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책 같은 걸 만들었다고 한다

[재밌다고 소문난 책방일기] 독립출판물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를 읽고

등록 2017.09.20 08:21수정 2017.09.2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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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김종완, 김현경. 그들이, 책 같은 걸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은 책인지 책이 아닌지 책 같은 건지 그래서 책이라는 건지.

이 세 명은 약간 모자란 듯 보이기도 하고 조금 과하기도 하고 어쩐지 이곳에서 벗어나 있는 것도 같다. 나는 간단히 말해 '좀 이상한 인간들이야~'라고 아주 친한 친구에게 말한다. 조금 덜 친한 사람들에게는 '음, 독특하신 분들'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그들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직접 만나봐야 '겨우' 짐작할 수 있다. 나도  겨우 '짐작'하는 수준에서 쓰는 글이다. 누군가는 그들에게서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나 보다는 누군가의 판단이 맞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책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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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김봉철의 독립출판물 ⓒ 황남희


김봉철.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와 <봉철 비전>, 최근 <이면의 이면>까지 세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다. 굉장히 허접해 보이지만 읽다 보면 빠져든다. 굉장히 솔직하고 이보다 더 찌질할 수 없는 자신의 성격 고백은 '내가 얘보다는 좀 낫다'란 위로를 받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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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완의 수제 제본 책 <하염없이 눈 내리는 밤> ⓒ 황남희


김종완. <이상해>, <택시를 잡는 여자>, <하염없이 눈 내리는 밤> 독립출판물로는 드물게 소설을 썼다. 인쇄소를 거치지 않고 집에서 가정용 프린트기로 출력하여 본드로 책을 제본했다. 보자마자 '뭐지, 이따위 모양새는' 하는 생각이 들지만, 집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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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수기집 <아무것도 할 수 있는> ⓒ 황남희


김현경.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이란 우울증 수기집을 만들었다. 만듦새도 좋고 내용도 의미 있다. 많은 이들이 기성 출판물 못지않게 찾는 책이다. 하지만 가까이 하기엔 어쩐지 우울한 포스가 풍풍 풍겨 조금 거리를 두고 싶게 생겼다. 그 거리를 좁히면 비로소 위로를 얻게 된다.

그는 자신의 책을 읽고 "미친 새끼 같아"라고 소리 내어 웃는 독자를 보며 틀린 말이 아니기에 같이 웃었다. 김봉철 얘기다. 그는 처음 간 인쇄소에서 직원이 너무 불친절해서 직접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종완 말이다. 그는 자신의 통장에 가장 많은 돈이 찍힌 날 칩거하기 시작했다. 김현경 말이다.


김봉철은 해방촌에 있는 책방에 입고 메일을 보낼 때 주소를 잘못 적었다. 후에 메일 주소를 잘못 기재했다는 걸 알고 다시 메일을 보내 기뻐하며 입고했으나 결국 책은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김종완은 남양주에 있는 책방 T에 두 번 갔다. 그때마다 책방 앞 편의점에서 복권을 샀는데 두 번 모두 당첨되었다. 김현경은 책방에 손님이 없어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왔고 아예 손님과 맥주를 같이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책방에서 마주한 사건사고(?)가 특별할 것 없지만 조금 기묘했다. 조금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 말도 못 하게 따뜻했다. 그건 그들이 만들어낸 분위기이기도 하고 책방이 가진 원초적 풍경이기도 하다.

어느 책방에서 쭈뼛쭈뼛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라고 하며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 이들이 있다면 김봉철 아니면 김종완 아니면 김현경이다. 이건 이제 이상한 일이 벌어질 조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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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 표지 독립출판 제작자들의 책방 방문기 ⓒ 황남희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는 독립출판 제작자들의 책방 방문기로 동네 숨은 책방들과 제작자들의 기묘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공간에 머문 시간에 대한 이야기고, 그 시간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책방이란 공간이 되어버린 사람들인데 공간을 채운 건 책방지기만이 아니다.

작은 책방에서는 누구도 익명일 수 없다. 그곳에서는 책방지기가 작가의 가장 큰 팬이 되어 덕질을 하고, 손님이 제작자가 되어 책방을 알리고, 제작자가 책방지기가 되어 책을 판다. 김봉철, 김종완, 김현경이 그러했듯이!

그들은 정해진 순서대로, 각자의 역할을, 순차적으로 해나가는 일종의 컨베이어 벨트같은 세상을 보기 좋게 비웃는 일당들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맘에 들지 않으면 독립출판물을 제작하거나 독립책방 주인장이 되면 된다. 바꿔 말해 독립출판 제작자나 독립책방 주인장들은 세상 돌아가는 게 꼴보기 싫은 삐뚫어진 인간들이다(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제작자와 책방지기는 정확히는 비지니스 관계인데 세상에서 가장 느슨한 비지니스 관계다. 그들은 같이 술을 마시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무엇보다 서로 간의 수익이 숫자 0에 가까움을 안다. 이런 쓸모없는 비지니스 모델이 있단 말인가. 우정이 아니라면 설명할 말이 없다.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는 책방에 대한 커밍아웃이다. 그러니 책 같은 걸 만들었다고 좋아하지! 나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좋아요'를 아낌없이 보내고 있다.

나는 이 책방일기를 읽고 독자들이 '책 같은 건 뭔데?'라고 궁금해하며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를 집어 들기 바란다. 책을 집어 드는 공간은 반드시 동네책방이어야 할 것이다. '책 같은 걸' '책방'에서 집어 들 때 비로소 그것이 '책'이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테니까.

덧, 누가 뭐래도 이 책의 백미는 171p이다.(궁금하면 책 사서 읽기!)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후북스 책방지기입니다.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를 많이 읽으시고 이 책에 나온 책방들을 꼭 방문해 보세요.
#독립출판물 #저도책같은걸만드는데요 #독립책방 #동네책방 #책방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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