일이고 주말이라서 사람이 많이 모였었거든요.

집회를 마치고 MBC 아나운서들과 뒤풀이 하면서 얘기 많이 나눴지요. 사실 MBC 아나운서들과 예전에는 교류가 굉장히 많았지만 최근 서로 회사 분위기 안 좋아 지면서 많이 못 만났어요. 만남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날은 얘기 많이 하고 서로 파업에 대한 독려와 격려를 하며 늦게까지 사람들도 안 가더라고요. 이번 파업은 긴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은 되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고 있어 그리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 선전전 할 때 시민 반응은 어때요?
"예전에는 파업하면 많은 분이 잘 모르시고 관심도 없고 때로는 냉대도 있었어요. 물론 지금도 100% 다 호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파업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지하고들 계세요. 뭔가 바꿔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도 있고 아울러 영화 <공범자들>도 개봉했죠.

사실 방송사 내부 속사정까지 시청자들이 알기 쉽지 않잖아요. <공범자들>을 관람하신 분들은 공감도 해주시고 지지도 해주세요. 선전전 하면 영화 봤다고 응원해 주세요. 물론 왜 파업하냐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러나 전반적으로 유인물도 잘 받아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는 게 고마웠어요."


- 내부 구성원 분위기는 어때요?
"제가 입사 11년 차예요. 그동안 크고 작은 파업들을 겪어 봤는데 그 어느 파업보다 가장 참여도 높고 열망도 높고 예전과 다르게 간부들도 계속 보직 사퇴하고 참여하고 있거든요. 보직 사퇴는 큰 용기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는 후배들 입장에서는 힘이 나요. 이번에는 집회가 다양하게 있어요. 힘들 수도 있지만, 모두 즐겁게 하고 반응도 좋아요."

- KBS는 MBC와 다르게 지난 2014년 승리했던 기억도 있죠.
"그런 자신감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승리가 완벽한 승리라고는 할 수 없어요. 어쨌든 길환영 사장 이후에도 정권과 관계가 돈독한 사장이 내려왔죠. 그래도 저희 힘으로 변화를 이뤄냈다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때보다 더 잘될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 동시에 2012년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얘기는 좀 복잡한데, 사실 저희 아나운서 구역이 새노조와 1노조로 따로 나뉘어 있잖아요. 아나운서는 처음부터 새노조 참여한 사람이 100명 중 10여 명밖에 안 됐어요. 지금은 60명이 넘었어요. 새노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유무형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어요. 그래서 쉽게 뜻을 같이하지 못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점 늘어 지금까지 온 것이거든요.

저도 2012년엔 새노조 소속이 아니라서 파업은 안 했어요.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불편하고 안타까운 게 많았죠. 같은 사무실 쓰는 아나운서들이 다치잖아요. 그들도 상처를 많이 받았죠. 그래서 그래 저희 아나운서실 같은 경우에도 그 일이 있고 나서 위에서 갈라놓은 거죠. 원치 않는 분리가 봉합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하나의 목표가 생기면서 다시 뭉치고 있죠."

- 그럼 오 아나운서는 어떻게 새노조에 가입하셨어요?
"1노조가 싸워야 할 때 못 싸웠다는 실망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희가 인간관계로 묶여있어요. 당시 아나운서 구역의 중앙위원 있던 선배에 대한 신뢰도 있어서 늦게 옮긴 것도 있어요. 새노조가 지향하던 바에 대한 지지가 있었지만, 당장 행동으로는 못 옮겼어요.

아마 길환영 사장 퇴진 이후일 거예요. 길 사장 퇴진 때는 새노조와 1노조가 같이 파업했죠. 그런 성공의 경험도 있고 그 후 여러 일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새노조가 지향하는 바에 의해서 순수성이나 방향성에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저도 자연스럽게 옮겨간 거죠. 처음 천 명도 안 된 새노조가 지금은 2천 명이 넘었어요."

- KBS 기자들이 촛불 집회 취재 나가면 비판받았잖아요. KBS 아나운서로 그런 움직임을 어떻게 보셨어요?
"그때 다들 정말 힘들어했어요. 저희가 그동안 잘했다면 안 그랬겠죠. 그동안 잘못 했더라도 잘못한 걸 인식하고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잘 보도했더라면 그렇게 비판과 외면받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공영방송인데 'KBS에 주는 수신료 아깝다. JTBC에 수신료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겠어요.

KBS 보도가 많은 비판을 받았죠. 모두가 기자인 건 아니지만 저희 회사잖아요. 좋은 보도가 스테이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거라 너무 힘들었죠. 오죽하면 자조 섞인 말로 '나도 KBS 뉴스를 안 보고 JTBC 뉴스를 보는 데 시민들이 KBS 뉴스를 보겠느냐'고 했거든요.

제가 2007년에 입사했는데 당시 KBS는 공정하고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어디에서나 박수받고 탐사 보도로서 시민의 가려운 걸 긁어주고 성역 없이 보도하는 걸 자랑스러워 했죠. 그런데 그 회사가 9년 동안 차츰차츰 무너지는 걸 보는 것이 저로서는 얼마나 안타까웠겠어요?"

-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거 같아요.
"그렇죠. 그래서 MBC 아나운서는 많이 나갔잖아요. 저희도 안에서 답답하니 뉴스타파로 가신 기자도 있고 아나운서도 있어요. 또 '내부에서 안 되는 데 해서 뭐하냐'는 자조 섞인 말을 하면서 생활인으로 산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더 외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죠. 집회를 나가거나 저희 내부에서도 집회를 하다 보면 그런 열망이 느껴져요. 저는 회사를 사랑하고 자긍심도 있죠.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돌아가면 잘할 것이란 걸 믿으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 오 아나운서에게 KBS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 정체성이죠. 제가 유명 아나운서는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KBS 아나운서 오언종입니다' 했을 때 사람들은 저를 보는 게 아니라 회사를 보고 저를 평가하잖아요. 저는 그 사실이 좋고 그에 걸맞은 사람도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KBS 아나운서 오언종입니다' 했을 때 사람들이 '저 사람 참된 공영방송의 구성원으로서 방송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느끼려면 KBS가 달라져야 제 정체성이 바로 설 것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KBS가 바로 서야죠."

- 방송인에겐 프로그램이 자식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파업 때문에 마이크를 내려놓아야 했던 심정은 어떠셨어요?
"자식이 아프면 병원에 떼어 놓아야 하잖아요. 아파서 엄마·아빠 찾는다고 안고만 있으면 더 아프잖아요.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순 있지만 아프면 병원에 보내야죠. 저는 제 자식 같은 프로그램을 잠시 병원에 보낸 거라고 생각해요. 고쳐서 다시 데려와야죠."

- 지난달 MBC 아나운서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신동호 국장의 만행을 폭로했었잖아요. 어떻게 들으셨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MBC 아나운서들과 친해요. 계속 그 얘기를 들어왔어요. MBC 아나운서와 저희 아나운서는 오랫동안 교류했고 한국 아나운서협회라는 큰 조직을 이끌어가는 양대 산맥이기도 하고 경쟁자이면서 동료예요. 사람들이 라이벌이라고 하면 사이가 나쁠 거라고 생각해요.

내부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있어서 힘들었는데 더 크게 망가지고 힘들어하는 또 다른 동료들 보며 '이러면 안 된다.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문제다. 같이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방송사가 달라서 한계가 있죠. 저번에 만났을 때 발전적인 계획을 만들자고 했어요.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 아나운서로 9년 중 가장 힘들었던 땐 언제였어요?
"KBS가 제 정체성이라고 했잖아요. 정체성이 흔들리고 우리 방송사가 망가져 가는 걸 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리고 저희는 전면에 서서 방송하잖아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종편을 만들고 미디어를 많이 만들어 경쟁시키니 더 자극적이고 제가 KBS를 좋아했던 것 중 하나가 건강한 프로그램이 많았거든요. 그러나 미디어법이 통과되어 시청률 위주 경쟁하고 건강한 프로그램을 만들던 사람들은 내부가 안 좋으니 나가서 다른 방송사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죠.

<삼시세끼>라든지 <히든싱어> 등 요새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은 다 저희 KBS 출신 선배PD들이거든요. 근데 저희는 그걸 못 만들고 저희가 하는 프로그램은 종편의 신변잡기 같은 질 낮은 방송이나 정권홍보 방송이거든요. 그러면서 저희가 설 자리도 없는 거예요. 그런 방송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도 속상했죠. 같이 신나서 건강한 방송에 참여해야 하는 데 그런 것이 안 되는 게 너무 힘들었죠. 그리고 조직 내부에서는 사 측이 교묘하게 자기 말 잘 듣는 사람과 안 듣는 사람으로 나눠서 내부를 분열시켰어요. 원하지 않는 분열에 휩싸여서 나뉘는 조직 모습 보는 것도 힘들었죠."

- 아무래도 시청자들은 드라마와 예능을 많이 보잖아요. 하지만 KBS 드라마는 물론 대부분 예능 프로그램 결방이 없어 파업 느낌이 안 나는 것 같던데.
" 방송 열심히 보신 분은 알 수도 있고 안 보는 분은 모를 수도 있겠어요. 중요한 것은 표가 안 난다고 저희가 파업을 불성실하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누가 보든 안 보는 열심히 한다고 나타내는 표시가 아나운서들에겐 방송을 안 하는 거고 우리가 예전과 다르게 여러 가지 채널로 홍보하고 있거든요. 방송 파행도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도 중요하죠."

- 하지만 똑같이 파업하는 MBC는 예능 대부분이 대부분 결방이잖아요. KBS는 교양 프로그램이 결방되지만, 예능은 정상방송해서 파업하는 것 맞냐는 의견도 있거든요.
"MBC는 제작 거부를 빨리했기 때문에 그렇고 저희도 그들보다 늦었지만, 결방 프로그램이 하나둘 나오고 있어요. 오늘(12일) 당장 <1박2일>이 촬영을 중단했어요. 파업 효과가 다음 주부터 나올 거예요. 그리고 드라마는 대부분 외주라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내부 제작 프로그램은 차례대로 결방될 거예요."

- 파업이 길어질수록 노조에 불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저희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사장이 나갈 때까지 할거예요. 김장겸 사장이나 고대영 사장이 제 발로 나가진 않을 것 같아 이사회를 움직여야 하잖아요. 길환영 사장도 이사회 통해 해임 시켰잖아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야죠. 그래서 이번 주는 이사를 만나고 있어요. 오늘도 명지대 가서 그동안 KBS가 망가지는 데 이사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리고 명지대 학생들에게도 알리려고 간 거거든요. 계속 만날 텐데 그러다 보면 결과가 있겠죠. 지성이면 감천이라잖아요."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세요.
"민주주의 사회이고 견해도 다양하다 보니 여러 의견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 다수의 시민들이 KBS와 MBC 사정을 아신다고 느끼고 있어요. 응원을 많이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9년간 나름 싸워보고 저항도 해봤지만 쉽지 않았어요.

물론 그걸 알아달라는 거 아닙니다. 못 막은 건 저희 잘못이기도 하죠. 그런 잘못을 시민들께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면서 지금이 바꿀 적기라고 생각해 열심히 싸우고 있으니까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왜냐면 KBS와 MBC는 저희 것이면서 여러분의 것이거든요. 지켜봐 주세요.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언종 #KBS 새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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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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