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품은 아이들... "하지마!" 소리 없어 좋아요

베타니아 특수어린이집 숲교실 탐방기

등록 2017.09.22 10:10수정 2017.09.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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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숲속에서 들고온 것들을 보이며 정확한 이름을 말했다. ⓒ 오문수


19일 오전 10시, 여수베타니아 특수어린이집 아이들 31명이 숲 공부에 나섰다. 지도교사와 아이들의 활동을 끝까지 지켜봤던 필자에게 의문이 생겼다. 공부? 공부라는 말이 적절할까? 교사였던 필자의 판단으로는 오히려 놀이를 통한 자연스런 습득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여수시 문수 7길 26-12에 자리한 베타니아 특수어린이집은 광주 전남 최초의 장애아 전문 보육기관으로 장애·비장애를 포함한 115명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1997년 사회복지법인으로 인가받은 베타니아는 장애아 통합보육과 생태 유아교육, 숲 교육, 장애 청소년 교육의 메카다. 2005년부터는 생태교육으로 전환해 숲 학교와 숲 어린이집을 시작(2011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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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교실로 떠나기 전 인원파악과 긴장된 몸을 풀기 위해 동그랗게 원을 그려 노래부르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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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니아 어린이집 뒤에는 고락산 둘레길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둘레길을 활용해 숲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 오문수


베타니아 숲 교육프로그램은 전국 유아교육기관 최초로 산림청으로부터 인증(제2015-25호)을 받아 숲 교육을 원하는 여러 단체가 견학을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6년 7월 1일에는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UNESCO-ESD) 공식 프로젝트로 인증 받았다.

숲을 품은 아이들... 숲이 아이들이었고 아이들이 숲이었다

베타니아어린이집 뒤에는 여수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고락산 둘레길이 자리하고 있다. 오전 10시, 어린이들이 숲교실로 나갈 시간이 되자 예쁜 가방을 둘러멘 아이들이 앞마당에 모여 손잡고 노래 부르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이른바 원모임이다. 원모임 과정은 앞마당에 동그랗게 모여 친구들과 서정적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준비운동을 한다. 아이들이 김희동 시인의 시 구절에 맞춰 정답게 노래를 부른다.


"어여쁜 동무들 모여서 동그란 햇님을 만들어요. 나간 곳은 들어오고 들어간 곳은 나오고. 동그란 햇님을 만들면 햇님이 우리를 비춰요."

인원파악이 끝난 조의 선생님이 숲속에 난 오솔길을 따라 앞장서고 뒤따라 가는 아이들이 무당벌레와 벌레들을 만지느라 대열에서 뒤처진다. 한 아이가 "무당벌레가 내손에 똥쌌어요!"라며 풀잎으로 닦자 동행하던 이충경 교사가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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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에 달팽이가 있다며 가지고 와서 자랑하는 아이의 손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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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을 가던 두 어린이가 상수리 열매를 주워 맞대며 "날개다!"라고 외쳤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놀랍다. ⓒ 오문수


"3~4세 아이들은 지렁이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른 유치원 다니다 전학 온 6~7세 아이들은 무서워합니다."

오솔길 바닥에서 작은 돌을 주워 바위에 그림을 그리며 이름을 쓰던 아이들이 상수리를 주워 맞대며 "날개다!"라고 외쳤다. 궁금해 "이게 왜 날개야?"라고 묻자 선생님이 부르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서로 맞댄 상수리 뒤쪽에 붙은 뚜껑이 날개를 닮아서일까? 답변을 못 들어 약간 답답했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이 놀랍다.

고락산 둘레길에 있는 우물가 공터에 아이들과 교사들이 모여 '라이겐 모임'을 가지며 동그랗게 모여 춤추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이충경 교사의 설명에 의하면 "라이겐 모임은 발도로프 교육에서 출발한 것으로 동그랗게 모여 춤추며 긴장된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활동"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숲속의 친구에게 인사를 시작했다.

"나무 친구 안녕! 나비 친구 안녕! 매미 친구 안녕!

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은 후 숲에서 방금 들은 소리를 얘기하라"고 하자 다양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 과정은 명상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듣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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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겐 모임'에서 어린이들이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올려 명상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명상을 끝낸 후 숲에서 들리는 다양한 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 오문수


"저는 거북이 소리를 들었어요. 저는 바람소리를 들었어요. 저는 새소리를 들었어요"

드디어 숲속 교실에 왔다. 아이들은 도구함에 가서 어린이용 삽과 식판, 주전자 등의 소꿉놀이 도구를 가지고 와 찰흙을 가지고 연필과 생필품, 학용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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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넓은 길에서는 달리기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달리기 경주도 시킨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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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밧줄을 타는 아이가 교사가 내민 손을 잡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 오문수


남자아이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쳐놓은 '슬렉라인'을 교사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건너며 깔깔거린다. 15도쯤 되는 경사진 곳에서 여러명의 아이들이 땅을 파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올라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하고 묻자 "우리 비밀기지예요"라며 열심히 땅을 파고 나무껍질과 흙을 이용해 뭔가를 만드느라 열심이다.

올라가다 미끄러지고 굴러 떨어진 아이들의 옷과 엉덩이에 흙이 잔뜩 묻었다. 흙이 묻어도 개의치 않고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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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비밀기지'라고 정한 언덕에 올라가는 아이들 뒤로 작업도구들이 흩어져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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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교실을 마치고 더러워진 아이의 얼굴을 이충경교사가 씻겨주고 있다. ⓒ 오문수


"옷이 흙에 묻어 더러워졌는데 괜찮아? 선생님이나 엄마가 혼내지 않을까?"
"괜찮아요. 어린이집에 가면 갈아입을 옷이 한 벌 더 있어요."


아이들은 숲에서 잡은 메뚜기와 무당벌레, 달팽이를 가져와 보여주며 자랑이다. 한 아이가 나뭇가지를 주워 총 쏘는 자세를 하며 내게 겨눈다. 곤충박사로 불리는 이서형(7살) 군이 친구가 들고 있는 곤충의 집게를 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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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상자 옆에 있는 물주머니에서 물을 받아 소꿉놀이를 준비하는 아이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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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이가 없어진 사슴벌레의 집게를 주운 아이에게 곤충박사로 알려진 이서형 군이 설명해주고 있다. ⓒ 오문수


"이 벌레는 넓적사슴벌레로 새가 몸뚱이를 쪼아 먹어 없어졌어요. 참나무에 있는 수액이나 곤충 젤리를 먹고 살아요."

집에서 사슴벌레를 길렀다는 이서형군의 폭넓은 지식이 놀랍다. 가파른 경사길에 돌계단이 서너개 있어 4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내려가는 지 뒤에서 지켜봤다. 한발짝 한발짝 천천히 내려가는 아이를 보며 "숲에 어린이를 보내면 다치니 위험할 것"이라는 어른들의 생각이 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충경 교사가 숲교실의 장점에 대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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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소꿉놀이하는 교사의 등을 올라타고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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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교실에서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굴을 통과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오문수


"교실에서는 '하지마라! 하지마라!'라는 규칙과 규제가 일상화 되어 있는데 자연 속에서는 공간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관찰력, 상상력, 탐구력, 호기심, 표현력이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그 결과 내성적인 아이들이 외향적으로 변하거나 적극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숲 교육을 마치고 어린이집에 돌아온 아이들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어린이들의 식판을 살펴보니 여느 어린이집 식단과 다르다. 김종호 이사장이 식단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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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니아 특수어린이집 김종호 이사장 모습 ⓒ 오문수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시지나 동그랑땡 같은 인스턴트 반찬을 제공하지 않아요. 원에서 직접 만든 두부와 김치 등을 먹입니다. 간식도 삶은 고구마와 당근 스틱을 제공해요. 어떤 아버지가 오셔서 아들이 김치 먹는 걸 보고 놀라기도 했어요. 밖에서 열심히 활동해서 배고픈 아이들이 두 그릇을 먹기도 합니다. 저희 모토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자!'입니다"

2011년부터 생태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베타니아가 정한 슬로건이 눈에 띄었다. 첫 번째 슬로건은 지도교사가 준비해야할 사항.

▲건강한 신체, 아이들을 향한 온전한 기다림 ▲아이들과 같은 순수한 마음과 동심 ▲확장적이며 유동적인 사고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는 시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숲에 관한 전반적 지식과 정보, 안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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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이모습이 더 예쁘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꽃을 꺾을 때 "미안해!"라고 말하며 꺾도록 교육시키고 있었다. 어린이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지도교사로부터 자연사랑과 꽃을 함부로 꺾으면 안된다는 교육도 받았다 ⓒ 오문수


두 번째 슬로건은 숲 활동을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멀리 보아라 ▲두려워 말라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라 ▲자연과 하나됨을 즐겨라 ▲함께하는 자연을 사랑하라 ▲자연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껴라
덧붙이는 글 전남교육소식지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베타니아 특수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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