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으로 알고 쓴 가습기살균제, 사과조차 없는 애경

[현장] 가습기살균제피해자·시민단체 가해기업 처벌촉구 14번째 시리즈캠페인 열어

등록 2017.09.26 14:41수정 2017.09.2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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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다니 믿음이 갔지요. 오래 사용해도 괜찮다고 했고, 독성물질이 있다는 글자는 한마디도 없었네요. 저도 몸이 약하니까, 보약처럼 모시며 굉장히 열심히 사용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피톤치드 효과를 느낀다고 더 많이 넣었답니다. 얼마나 피해가 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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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 박아무개씨가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들고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 강홍구


박아무개씨의 목소리가 애경산업(이하 애경) 구로본사에 울려 퍼졌다. 외관상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지인으로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선물 받았다.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였다. 평소 감기에 잘 걸리고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2002년부터 '보약'쓰듯 사용해왔다.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녀의 피해는 막심하다.

"CMIT/MIT같은 독성물질이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피부와 코 점막, 눈에 굉장히 치명적인 물질이에요. 증상이 겨울이랑 환절기 되면 더 심해지고요."

만성비염에 시달리고 녹내장에 걸렸다. 눈동자가 빠질 듯이 아파왔다. 다리 부분에 알러지가 심하게 난다. 피가 나도록 벅벅 긁는다. 너무 가렵기 때문이다. 뜨거운 드라이나 온수를 뿌리면, 일시적으로 마비가 오니까 견딜만하다. 반복되니까 화상환자처럼 흉터가 생겼다. 기침이 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이불을 껴안고 통증을 완화시킨다고 안간힘을 써야했다.

"쪽방에서 그렇게 고립된 생활을 하니, 가족들도 절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녀의 말끝이 흐려진다.


그녀의 건강은 계속 나빠졌다. 가습기살균제 탓일지는 몰랐다. 그저 도시공기가 안 좋거니 해서 시골로 내려갔다. 계속 방안에서만 골골했다. 그러다가 작년에야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말에 아쉬움과 분노가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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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 박아무개씨가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며 애경과 SK의 책임을 촉구하고있다. ⓒ 강홍구


"정부나 언론은 뭐했습니까? 제가 이 제품 못쓰게 했어야죠. 피해자들이 보약인줄 알고 썼다가 더 큰 피해를 당한 거예요."

그녀는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애경은 옥시 다음으로 가습기살균제를 많이 판매한 업체이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파란하늘맑은가습기를 7만 5천개 판매했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가습기메이트를 163만개 판매했다. 지난 2016년 가습기참사 국정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환경부가 의뢰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에 따르면, 전체응답자 1288명의 36.5%가 애경 제품을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애경은 가습기메이트 제품에 향을 첨가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솔잎향을, 2005년에는 라벤더향을 출시했다. 제품 용기 전면에 큰 글씨로 '라벤트 향의 아로마 테라피 효과'를, 뒷면에는 '아로마 테라피 효과로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회복', '쾌적한 실내환경' 등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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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가습기넷 활동가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구로구 애경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막대한 피해를 양산한 애경과 SK의 책임을 촉구했다. ⓒ 강홍구


하지만 성분표시에서 CMIT/MIT에 대해서는 '미생물 성분 억제 성분'으로만 간략히 표기했다. 박아무개씨의 경우처럼, 광고를 보고 속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애경은 묵묵부답이다. 책임인정과 진정어린 사과는 아직도 없다. 국정조사 청문회 당시 애경산업 고광현 대표는 "SK케미칼이 개발했기 때문에 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의심하지 못했다", "당시 관련 법규가 존재하지 않아 안전성 검사를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었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태도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5일 구로구 AK프라자 구로본점을 찾았다. 14번째 시리즈 캠페인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이하 가피모) 회원들과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이하 가습기넷) 활동가들은 지난 6월 26일 SK를 시작으로, 가해기업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엄벌을 촉구하는 시리즈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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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가습기넷 활동가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구로구 애경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막대한 피해를 양산한 애경과 SK의 책임을 촉구했다. ⓒ 강홍구


한국여성소비자연합 김순복 처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들에게는 많은 특혜와 지원이 있었지만, 소비자들을 위한 지원은 굉장히 미비하다"며,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촉구했다. 또한 지금까지도 책임인정은 커녕 사과조차 없는 애경의 태도를 비판했다.

공정위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참여연대 장동엽 선임간사는 "지난해 공정위는 애경 가습기메이트의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표시광고법 위반관련 심사를 종결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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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가습기넷 활동가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구로구 애경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막대한 피해를 양산한 애경과 SK의 책임을 촉구했다. ⓒ 강홍구


이미 2014년과 2015년에 환경부가 피해자를 5명이나 인정했기에,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추가적인 환경부 조사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종결한 것은 납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공정위 실무진들이 2016년 7월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습기메이트의 주요성분에서 독성물질이 확인되었고, 해당 성분을 은폐한 애경에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8월 공정위의 심사회의에서 결론이 뒤집혔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재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가습기메이트를 만든 SK와 애경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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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가습기넷 활동가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구로구 애경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막대한 피해를 양산한 애경과 SK의 책임을 촉구했다. ⓒ 강홍구


지난 15일 환경부가 공정위에 통보한 '가습기 인체 위해성 관련 의견 조회'에 따르면, 임상조사와 환경노출조사를 통해 가습기메이트 살균성분인 CMIT/MIT 단독사용자에게 발생한 폐질환이 PHMG, PGH 함유 제품 피해자와 동일한 증상임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있다.

환경부가 의뢰한 피해규모 조사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이용자는 350~400만, 제품사용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시민들은 127만에서 146만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었다. 가습기메이트 때문에 병원치료가 필요한 피해자는 10만9500명에서 18만2500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공식 피해접수창구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의하면 2017년 9월 8일까지 신고된 피해자는 모두 5828명이다. 이 중 사망자는 21.3%인 124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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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가습기살균제참사 가해기업들의 책임을 촉구하기 위한 시리즈캠페인이 열렸다. 가습기넷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구로구 애경본사를 찾았다. ⓒ 강홍구


#가습기살균제참사 #가습기넷 #가피모 #시리즈캠페인 #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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