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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카 체이싱, 섬세한 스타일... 이 영화, 끝내줬다

[넘버링 무비 22]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모든 장점 담은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17.09.22 11:46최종업데이트17.09.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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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의 메인 포스터. ⓒ 소니 픽쳐스


01.

영화의 시작과 함께 터져 나오는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의 음악 'Bellbottoms', 그리고 그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긴듯한 6분가량의 오프닝 시퀀스는 최근 접했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영화 <라라랜드>(2016)의 오프닝이 단순히 가슴 벅찬 느낌이었다면, 이 작품은 등장과 함께 영화관 좌석이 자동차의 시트로 변하는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이 작품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고 만다. 미안하지만 3D나 4DX 영화관에서가 아니다. 단지 일반 상영관에서 2D로 보았을 뿐인데. 작은 섬세함을 놓치지 않은 부분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음악의 비트에 맞춰 와이퍼를 까닥거리는 그 쿨한 모습이란. 베이비(안셀 엘고트 역)의 삐죽거리는 입술이 이제 곧 터져 나올 것 같은 에너지를 암시하는 듯 보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에드가 라이트의 <베이비 드라이버>는 완전히 끝내줬다.

02.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사실 뜨거웠던 데뷔에 비하면 갈수록 빛을 잃어갔던 감독 중 하나였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뜨거운 녀석들>을 통해 특유의 센스와 뛰어난 편집 능력으로 평단의 인정은 물론 흥행까지 끌어냈지만, 어쩐지 갈수록 부진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능력이 줄어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첫 장편영화인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를 호러와 코미디 장르의 혼합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다양한 장르의 혼합과 조금도 늘어지지 않는 감각적인 편집 능력은 <지구가 끝장 나는 날>(2013)을 세상에 내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돋보였으니까. 일각에서는 흥행에서의 그의 하향세에 대해 대중보다는 소수에게 어필 가능한 B급 감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액션 장면들은 외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스타일리시한 경우가 많으니까. 사실 국내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받기엔 조금 억울한 부분도 있다. 정식으로 개봉된 작품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그의 모든 장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작품 <베이비 드라이버>를 처음 본 관객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그의 이름은 베이비. 최고의 드라이버다. ⓒ 소니 픽쳐스


03.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의 이야기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음악과 영상을 모두 걷어내고 이야기만 들으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느낌이 들 정도로. 범죄 현장 탈출을 위해 고용된 드라이버와 금전적인 문제로 그를 엮어 함께 일하는 박사(케빈 스페이스 역)에 대한 이야기. 물론 주인공인 드라이버 베이비는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청력 문제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고, 영화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비트감 있는 음악은 그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장치라는 설정이다. 물론 사랑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하루빨리 박사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했던 베이비의 마음에 더욱 강한 동인이 될 보네 식당의 종업원 데보라(릴리 제임스 역)까지. 이 정도면 다른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박사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이 세계를 떠나려는 베이비의 앞에 데보라와의 관계를 볼모로 강요하는 악랄한 박사의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04.

작품의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은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작품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철골 구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킨(Keane), 티렉스(T.Rex),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 퀸(Queen)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수많은 트랙리스트와 그 음악에 합이라도 맞춘 듯 유려하게 진행되는 영상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 (특히 자신이 생각한 타이밍과 맞지 않는다며 다시 아이팟의 셔플을 되돌리는 베이비의 모습은 이 영화만의 독특한 흐름과 감독의 재치가 만나 정점을 이루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철골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이야기의 단단함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음악과 영상이 빛을 발하고 적재적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부분이다. 단순하다는 것이 꼭 여물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 작품 <베이비 드라이버>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이야기만 하면서도 그 이야기의 맥을 놓지 않는다. 영화 중간중간에서 조금씩 흔적을 남겼던 베이비의 본성에 대한 부분들이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의 판결에 결정적인 증언들로 이어진다거나, 데보라와 그의 유사한 성장 환경이 동질감을 만든다는 점, 그리고 베이비를 가장 이해하고 있었던 버디(존 햄 역)가 달링(에이사 곤살레스 역)을 잃고 베이비에게 배신감과 복수심을 드러낸다는 것들이 바로 그런 지점들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을 정도로 달콤하다. ⓒ 소니 픽쳐스


05.

등장인물 모두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큰 장점 중 하나다. 갑자기 등장한 뱃츠(제이미 폭스 역)는 갈등을 조장하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면서 긴장감을 유발하기에 매우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고, 베이비의 양아버지 조셉(CJ 존스 역)까지도 그의 곁에서 삶의 이유를 만들어주는 인물로 제 몫을 해낸다. 달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버디와 베이비가 마지막에 갈등을 빚게 되는 대상이기에 애초에 제거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으리라. 물론 경찰들의 추격 때문에 코너에 몰린 그녀가 버디와 함께 보여주는 난사 장면은 과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에서 등장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를 연상케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다른 지점의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버디와 베이비가 대립하게 되고, 두 사람의 대결 구도만으로 시야가 좁아진 채 이어지는 것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다. 두 사람이 대립하기 전까지 버디와 달링 두 사람이 보여준 애정의 깊이보다는 버디와 베이비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폭이 더 깊다는 느낌을 주었던 탓이다. 베이비가 모두를 배신하고 데보라에게로 향하던 그 날 밤의 새벽 2시, 그때도 버디는 그를 그냥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었나.

06.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을 쏟아냈다. 자신의 장기였던 다양한 장르의 변주를 통해 액션에 음악을 입힌 것은 물론(단순히 음악을 잘 매칭했다는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집까지. 간결하지만 화려한 장면들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작품에서 새로운 것은 조금도 없다. 일반적인 스토리에, 과거의 다른 작품들에서 이미 여러 번 활용된 바 있는 카 체이싱 장면들, 그리고 평범한 엔딩. 남들 다하는 반전조차 이 영화에는 없다. 하지만 확실히 달랐다. 감독의 역량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는 건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같은 장면도 어떻게 연출하고 변주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 개봉했던 또 다른 작품 <아토믹 블론드>(2017)를 두고 음악을 잘 이용한 가장 좋은 사례라고 이야기했으나, 이 작품은 그 이상을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다. 영화가 여성 인물을 상품화하지 않고도 충분히 섹시해질 수 있다는 좋은 교훈과 더불어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무비 베이비드라이버 에드가라이트 넘버링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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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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