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한강으로 떠내려온 장대한 바위

[써니's 서울놀이 18] 겸재도 그림으로 남긴 한강가의 바위섬, 서울 구암공원 '광주바위'

등록 2017.09.21 10:47수정 2019.06.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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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 이채로운 풍경을 자아내는 광주바위. ⓒ 김종성


자전거를 타고 서울 강서한강공원 자전거도로를 달리다보면 이색적인 공원을 만나게 된다. 공암나루 근린공원(강서구 가양동)이 그곳으로 아쉽게도 공암나루터는 사라지고 없지만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공원길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단풍나무를 많이 심어 놓아 가을철엔 아름다운 단풍길 명소가 되기도 한다. 배드민턴장, 농구장, 족구장 등도 있어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서울 자전거 따릉이 대여소와 함께 자전거도로도 옆에 따로 나있다.


강변 자전거도로엔 없는 나무가 많이 살고 정자가 마련돼 있어 강서한강공원을 지날 땐 꼭 이곳을 통해 간다. 강변의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소음을 막기 위해 높이 설치해 놓은 방음벽으로 한강의 풍경이 보이지 않아 아쉽기도 한곳이다.

공원 이름에 뭔가 유래가 있겠구나 싶었는데, 조선시대 도성과 양천고을, 강화를 이어주던 나루 중간쯤에 구멍이 뚫려 있는 바위가 있어 구멍바위, 즉 '공암'이라 하는 나루의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강서구 가양동은 조선시대 경기도 양천현이었다.

탑산과 함께 한강의 절경 명소였던 바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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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가를 따라 길게 나있는 공암나루 근린공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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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공원 정자에서 보이는 바위들과 연못. ⓒ 김종성


따사롭게 느껴지는 초가을 햇살을 즐기러 나온 동네 사람들,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달리다보면 도심 공원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바위가 비현실적으로 나타난다. 장대하고 풍채 좋은 이 바위에 붙은 이름은 '광주암'. 구암공원 연못에 터를 잡고 동생뻘인 여러 개의 바위들과 함께 모여 있다.

구암공원은 80년대 한강가에 올림픽대로를 건설하면서 강을 막아 만든 곳으로 강의 일부분이 잘려나와 작은 호수처럼 된 곳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바위 주위가 늪지대였으나 가양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늪은 현재의 작은 연못으로 졸아 들었다. 광주바위는 12m 높이에 집 한 채 크기에 달했고 작은 나무 몇 그루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다.


1960년대 한강개발이 시행되기 전까지 이곳 광주암까지 한강물이 넘실거렸단다. 공원 한쪽에 올림픽대로가 깔리면서 사라진 탑산(塔山)의 절벽 일부가 남아있다. 탑산 절벽 앞 강위에 떠있는 바위섬 광주바위가 어울려 한 폭의 절경을 자아냈다던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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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2년 겸재 정선이 광주암과 공암을 그린 작품 <소요정>. ⓒ 위키피디아


전국에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명승지마다 풍경화를 남긴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림으로 남길만했다. 겸재는 소요정(逍遙亭)이라는 제목으로 광주암과 공암을 그렸다. 소요정은 탑산위에 자리했던 풍광 좋은 정자 이름이다. 한강에 수많은 배가 드나들던 조선시대엔 뱃사람과 뱃놀이 객들이 바위 앞에 잠시 길을 멈추고 넋이 빠지게 구경했던 명소였다고.

바윗돌 이름이 '광주암'이 된 전설 같은 사연이 구암공원 안내판에 써 있다. 아주 옛날 큰 장마 때 경기도 광주에서 물에 떠내려 온 바위란다. 바로 옆에 있는 강변 올림픽대로가 생겨나기 전에는 이곳까지 한강물이 들어찬 강가였을 테니, 바위가 떠내려 왔다는 전설이 그럴듯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떠내려온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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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장대한 광주바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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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공원 한편에 80년대 한강종합 개발로 사라진 탑산의 흔적이 남아있다. ⓒ 김종성


고을에서 애지중지 하던 바위가 갑자기 시야에 안보이자 광주고을은 발칵 뒤집히고, 광주현감(縣監)은 바위의 행방을 서둘러 수소문하여 양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광주현감은 양천현감을 찾아가 우리 고을 바위가 당신 고을에 자리 잡아 좋은 경치를 보여주고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라고 요구한다. 이에 양천현감은 바위에서 나는 싸리나무를 베어 싸리비 세 자루를 만들어 한동안 세금조로 보냈다고 한다.

멀리 경기도 광주에서 이렇게 큰 바윗돌들이 여기까지 떠내려 왔다니 홍수가 무섭긴 무섭다. 큰 장맛비는 예상치 못하게 중요한 유적을 발견하게도 한다.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몽촌토성, 풍납토성이 처음 학계에 발견된 것도 악명 높았던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대량의 토사가 휩쓸려가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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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바위를 닮아 풍채가 좋은 잉어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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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바위 연못에 사는 붉은귀 거북. ⓒ 김종성


제각각 모양의 바위들을 감상하며 광주암 연못가를 거닐다 떼로 몰려다니는 잉어들이 눈길을 끌었다. 풍채 좋은 바위들 아래 살아서 그런지 몇 몇 잉어들이 내 장딴지만큼 컸다. 아마 한강가에서 본 잉어 가운데 제일 크지 싶었다. 동네 주민들이 잘 먹인 것 같다. 연못엔 외래종인 붉은 귀 거북이도 느릿느릿 헤엄을 치며 다니고 있었다.

공원엔 동의보감에 나오는 여러 가지 약초들을 직접 기르고 있는 '약초원'이 있어 특별했다. 그런데 무척 익숙한 약초들이 많았다. 제비꽃, 민들레, 패랭이꽃, 산국…. 예쁘고 때깔고운 들꽃인줄로만 알았던 꽃들이 약초 혹은 한약재로 쓰였다니, 약효가 쓰여 있는 안내 팻말을 흥미롭게 읽게 된다.

광주바위를 품고있는 구암공원의 구암(龜巖)은 가양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허준 선생의 아호로, 동의보감을 저술한 선생을 기리고자 만든 공원이다. 공원 바로 뒤에 허준 박물관도 있으니 함께 들릴만하다.
덧붙이는 글 * 9월 16일에 다녀왔습니다.
* 광주바위 위치 :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1471 구암공원내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했습니다.
#광주바위 #공암나루공원 #구암공원 #광주암 #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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