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모를 액체가 줄줄... 반복 노동의 결과는 '골병'

늦은 밤, 아무도 모르게 '재활용 노동자'들과 함께하다

등록 2017.09.22 20:56수정 2017.09.22 20:56
0
원고료로 응원
a

청소 노동자들이 신속하게 비닐을 처리하고 있다. ⓒ 김민수


"오늘 같이 일할 분들입니다. 자, 애들아 안전이 최우선이다 안전이. 알겠제?"

의대생들이 '재활용 업체' 사업장에서 일을 돕겠다는 기상천외한 부탁을 했고, 지난 18일 이 시간이 성사되기 까지 많은 역경이 있었다. 공부만 하던 대학생들이 난데없이 사업장에 찾아와서는, 일도 잘 못하면서 궁금한 것을 묻기만 하는데 반길 이유가 있나. 그러나, 현장 책임자 분 덕분에 우리는 부산 남구 재활용 선별동으로 향했다.

"오늘 양이 제일 많은 날이데이... 쉬엄쉬엄 하면서, 궁금한 거 있음 이 친구에게 물어보고 내한텐 물어보지말고."

도착하자마자 선별동에서 풍기는 특이한 냄새에 매료되던 찰나에, 현장 최고참 형님이 오늘 나와 옆에서 함께 할 분을 소개시켜 주셨다. 나이는 마흔 하나. 공대를 졸업하여 직장을 다니다가 때려 치고, 이리저리 사업도 해보고 하다가 들어오셨다고 한다.

"여기는 참 많은 분들이 계신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지."

재활용 노동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50대 중년의 남성들. 사업실패나 파산이나 여러가지 아픈 이야기들이 많다. 요즘은 알바를 하겠다고 들어온 젊은 사람들이 한 번씩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처럼 오래도록 하지는 않는다.

20대면 아직 가능성이 많고, 기회가 많으니까. 중년 남성들은 이 직업이 마지막 종착지라고 생각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이 형님은 밖에서는 그냥 운전하는 분이다.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더미 속으로

a

비닐로 싸여진 플라스틱 들을 일일히 빼내기 위해 쓰레기 더미 속으로 들어간 의사 선생님. ⓒ 김민수


"재활용 수거 비율은 높다고 들었는데, 얼마만큼 다시 쓰이나요?"
"약 10퍼센트 정도? 생각보다 그렇게 높진 않아. 섞여있는 것도 많고, 자체적으로 선별도 안 한 게 많아서."

분리수거 비율이 세계 2위인데, 재활용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형님의 이야기로는 편의점, 커피프랜차이즈가 들어선 이후 플라스틱이 들어오는 양이 는 반면에, 재활용률은 좀처럼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특히, 내용물이 들어있거나 세척이 불가능한 이물들이 많이 붙어 있으면 재활용 가치가 많이 떨어지기도 한다고.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플라스틱 중엔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많다. 큰 집게로 들어 올리면 떨어지는 액체들은 출처를 알기 어렵고, 화학약품이 들어가 있을 경우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오래된 것들은 바퀴벌레나 개미들이 들어가 있어 미간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더미 속에 들어가게 된다. 차라리,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불평이면 할 게 많지만, 그래도 여기는 상하 관계가 없고 수평적이라서 복잡한 생각은 안해도 되니깐 이렇게 오래 있는 거 같어."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다들 형 동생 이라고만 부르시는거 같아요."
"일은 고되긴 하지만 서로간에 불편한 게 없어서 좋더라구."


현장에서는 역할분담을 제외하고는, 상하관계가 없다 보니 서로 편하다고 한다. 다들 비  정규직이지만, 사업장에서 나름 신경을 쓰는지 매년 계약을 해서 수입도 꾸준히 있고, 노조가 생겨서 다쳤을 경우에 이제는 산재보험처리도 받을 수 있고, 건강검진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낮과 밤이 바뀌는 직업 특성상 건강은 점점 나빠진다. 매년 건강검진을 하면,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지방간이 나오는 등 노동자 대부분이 건강점수가 나쁘다고 한다. 더욱이, 감염에 취약한 이들은 오염된 쓰레기에 상처가 날 경우 '파상풍 주사' 나 '간염면역글로불린' 주사를 맞는 것이 필수조치이지만, '최소한의 복지'는 '최소한의 조치'만 허락한다.

"술을 안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 2일 뒤에 건강검진이라 이제 신경 좀 쓰려고."

전체적인 건강 문제가 개선되려면 불규칙한 식사와 불규칙한 수면패턴이 교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엄청난 오염원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는 작업환경부터 먼저 개선해야 할 것 같다.

노동자들 대부분은 '미생물'과 '병원균'에 많이 노출된다. 내용물이 튀어 얼굴에 닿는 것은 물론이고, 호흡하는 것이 불편해 마스크를 벗고 일을 하기 때문에, 고스란히 호흡기와 구강 내에도 노출된다. 또, 활동량이 많아서 작업화나 작업복이 지급되어도 무겁기 때문에 입지 않는다. 그래서 편한 복장이나 반팔을 입는 것이 일상이다. 결국, 알레르기나 피부병을 일으킬지도 모를 수많은 오염물은 이들의 빈틈 사이로 파고든다.

과부하의 반복된 노동의 결과는 '골병'
a

골목 한두군데만 들려도 이렇게나 많은 플라스틱, 비닐들을 수거할 수 있다. ⓒ 김민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노동자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왜 작업복과 작업화를 입지 않았냐고? 왜 마스크는 안 썼냐고? 하루빨리 일을 마치지 않으면, 퇴근 시간이 늦어지고 내일 더 큰 문제가 일어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마지막 골목이에요. 저기 안쪽에 들어가서 다 들고 나와요."
"와.. 마지막까지도 실망 시키지 않는 양이네요."
"한번 더 오셔야겠네. 이거 별거 아니에요."


누구든지, 이렇게 많은 양의 재활용 쓰레기를 보게 된다면 조금 더 신경 써서 배출량을 줄이려고 하지 않을까. 양도 양이지만 무게도 만만치 않다. 트럭이 지나갈 때, 나와 형님 한분은 걸어 다니면서 주택마다 분리배출 되어있는 것들을 트럭 위로 넘겨 올린다. 간혹, 무게가 꽤 나가는 것들이 있으면 여러 명이 붙어서 트럭 위로 넘겨 올린다. 반복해서 하다보면, 숙련은 되지만 손목마디와 손가락 마디가 조금씩 아파온다.

과부하의 반복된 노동의 결과는 '골병'이다. 노동자들의 면티 위로 보이는 부황 자국들과 파스 냄새는 '골병'을 잠깐이라도 숨기려고 하지만, 다시금 일어나는 통증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우리도 남들 출근할 때, 일을 했으면 좋겠어. 일본은 그런다고 하던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우리를 숨기고 싶은가봐."

현장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 무심하게 운전하시던 사업현장의 큰형님이 푸념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 우리들은 늦은 밤 아무도 모르게 이들에게 제일 못나고 더러운 것들을 맡긴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치운다. 매일 그들의 '고통'은 각종의 것들이 혼합된 냄새에 희석되어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몸에 배긴 '청소노동자'의 냄새는 다시 강의실로 향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의대생 #청소 #노동자 #시선 #공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5. 5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