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선 당연한 일인데, 한국선 왜 '민폐'가 될까요

한국 교사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호주의 교사들

등록 2017.09.20 10:57수정 2017.09.2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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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H는 오늘도 어김없이 불만이다.

"도대체 여기(호주 멜버른) 교사들은 언제 일하는 거야? 저렇게 띄엄띄엄 일해도 안 잘리는 거야?"

그녀는 서울 근교의 평수 넓은 아파트가 들어선, 사교육 경쟁이 심한 곳에서 아이들의 유학을 위해 1년간 호주로 왔단다.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지지도 밀리지도' 않기 위해서, 초등 고학년 때 영어권 나라(호주,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 그 지역 학교의 유행이라 했다.

많은 한국 이민자 학부모들은 이곳 교사들의 근무 태도에 혀를 내두르며, 한때는 원망과 불신의 대상이었을 '한국의 교사상'을 그리워하곤 한다.

내가 첫 임용이 되었던 2000년, 병가를 낸 다음날 교직 경력 30년을 채워 간다는 선배교사는 조언했다.

"이 선생, 교사는 죽을 만큼 아프지 않다면 교단에 서는 거야. 교탁에 엎드려 자습을 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교실엔 들어가야 해."

대부분의 교사 초년병이 그렇듯 '교직은 천직', '사명감' 같은 순진한 단어들에 취해있던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마지막까지 수업을 하다 장렬히 쓰러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 분을 존경하려던 찰나, 이런 말이 날아왔다.


"그래야 이 선생의 수업이 동료에게 떠넘겨지지 않는 거야. 자습이라도 시켜주는 게 수업이 빽빽한 동료들에 대한 예의야."

호주 교사들을 보며 눈물이 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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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 시절, 내 소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법에서 정한 근무시간에만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 픽사베이


처음엔 섭섭하기만 하던 그분의 조언은, 오랜 경험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혜안이 가득한 일갈이었음을 깨달았다. 병가 하루 이틀 내본 대한민국 교사는 알게 된다. "건강관리도 능력"인 한국에서 병가를 자주 쓰는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로 부터는 말할 것도 없고 동료들에게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재직 시절, 내 소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법에서 정한 근무시간에만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정규 수업 이후의 프로그램들은 체력적으로도, '학생들에겐 스스로 되새김질할 시간이 필요하다'란 나의 교육철학과도 상반되는 수업들이었다. 보충수업이나 야간 수업은 강사를 채용해달라고 했다.

하루에 세네과목의 수업 준비를 하다보니 정규수업의 질마저 떨어지고, 이는 결국 교사의 자존감과 전문성에도 해가 된다는 하소연은,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유별 떤다'는 이유로 묵살되곤 했다. 대신 "중(교사)이 절(학교제도)이 싫으면 떠나야지." 몇명이서 내 앞에서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들의 염원 덕인지, 자발적인 떠밀림을 당한 나는 호주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을 보면 눈물이 왈칵 맺히곤 한다. 내 지난날의 비애와 현지 교사들이 누리는 근무여건의 부러움, 한국에 남은 동료 교사들에게 미안함 등이 쑥버무리처럼 마구 범벅이 된 탓이다.

지난 두 번째 텀(학기, 호주의 일년 교육과정은 4텀으로 이루어지고 각 텀 사이에 방학이 있음)에는 교감이 본인의 딸이 다른 주에서 열리는 과학대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한달간 결근을 했다.

세 번째 텀에는 6학년 담임인 S가 2주간 휴가를 냈다. 골드코스트에서 열리는 전국 에어로빅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한 학생들을 인솔했기 때문인데, 멜버른에서 골드코스트까지 2시간여의 비행, 2박 3일간의 숙박 및 행사장으로의 이동 등은 모두 개별 학부모의 몫이었다.

대한민국 교사의 조건

며칠 전에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3주간의 compassionate leave(특별휴가)를 갖게 됐다는 안내 메일이 왔다. 상상력의 한계도 국경을 넘나들기 어려운지, 대한민국 교사였던 나는 할머니가 아닌 어머니의 간병으로 착각을 하고 말았다.

멜버른의 교사들이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처럼 자유롭게 휴가나 병가를 쓸 수 있는 비결은 '대체교사 인력풀'이 항상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부재가 수업의 결손을 의미하지도 않고, 다른 교사에게 '수업 폭탄 돌리기'도 일어나지 않으니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터이다.

"그렇게 결근을 밥먹듯 할 거면 그만둬야 하는 거 아냐?"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에 의한, 대한민국을 위한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학부모 H의 '교사자격 조건'에는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결근하는 호주 교사들은 '퇴출 당해 마땅'해 보인다.

한때 '뒤쳐지지도 밀리지도' 않기를 바라며 멜버른까지 와서 유학을 시킨 아이들도 한국에서 직장을 잡는 순간 쉽게 "절을 떠나거나", "잘리거나", "그만 둬야 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H는 알고 있을까?
#한국의 교사 #호주의 교사 #멜버른 #한국의 교사상 #호주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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