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수 놓은 '무지개' vs. "동성애하면 암 걸려"

[현장] 부산 첫 성 소수자 축제... 팽팽한 긴장감 속 충돌 없이 끝나

등록 2017.09.23 19:08수정 2017.09.23 19:08
10
원고료로 응원
a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가 23일 해운대 구남로광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축제는 무대 공연과 해운대 일대 행진으로 이어졌다. 퀴어축제 반대하는 단체에서도 축제 현장에서 동성애를 규탄하는 맞불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 정민규


부산 해운대 해변에 성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넘실거렸다. 23일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퀴어(성 소수자)문화축제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 속에 시작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반대 단체 측은 축제가 열린 해운대 구남로 광장을 오전부터 에워쌌다. 경찰이 양쪽을 분리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편도 1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찬반 세력은 마주했다.

축제 현장은 시끌벅적한 음악으로 들썩거렸지만 반대 단체 참가자들은 대부분 등을 돌린 채 무표정한 얼굴로 동성애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었다. 나지막이 찬송가를 부르거나 성경을 외우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부지런히 양쪽을 오가며 들어 본 목소리는 도저히 좁혀지지 않은 1차선 도로 만큼이나 팽팽했다.

퀴어축제 참가자들 "우리 그냥 사랑하면 안되나요?"

a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가 23일 해운대 구남로광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축제는 무대 공연과 해운대 일대 행진으로 이어졌다. 퀴어축제 반대하는 단체에서도 축제 현장에서 동성애를 규탄하는 맞불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 정민규


인터뷰에 응한 24살 동성애자 '제이'는 실명은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아직 사회의 시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날도 축제 주최 측은 사전에 기자들에게 미리 취재 비표를 나눠주며 동의를 구하지 못한 촬영은 꼭 모자이크해달라고 요청했다.

제이는 "세상 사람들이 마치 우리를 괴물처럼 바라본다고 우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면서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 당당하게 광장에 나온 건데 꼭 이렇게 에워싸고 '사탄'이라고 저주를 외치면 저분들이 믿으시는 신이 정말 좋아하실까 의문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a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가 23일 해운대 구남로광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축제는 무대 공연과 해운대 일대 행진으로 이어졌다. 퀴어축제 반대하는 단체에서도 축제 현장에서 동성애를 규탄하는 맞불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 정민규


21살 동성애자 아들을 두고 있다는 김진이(49)씨는 '성 소수자 부모 모임'이란 단체의 구성으로 참가했다. 김씨는 "부산에서도 성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을 갖게 돼서 굉장히 뿌듯하고 이렇게 노력한 게 대견하다"고 미소 지었다.


자신의 아이를 향한 것이기도 한 반대단체의 구호에 김씨는 "아이들이 차별적인 행동을 겪을 때 부모로서는 눈물이 난다"면서 "저분들은 부모가 돼서 왜 아이를 바꿀 생각을 안 하느냐 묻지만 동성애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지금 세계적으로 인종이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데, 동성애에 대한 혐오적인 언사는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살인행위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성 소수자부모 뿐 아니라 서울·대구·제주 지역 성 소수자단체, 각 대학 성 소수자 동아리,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정당 등이 45개의 천막 부스를 채웠다. 행사를 준비한 부산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의 김혜연 기획팀장은 "처음이라 부족한 것이 많았고 혐오단체의 방해도 있었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 문제를 가시화시켰다는 것은 성과"라고 말했다.

동성애 반대 단체 "동성애는 절대 안 돼"

a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가 23일 해운대 구남로광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축제는 무대 공연과 해운대 일대 행진으로 이어졌다. 퀴어축제 반대하는 단체에서도 축제 현장에서 동성애를 규탄하는 맞불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 정민규


행사를 즐기는 퀴어축제 참가자들과 달리 반대단체 참가자 쪽에서는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성경 문구를 가득 붙인 차량은 확성기를 단 채 축제 행사장 주변을 돌며 연신 찬송가를 틀었다. 한 중년 여성은 축제 행사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동성애하면 암에 걸리고 빨리 죽는다"는 호소를 이어갔다.

동성애를 비판하는 팻말을 높이 치켜들고 있던 김동수(57)씨에게 말을 건네자 속사포 같은 불만을 터져 나왔다. 김씨는 "건전한 부모 밑에서라야 다음 세대가 태어나지 않겠나"라며 "저 사람들은 불법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퀴어축제에 모인 사람들에게 눈총을 보냈다. 

김씨가 "저건 건전한 문화가 아니다"라면서 "공산주의다"라고 말하자 옆에 서 있던 김용진(59)씨가 "빨갱이다! 빨갱이!"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두 남성은 기자를 사이에 두고 "동성애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한다"라거나 "동성애는 성도착증 환자"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a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가 23일 해운대 구남로광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축제는 무대 공연과 해운대 일대 행진으로 이어졌다. 퀴어축제 반대하는 단체에서도 축제 현장에서 동성애를 규탄하는 맞불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 정민규


동성애에 반대하는 지역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꾸린 '건강한부산만들기시민연대'의 나영수 대변인은 "행사장을 가보니 젊은 학생들이 많은 걸 보며 동성애가 앞으로 젊은이들에게 증가하겠다는 우려가 생겼다"면서 "동성애가 결코 바른 성문화가 아니란 걸 기성세대가 잘 가르쳐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저들은 성 소수자 문제를 인권으로 접근하지만 이것이 법적으로 보장까지 된다면 동성 문제를 넘어 짐승이나 사물과의 결혼까지 인정해야 할 수 있다"면서 "이건 결국 인권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거리로 쏟아진 무지개 깃발...큰 충돌은 없어

a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가 23일 해운대 구남로광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축제는 무대 공연과 해운대 일대 행진으로 이어졌다. 퀴어축제 반대하는 단체에서도 축제 현장에서 동성애를 규탄하는 맞불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 정민규


이날 축제의 정점은 행진이었다. 오후 4시 대형 무지개 깃발을 앞세운 1천여 명이 행진을 시작하자 반대단체는 인간 띠로 대응했다. 반대 단체 측은 참가 인원은 4천 여명이라고 발표했다. 도로로 행진하는 축제 참가자들과 인도에서 피켓을 든 반대단체 쪽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따금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양쪽의 충돌에 대비해 두 쪽은 분리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였다. 대부분의 시민은 담담하게 이 모습을 지켜봤다. 외국인들이 퀴어 행렬을 향해 손뼉을 치며 반기자 참가자들이 환호로 답하는 모습도 보였다.

2km가량의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 5시께 해운대 구남로광장에서 마무리 행사를 끝으로 축제를 마쳤다. 반대단체 측도 축제가 끝나자 해산했다. 
#퀴어축제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