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

[우리말 사전 새로쓰기 2] 푸짐밥, 제살깎기, 억지웃음

등록 2017.09.21 10:01수정 2017.09.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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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가 아니어도 우리말을 넉넉히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말을 쓰는 사람 누구나 새로운 말을 곱게 지을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말 사전에 오르지 못한 낱말을 놓고서, 또는 사전에 실렸으나 아직 쓰임새를 넓게 다루지 않는 낱말을 놓고서,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새롭게 붙여 보려 합니다. 말 한 마디를 즐겁게 쓰면서 너른 이야기를 고루 나누는 새로운 말살림을 함께 북돋우면 좋겠습니다. - 기자 말


ㄱ. 푸짐밥

단출하게 차려서 혼자 먹습니다. 혼자 먹을 생각이라서 단출하게 차립니다. 때로는 푸짐하게 차려서 혼자 먹습니다. 혼자 먹더라도 넉넉하게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가볍게 차려서 이웃을 부릅니다. 많이 먹기보다는 이야기를 넉넉히 나누면서 입맛을 당기려는 뜻입니다. 때로는 푸짐하게 차려서 이웃을 부릅니다. 기쁘고 넉넉하게 나누려는 마음이기에 이것저것 잔뜩 차려요.

혼자서 혼밥을 먹는다면 여럿이서 모둠밥을 먹을 텐데, 단출하게 먹으면 '단출밥'이요, 푸짐하게 먹으면 '푸짐밥'입니다. 다른 일이 바빠서 단출밥을 먹을 수 있어요. 바삐 길을 나서려고 단출밥을 차릴 수 있어요. 시외버스나 기차에서 가볍게 누리려고 단출밥을 마련할 수 있지요.

다른 일이 바쁘건 말건 많이 먹고 싶어서, 또는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먹고 싶어서 푸짐밥을 차릴 수 있어요. 시외버스나 기차에서도 더욱 즐겁고 넉넉하게 먹으려는 뜻으로 푸짐밥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단출하게 차리기에 잔칫밥이 안 되지 않습니다. 단출하게 차리더라도 서로 기쁨을 나누면 잔칫밥입니다. 푸짐하게 차릴 적에만 잔칫밥이 되지 않아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넉넉한 마음이 피어오를 적에 잔칫밥입니다.

[푸짐밥]
: 푸짐하게 차린 밥. 여러 사람이 기쁘고 넉넉하게 나누려고 차리는 밥
 * 오늘 저녁은 푸짐밥이야
 * 모처럼 모였으니 푸짐밥을 차리자


[단출밥]
: 가벼우면서 손쉽게 차린 밥. 가볍게 배를 채우려고 손쉽게 차리는 밥
 * 버스를 오래 타야 해서 단출밥을 먹으려고
 * 먹고 치우기 좋도록 단출밥을 차렸어

[잔칫밥]
: 잔치를 하거나 잔치를 하듯이 차린 밥. 기쁜 일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나누려고 차리는 밥
 * 좋은 일이 있어서 잔칫밥을 마련했지
 * 오늘은 꼭 잔칫밥 같구나

ㄴ. 제살깎기

어쩐지 우리한테 못마땅하구나 싶은 사람이 있어서 괴롭힙니다. 우리를 둘러싼 다른 사람이 아무리 착하거나 참답거나 사랑스럽거나 곱게 살더라도 우리 눈에 못마땅하다면 그만 괴롭힙니다. 때로는 미워하거나 싫어합니다. 때로는 따돌리거나 들볶습니다. 우리 곁에 있던 아무개는 우리가 괴롭힐 적마다 괴롭지요.

그런데 왜 괴롭힘을 받는지 알 길이 없어요. 저를 괴롭히는 사람한테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어도 자꾸 괴롭히거든요. 어쩌면 누가 우리를 괴롭힌 일을 잊거나 털지 못한 채 그만 다른 사람을 괴롭힐는지 몰라요. 우리가 괴롭게 지내던 나날을 자꾸 마음에 담으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을 테고요. 이러다가 우리 스스로 우리를 괴롭히는 일까지 하고 맙니다. '제살깎기'입니다.

장사를 하는데 제값을 받지 않고 이웃장사하고 다툼을 하듯이 값을 후려치는 일이 있는데, 이때에도 제살깎기예요. 서로 제값을 받으면서 즐겁게 장사를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 손님을 이웃장사한테 안 빼앗기려고 하면서 그만 서로 괴롭습니다. 내가 나를 괴롭히기에 제살깎기예요.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잃기에, 스스로 사랑하려는 마음인 '제사랑'을 잊기에, 우리가 스스로 몸하고 마음에 생채기를 입힙니다.

[제살깎기]
: 나를 스스로 괴롭히는 짓. 내가 나한테 도움이 안 되거나 나쁘게 되도록 하는 짓
 * 두 가게가 서로 제살깎기를 한다
 * 스스로 싫다면서 자꾸 제살깎기를 하네

ㄷ. 억지웃음

이루고 싶은 꿈을 마음에 품으면서 살면 하루가 즐겁습니다. 꿈을 헤아리면서 즐겁게 걸어갈 길을 헤아리면 살림을 짓는 동안 웃음이 가득 번집니다. 꿈을 미처 품지 못한다면, 꿈을 잊거나 잃는다면, 이때에는 그만 하루가 괴로울 뿐 아니라 웃음도 짓지 못하기 일쑤예요. 그런데 바깥에서 일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마주하는 동안 괴로운 얼굴빛을 할 수 없곤 해요.

스스로 즐겁지 못하더라도 여러 손님을 맞이하면서 얼굴에 웃음을 지어야 할 때가 있어요. 억지로 웃음을 지어요. 억지웃음입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볼 적에는 해야 할 말을 못 하기도 해요. 안 반갑고 안 달가워도 그만 달콤하다 싶은 말을 해야 하지요. 입에 발린 말이라고도 할 텐데, 억지스레 말을 해야 하니 억지말을 합니다. 쓰고 싶지 않으나 억지로 써야 하기에 억지글입니다. 하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해내야 하니 억지짓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감정노동'이라고 해서 마음팔이를 하는 일거리가 많다고 들썩입니다. 괴로움을 감추고 웃음을 짓느라 억지웃음이 되어야 하고, 싫어도 상냥하게 말을 해야 하느라 억지말이 되어야 하지요. 앞으로 억지글이나 억지짓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하늘웃음이나 꽃웃음이 될 수 있을까요? 꽃말이나 꽃글이나 꽃짓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억지웃음]
: 웃고 싶지 않으나 힘을 들여서 지어야 하는 웃음 (억지로 지어야 하는 웃음)
 * 하루 내내 억지웃음을 지었더니 너무 힘들어
 * 싫을 적에는 억지웃음을 안 지어도 돼
[억지말]
: 하고 싶지 않으나 힘을 들여서 해야 하는 말
 * 보기 좋다는 네 말은 억지말로 들린다 
 * 손님 앞에서만 웃으며 억지말을 하는구나
[억지글]
: 쓰고 싶지 않으나 힘을 들여서 써야 하는 글
 * 줄거리도 없이 억지글을 썼으니 재미없지
 * 쥐어짜듯이 억지글을 쓰지 말고 차분히 생각하렴
[억지짓]
: 이루거나 하거나 될 만하지 않으나 힘을 지나치게 들여서 이루어지거나 해내거나 되도록 하는 짓 (안 될 만한데 지나치게 몰아붙여서 되도록 하려는 힘든 짓)
 * 자꾸 억지짓을 하면 나도 그만둘 생각이야
 * 억지짓을 하기보다는 부드럽게 다가서 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우리말 사전 새로쓰기 #국어사전 #한국말사전 #한국말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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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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