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제일의 모든 역사가 강경에 있다"

[동행취재] '이제는 금강이다' 역사·문화유적탐방

등록 2017.09.20 10:13수정 2017.09.25 15:05
0
원고료로 응원
a

박범신 작가의 마흔 번째 장편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된 집이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다. ⓒ 김종술


금강 하류에 위치한 강경은 근대에 강경포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조선 3대 시장의 명성과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일찍이 기독교, 천주교 등이 종교문화와 함께 상업, 교육이 발달했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역사·문화유적을 둘러보고 금강을 돌았다.

충남문화재단은 '이제는 금강이다'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난 1일부터 금강걷기를 하고 있다. 18~19일 양일간 이들과 동행했다. 논산 강경 역사·문화유적 탐사에 <소금>의 저자인 박범신 작가와 소설 <금강>의 김홍정 작가, 독도 사진 작가인 이정호씨, 금강의 영상콘텐츠를 제작해온 정경욱 감독, 산악전문가 김성선·조수남씨 등이 함께했다.

금강걷기 19일째, 논산 탐사 사흘째. 해발 43m의 '옥녀봉(강경산)' 공원에 논산문화원과 논산 예총 회원 및 시민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잡풀이 무성한 공원은 낮은 봉우리지만, 사방이 거칠 것 없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그러나 이날은 안개가 끼어서 건너편 부여군 세도면이 어렴풋이 보일 정도였다.

a

논산에서 75년째 살고 있다는 김무길씨가 강경의 역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종술


논산에서 75년째 살고 있다는 김무길씨가 안내를 맞았다. 설명에 나선 김씨는 "옥녀봉의 나무는 노쇠해서 쇠기둥으로 받쳐 놓았다. 당산나무 아래에 강경침례교 최초 예배 지가 있었지만, 일본에 수탈되어 일본인들의 '신사' 참배를 하는 자리였다.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강경제일 감리교회에서 올라오는 돌계단이 108개단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인들이 강제로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동원의 길'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장대석'(계단이나 축대를 쌓는 데 쓰이는 네모지고 긴 돌)만 남아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일본 경찰을 앞에선 '나리', 뒤에선 '개'라고 부를 정도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핍박했다. 삼일운동 당시에도 대규모로 1천 명에서 1천 5백 명까지 7차례나 운동이 일어났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구) 강경노동조합, (구) 한일은행, 연수당한약방, 나바위성당과 김대건 신부가 첫 미사를 지난 곳 등 전국의 등록문화재 근대건축물 700곳 중 강경에만 10곳이 있다. 또 강경이 개발과 발전에서 벗어나서 근대문화유산과 향토유적이 많은 곳이다.

당시 포구에는 새우 배가 200척 정도의 배를 댔다. 새우를 잡아 오면 객주가 사들여서 팔다가 남은 것을 저장하면서 강경의 젓갈이 유명세를 얻게 된 것이다. 또 왜구의 노략질이 심할 때도 땅에 묻어놓고 도망갔다가 돌아와서 먹기도 했다."

각종 운동기구와 기념비가 뒤섞인 공원엔 '강경 항일독립만세운동', '순국열녀 안순득 여사'의 공적비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30년으로 표기된 느티나무는 강바람이 불어오자 노란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박범신 작가의 마흔 번째 장편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된 집으로 이동했다. 입구는 환상 넝쿨이 뒤덮고 슬레이트 지붕은 깨져서 을씨년스럽다. 박범신 작가가 나섰다.


a

<소금>의 저자인 박범신 작가가 설명하고 있다. ⓒ 김종술


"소설 속에 이 집은 상당히 크고 터도 넓다. 마루에서 소금도 팔고, 공동체의 회복을 경험하는 장소이다. 강 건너 (부여군) 세도에 사는 여학생과 첫사랑을 나눈 아버지로 낮에는 서천 염전에서 일하고 밤이면 기타 들고 동네 어른들과는 노래도 했다. 지금은 염전의 문을 닫고 새우양식장으로 변했다.

가끔 옥녀봉에 오면 소금이란 책을 들고 찾아온 사람들을 만난다. '선생님 소설 속에 소금 집은 풍경이 멋있는데, 와보니 별거 아니다'고 항의하는 독자도 있었다. 지금은 비닐하우스와 전봇대가 들어서면서 훼손되었지만,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다. 소설 소금은 50년 동안의 압축성장을 이루어서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 선배들은 야수적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설 자리도 없다. 굽은 어깨를 돌아봤으면 한다. 문학에서 어머니의 희생을 그린 소설은 많은데, 아버지를 생각했으면 한다. 집을 키우고 앞에 도라지가 피었다고 생각하면 밤에 달빛이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돌아보길 바란다.

내가 쓴 책 중에 자본주의를 비판한 소설 중 <소금>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등 세 권 있다. 그중 독자에게 가장 많이 팔린 것이 소금이다. 늙어가는 쓸쓸한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는 장소로 봐줬으면 좋겠다."

a

강경둔치공원으로 향하는 자전거도로에 가시박이 뒤덮고 있다. ⓒ 김종술


금강길 강경 등대가 바라다보이는 곳으로 걸어 내려갔다. 배롱나무꽃이 울긋불긋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강변 둔치로 행하는 인도까지 가시박이 뒤덮었다. 4대강 자전거도로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가시박이 칭칭 감아 놓았다. 번성했던 강경 포구의 옛 사진도 강경 갑문 인근에 걸려있다.

박범신 작가의 청년기 방황의 장소이자 문학의 꿈을 키웠던 둔치공원으로 이동했다. 박 작가는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4~5m 정도의 키 큰 갈대가 자라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길도 없는 고수부지였는데, 지금은 휑한 공원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익산 남성고등학교를 다녔다. 집에서 기차 타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학교 안 가고 여기 갈대밭으로 들어와서 숱한 나날을 보냈다. 책을 읽고 도시락 까먹었던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74년쯤 서울에서 살다가 힘들고 고달프고, 상처받아서 밤 기차 타고 추억의 장소로 왔더니 강경에 분뇨처리장을 세워 놓았다. 갈대가 썩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룻밤 만에 분노로 쓴 소설이 <겨울 아이>다. 작가 박범신의 문학적 자궁인 장소다. 갈대가 높아서 밖에서 보이지 않으면 가끔 지나는 사공들과 손을 흔들던 곳이다. 당시 선생님들이 '폭탄'처럼 여기며 내버려 둔 학생이었다."

a

강경포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던 강경포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 김종술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으로 봉사와 후진을 양성하던 교육 기능을 겸하여 설립된 '죽림서원'으로 이동했다.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 등 6인의 현인들을 모시고 있으며, 6현 서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구불구불한 작은 언덕을 오르자 '임이정'과 우암 송시열 스승과 같이 있고 싶은 제자의 마음에 100m 떨어진 곳에 후일 건립했다는 '팔괘정'을 돌아보았다.

논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립한 '박범신 문학비' 앞에서 작은 공연이 이어졌다. 이후 (구 노동조합) 강경문화안내소와 미곡창고, 김대건 신부 유숙지, 연수당 한약방, (구) 한일은행과 스승의 날 발원지인 강경 상고를 찾았다. 학교 좌측 작은 돌탑에 새겨진 김관식 시인의 <이 가을에>란 시비가 있다.

窓밖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가을이던가
鹿車에 家具를 싣고
이끼 낀 숲길
영각소릴 쩔렁쩔렁 울리며
어디로든지
떠나고 싶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도 없네
반겨 맞아 줄  고향도 집도

순채나물
鱸魚膾
江東으로 갈거나
歐陽修
글을 읽는
이 가을 밤에

a

소설 <금강>의 김홍정 작가가 김관진 시인의 <이 가을에>란 시비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 김종술


소설 <금강>을 쓴 김홍정 작가가 안내를 맡았다. 김 작가는 "개인적으로 김관식 시인을 제일 좋아한다. 그는 시대를 뛰어넘는 시를 썼다. 여기에 서 있는 <이 가을에>란 시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삶이 들어 있다. 외로움과 고독에 시달리고 있는 시인의 서정적 면모가 드러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캐나다로 갔다가 죽었다. 젊은 나이에 천재가 죽었다. 후일 평가받기를 평안도에 김소월이 있고, 충청도에는 김관식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위대한 시인이다"라고 추켜세웠다.

한편, '이제는 금강이다' 탐사단은 금강 걷기 19일째. 논산탐사 3일째 일정을 마무리했다. 내일 하루를 쉬고 모레(21일) 서천군 화양리 면사무소에 모여 신성리 갈대밭을 걷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된다.
#강경 포구 #박범신 #김홍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창녀에서 루이15세의 여자가 된 여인... 끝은 잔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