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바라면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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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hks007)등록 2017.09.23 20:28
며칠 전 지인과 점심을 먹었다. 셈을 치르려 하였으나 지인이 먼저 돈을 냈다. "박봉일 텐데 이깟 점심쯤이야..." 그래 맞다. 나는 쥐꼬리 급여의 경비원이다.

지인은 번쩍거리는 최고급 승용차에 올랐다. "차는 언제 바꿨어요?" "돈 잘 버는 딸이 보태줘서" 바꿨다고 했다. 하긴 밥을 먹으면서 지인은 딸 자랑을 한 바 있었다. 홈쇼핑에서 일하는데 한 달에 평균 1천만 원 이상을 번다고 했다.

"와~ 대체 뭘 팔길래 그처럼 돈을 잘 벌어요? 하긴 그러니까 시집을 안 가는 거 아닐까요?" 지인은 맞다며 흡족하게 웃었다. 내 아이들보다 나이가 어린 처자가 그처럼 돈을 잘 버니 외제차까지 굴린다고 해도 전혀 어색할 건 없지 싶었다.

그랬음에도 돌아서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의 무게였던 건 왜였을까. 그건 필시 비교의식에서 발로한 나 자신의 초라함의 되돌아봄이 원인이었다. 나이가 내년이면 이순이건만 벌어놓은 건 쥐뿔도 없으니...

뿐이던가, 그래서 작년 봄 딸이 결혼할 적엔 혼수마저 아들이 죄 사주었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니 세상 사람들의 날 향한 조소와 경멸이 귓속을 가득 메우면서 난데없는 어둠이 마음까지 가득 채우는 기분이었다.

'나는 헛 살았어!'라는 자학과 자탄(咨嘆)이 강물이 되어 철철 흘러넘쳤다. 유리조각이 박힌 것처럼 아프던 가슴이 그나마 풀린 건 또 다른 지인의 안 좋은 소식이었다. 안 좋은 병으로 통원치료를 받다가 급기야 입원까지 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아직도 나는 건강한 편이다. 비록 어머니는 나의 생후 첫돌 무렵 영원히 가출하였다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날 낳아주셨다. 덕분에 지금껏 잔병 없이 튼튼하다. 어제도 지역의 축제장에 갔다가 거나하게 만취하여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 새벽이 되자 언제 마셨더냐 싶게 술은 말끔하게 깼다. 이런 걸 보면 '건강은 타고나는 것'이란 속설 역시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은 듯 싶다. 아들이 개설한 카톡 가족방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 추석에 저도 연휴인데 가까운 데로 여행 가실래요? -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렇지만 망설여진 까닭은 분명했다. 그러자면 다시금 아들이 돈을 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그동안의 우리가족 여행기(旅行記)에서도 뚜렷이 기록된 것이었음에 분명한, 아니 분명할 '팩트'였다.

팔불출이라 놀리겠지만 아들은 정말 효자다. 딸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행복은 어머니를 너무도 일찍 상실한 데 따른 하늘의 어떤 배려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더 바라면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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