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자기 생각 표현 못하면 앞으로 사회생활 힘들 것"

[인터뷰] 일본 대학생이 말하는 독일과 일본의 대학교육 차이점

등록 2017.09.23 19:36수정 2017.09.2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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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일본 교육은 정말 달라요" 다카시 키무라 군이 독일과 일본 교육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 신향식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공교육에 도입 중인 유럽의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논술형 교육과정에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에서 만난, IB 논술형 교육과정으로 공부한 친구들은 무척 논리적이고 창의적이었습니다. 아베 총리가 왜 논술형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일본은 아시아 최초로 IB 논술형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했다. 유럽의 중·고교처럼 책 읽기와 토론과 글쓰기로 진행하는 과제연구 중심의 수업방식을 1단계로 200개 학교에서 실시한 뒤 점차 대상 학교를 늘릴 예정이다. 일본은 또 한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대입시험에 서술(논술)형 문항을 부분적으로 출제한 뒤 이를 점차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 교육에 어떤 문제점이 있기에 이런 변화를 시도하는 것일까. 일본과 독일에서 모두 대학을 다녀본 일본 청년을 만나봤다. 그가 일본 교육의 문제점을 대표로 설명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의 대학 교육을 경험해 보았기에 일본 교육을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적임자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다카시 기무라 군(24세)은 일본 코난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반 학생으로, 2015년 9월부터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대학교를 다녔다. 훔볼트대학에서는 미국의 문학과 역사를 배웠다.

(훔볼트대학교는 1809년에 설립한 국립종합대학으로, 2015년 영국 일간지 <타임스>(The Times)의 세계 대학 순위에서 49위로 선정된 명문대다.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사회주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 창시자 프리드리히 엥겔스,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등이 이 대학 출신이다.)

"일본 대학은 암기·주입·객관식, 독일은 발표·토론·논술형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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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논술형 문제 포함된 일본 수능 예시문제" 다카시 키무라 군이 서술 논술형 문제가 포함된 일본의 수능 예시문제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 신향식


지난 7월 7일 낮 12시, 도쿄 신주쿠의 쇼쿠안도리에서 다카시 기무라 군을 만난 뒤 이메일로 추가 취재를 했다. 쇼쿠안도리는 한때 한류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혐한 시위의 집결지다. 기무라 군은 수수한 아날로그 손목시계에 검은 테의 안경을 착용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흰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곱상하고 지적인 모습이었다.


기무라 군은 일본과 독일의 대학교 수업방식을 차근차근 비교했다. 일본과 독일은 가르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일본에서는 교수가 설명을 하고 학생들은 공책 필기를 하고 암기식으로 공부했지만 독일은 토론과 발표와 글쓰기 위주라고 했다. 일본이 '암기'라면 독일은 '사고력'이라는 점에서 가장 차이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교수가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면 학생들은 그것을 외워서 답안을 작성합니다. 그래야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교수가 짚어준 핵심을 얼마나 정확하게 답변했는지를 놓고  평가하는 겁니다."

기무라 군은 "일본에서는 고등학교나 대학교나 암기식으로 교육하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독일 대학에서는 토론하면서 자기주장을 밝히고 그것을 글로 작성하여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기무라 군은 "일본은 대학입시에서도 암기를 중시하는데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글쓰기 논술형 시험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 대학서 학점 나빠 확인해 보니 "자기 생각이 부족하다" 지적 받아

기무라 군은 독일 대학에는 세 가지 종류의 수업이 있다고 전했다. 첫 번째는 일본처럼 공책에 필기하고 암기하는 방식이다. 독일 대학 수업의 20~30%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이 수업방식을 중시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는 토론 수업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끼리 열심히 논쟁하고 교수는 토론이 잘 진행되도록 보조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약 20~30%가 이 수업에 속한다고 한다.

세 번째 방식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식이 섞여 있는 수업이다. 물론 암기할 내용이 많지만 교수는 그것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도록 이끈다.

"학점이 좋지 않게 나온 과목이 있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제 생각을 별로 적지 않은 데 원인이 있더군요. 그 다음 시험부터는 주장을 강하게 밝히면서 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답안을 작성하는 핵심적인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이처럼, 일본과 독일의 대학 교육은 수업 방식과 평가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기무라 군은 "일본과 독일의 이공계 대학은 어떤지 모르겠다"면서도 자신이 겪은 영문학과 언어학, 비교문학 계열의 수업은 앞서 지적한 대로 차이점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왜(Why), 왜(Why), 왜(Why)... 따져 들어가는 독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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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친구들과 함께" 다카시 키무라 군이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독일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 ⓒ 신향식


그는 독일 대학에서 경험한 토론 수업도 소개해줬다. 영어 수업 때 교수가 '문화란 무엇인가?(What is culture?)'를 질문하고 다섯 개 조로 나누어 토론하게 한 경험담이었다.

"우선, 문화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조별로 발표를 합니다. 그것이 왜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 사례를 곁들여서 발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속한 조에서는 약간 일반적인 답변을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좀 더 창의적으로 답변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업 뒤에도 어떻게 답변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깊이 있게 더 생각해본 경험을 한 겁니다."

기무라 군은 그 주제에 끌리지는 않았지만 수업과정은 의미 있었다고 평가했다. '왜(Why), 왜(Why), 왜(Why)'를 따지면서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사고력, 창의력이 향상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발표한 내용 자체보다도, 토론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문화가 무엇이라고 주장을 하고, 그 논거를 찾아내면서 문화의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발표까지 하면서 급우들에게 쉽게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문화의 개념을 아주 확실하게 정리하게 됩니다. 이것은 암기해서 머리에 넣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일본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글쓰기 과제 많은 독일 대학"

기무라 군은 "독일에서도 전공과목에 따라 글쓰기를 하는 방법과 정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면서 홈볼트대학에서 공부한 과목에서는 일본 대학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글 쓰는 과제가 많았다고 했다.

"A4 용지 한두 쪽 분량의 글을 수시로 써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대학에서는 글을 써야 하는 수업이나 과제가 사실상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일 대학에서 무척 힘들었습니다. 일본 대학에서 교수님 강의를 필기하고 암기만 하다 보니, 제 생각을 발표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겁니다."

기무라 군은 "일본의 다른 대학에서도 글쓰기 대신 지식 암기 위주로 교육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대학의 문과 계열 학과에서는 문학, 역사, 경제, 언어 등을 배우는데 자기 생각을 표현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글쓰기가 왜 필요하냐"고 묻자 기무라 군은 "말과 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에서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효율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기 생각 명확히 못 밝히는 일본, 국제회의에서도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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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있는 훔볼트대학 수업 장면. ⓒ 신향식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논거를 들어 발표하지 못하면 국제회의에서도 불리할 겁니다. 일본이 현재 그렇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밝히지 못하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기무라 군은 발표력이 부족해서 자신이 고생한 사례도 소개했다. 독일 훔볼트대학 기숙사에서 지낼 때 골탕을 먹은 것 같다며 살짝 웃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 2명과 셋이서 같은 방을 썼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의견이 뚜렷했습니다. 저 혼자서만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미숙했습니다. 그 바람에 청소를 비롯해 궂은일을 더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을 효율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바람에 기숙사 생활을 힘들게 한 겁니다."

기무라 군은 "이것은 바로 일본교육의 문제점에서 비롯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일본 고교생들이 글을 쓰는 기회는 대입 논술시험을 볼 때로 한정될 겁니다. 논제에 맞춰 한두 쪽 분량의 답안을 글로 쓰는 게 아마도 유일한 기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모르겠으나 저는 고등학생 때 필기하고, 암기하고, 객관식 문제에 답을 표기했을 뿐입니다. 글을 쓰면서 깊이 생각할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독일 교육 본받으면 좋겠다"

기무라 군은 "일본의 대학입시가 '생각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 "앞으로는 학생들이 글을 더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무라 군은 "한국과 일본이 독일의 교육을 본받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일본처럼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가깝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독일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객관식 선택형 대신 논술형으로 평가를 해야 수업 방식도 그에 맞춰 혁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무라 군은 학생들이 미래 진로를 설정하는 방식에서도 일본과 독일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진로 탐색을 시작하는 시점이 근원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어려서부터 미래진로를 고민하여 결정합니다. 약사가 되고 싶으면 10세 때부터 미리 준비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일본은 진로 방향을 늦게 잡습니다. 일본인들은 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탐색합니다. 더 앞당겨야 한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일본 도쿄에서 진행한 인터뷰 기사입니다. 오정한(연세대 철학과 4학년), 신재호(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1학년) 군이 취재를 지원했습니다. <독서신문>에도 게재합니다.
#일본교육 #독일교육 #IB #논술형 교육과정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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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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