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미안해요, 김제동씨... <오마이뉴스>도 황당합니다

[取중眞담] '자기검열' 체내화된 MBC,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17.09.30 20:01최종업데이트17.09.30 22:49
원고료로 응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9월 14일. 언론노조 MBC본부의 블랙리스트 사례 폭로 기자회견장을 취재하던 <오마이뉴스> 기자 세 명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김제동을 메인 MC로 기획된 파일럿 프로그램 <오마이텐트>가 정규 편성되지 못한 이유 중에, '이름이 <오마이뉴스>와 비슷해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럼 오마이걸은...?' 하는 실없는 의문과 함께 떠오른 몇 가지 기억이 있었다.

"<오마이뉴스>라서..."

MBC 파일럿 예능 <오마이텐트>. ⓒ MBC


2016년 8월, <오마이뉴스>의 대중문화 섹션인 <오마이스타>는 창간 5주년 기획으로 '장수기획' 연재를 시작했다. 들고 남이 잦은 방송가에서, 1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한 프로그램들을 조명하고,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기획이었다.

시작은 MBC <서프라이즈>와 SBS <동물농장>, KBS <열린음악회>였다. MBC 담당인 나는 <서프라이즈>를 맡았고, 촬영 현장과 녹음실 등을 찾아 제작진과 배우, 성우들을 인터뷰해 총 3편의 기사를 출고했다. 해당 기사가 나간 뒤 <출발! 비디오 여행> 오행운 PD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프라이즈> 기사를 잘 봤다면서, <출발! 비디오 여행>도 오래된 프로인데 한 번 다뤄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내심 다음 순서로 <출발! 비디오 여행>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담당 PD의 제안이 반가웠고, 한두 통의 전화통화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스튜디오 녹화 방문 취재 일정도 정해졌다. 하지만 취재를 이틀 정도 앞둔 어느 날, 오 PD에게서 받은 문자에는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담당 국장에게 <서프라이즈> 연재 기사를 보여주며 취재계획을 알리자, "왜 <오마이뉴스>와 이런 일을 하느냐"며 컷 됐다는 것이다. 이미 나간 <서프라이즈> 기사를 모르고 있던 해당 국장은 "왜 보고도 없이 이런 일을 진행했느냐"며 노발대발했고, 이 때문에 <서프라이즈>를 제작하는 자회사 MBC C&I가 굉장히 난처해졌다는 상황도 전했다.

<서프라이즈> 취재를 위해 MBC 홍보국에 협조를 요청했고, 홍보 담당자는 MBC C&I와 나를 연결해줬다. 통상적인 절차였다. 다만 <출발! 비디오 여행>은 담당 PD의 제안으로 성사된 일이기 때문에, 국장에게 보고됐던 것뿐이다. 오 PD는 "얼마 전 다른 연예매체가 <출발! 비디오 여행>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아무 일도 없었다. <오마이뉴스>라서 그런 거다"라며 허탈해 했다.

황당했다. <출발! 비디오 여행>은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고, 취재 기획 의도 어디에도 정치적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 PD는 "실수한 것 같다. 홍보팀 통해 내게로 연락이 왔으면 쉽게 갈 수 있었는데, 내가 먼저 취재 의뢰하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다"며 사과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서프라이즈> 팀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건만, 서로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잘못일까

▲ MBC파업 현장 찾은 김제동, "국정원 직원 만나보니..."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어 피해를 받은 방송인 김제동씨가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총파업 집회에 참석해 조합원들 격려하며,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 직원이 찾아온 이야기 등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사실 "<오마이뉴스>라서..."는 MBC를 취재하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MBC 홍보국은 예능·드라마를 홍보하는 '콘텐츠홍보부'와 뉴스 등 보도프로그램과 MBC 정책을 홍보하는 '정책홍보부'로 나뉘어 있다. 보통 기자가 홍보국에 어떤 사실 확인이나 내용을 문의하면, 홍보 담당자는 관련 팀(혹은 부서)에 내용을 확인하고 알려준다.

하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정책홍보부는 늘 '확인 후 알려드리겠다'고 말한 뒤 한 번도 피드백을 준 적이 없다. '답은 언제쯤 받을 수 있냐'고 다시 물어도, 대부분의 답은 '아직 확인 중'이라거나, '확인해 드릴 수 없다'가 많았다. 이런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MBC 직원들은 "<오마이뉴스>라 그럴 것"이라 대꾸하곤 했다.

설마 싶었다. <오마이뉴스>가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매체이고, 현 MBC 경영진이나 방문진에 보수 성향 인사들이 많다곤 하지만, 정치나, 진보-보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슈였는데 '굳이 왜?'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꼼꼼했고, 치사했다는 것을. 국정원 블랙리스트 공개 이후 진행된 언론노조 MBC본부의 자체 조사 결과,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프로그램에까지 사측의 출연 제재 공작이 있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의 고정 패널에서 하차한 작곡가 김형석이나, '친 노무현 인사'라는 이유로 MBC 작품 출연을 방해받은 배우 문성근 등의 사례처럼 말이다. 심지어 배우 이하늬는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의 조카라는 이유로 캐스팅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정치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한 방송인 김제동, 김미화나,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자기 자리에서 쫓겨나 스케이트장 등을 맴돈 여러 기자·PD·아나운서들에게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사측은 여전히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출발! 비디오 여행> 사례 하나만 놓고 봐도, '정치적 이유'로 '비정치 영역'에까지 관리하려 했다는 의혹은 벗을 수 없을 것이다.

MBC 블랙리스트에 <오마이뉴스>가 있었을까?

그렇다고 <오마이뉴스>의 MBC 취재가 모두 가로막혔던 것은 아니다. 드라마나 예능 제작발표회, 기자간담회 등 모든 언론에 공개된 행사의 경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고, '장수기획'의 경우에도 MBC 라디오 프로그램인 <여성시대>를 다뤘다.

하지만 한 번 그런 일을 겪고 나자, 취재 요청을 할 때 한 번쯤 '멈칫'하게 됐고,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거절당하거나, 취재 도중 불쾌한 일을 겪고 나면 "<오마이뉴스>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벼운 문의를 하면서도, 으레 '어차피 답변 안 주겠지'라고 미리 포기했다. 배우 문성근이 자신을 드라마에 캐스팅하려는 MBC PD에게 먼저 "괜찮겠냐" 물었다더니, 내가 딱 그짝이었다.

언론노조 MBC본부 김철영 편성제작부위원장은 14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담당 연출자가 어떤 연예인을 쓰기 위해 매번 보직자와 갈등을 벌여야 한다면, 자유로운 환경에서 10번의 출연 기회가 있었을 연예인의 기회가 1~2번으로 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연예인들이나 담당 PD 모두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며 블랙리스트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 담당 PD는 배우 이하늬를 황보여원 역에 캐스팅하기 위해 보직자는 물론 제작사와 수차례 갈등을 빚어야 했다. 결국 이하늬는 <빛나거나 미치거나>에 출연했고, 2017년 MBC 드라마 <역적> 장녹수 역을 통해 배우로서 한 발 더 도약했다. 하지만 그 사이 얼마나 많은 PD의 자기검열 속에, 이하늬의 기회가 사라졌을까. '세월호', '촛불'에 대한 사측의 금기 때문에 검열받은 여러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의 사례가, 다른 PD들에게 얼마나 많은 자기검열을 하게 했을까.

국정원이나 MBC 블랙리스트에 <오마이뉴스>가 있었을까? 글쎄, 모르겠다. 다만 김재철 사장 이후 MBC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담당 국장을 '자기검열'하게 만들었을 것, 정도의 추측은 가능하지 않을까? <오마이뉴스>라는 이름만 듣고 '화들짝' 할 정도로 말이다. 지난 9년간 국정원, MBC 사측의 '관리질'은 그만큼 치밀하고 꼼꼼했으니 말이다.

드러나는 진실의 조각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김규리. ⓒ SBS


지난 시간 감춰졌던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종이로 작성된 블랙리스트 문건은 적폐 세력들이 남기고 간 흔적일 뿐이다. 종이에 다 담기지 않은 더 많은 적폐, 더 치졸한 공작들은 어쩌면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은 오랜 기간 체내화된 MBC 구성원들의 자기검열이, MBC가 정상화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청산가리 발언'으로 국정원의 공작 대상이 된 배우 김규리(김민선). 더 이상 김규리를 대상으로 국정원 공작조는 활동하지 않지만, 그때의 잔상이 남은 네티즌들의 '악플' 공격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9년, 자기검열과 '좌우구분'이 체내화된 MBC 구성원들 역시 그 잔상에 오래도록 시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MBC에 남겨진 숙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파업 대체인력과 부당징계자 등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 생긴 감정의 골, 사측에 적극 '부역'한 이들에 대한 처분과 10년 가까이 본업에서 배제됐던 이들의 현업 적응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파업에 승리한다 해도 공영방송이 정상화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지난 정부가 MBC에 남긴 상흔이 이렇게 크고 끔찍하다.

이렇게 MBC를 망가뜨린 보이지 않는 손의 몸통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직도 묵묵부답. 피해자들의 증언은 속속 쏟아지는데, 가해자는 꽁꽁 숨어버렸고 공범자들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언제쯤 우리는 책임있는 자들의 책임 있는 사과를 들을 수 있을까?

MBC 오마이뉴스 출발비디오여행 서프라이즈 오마이텐트
댓글1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은솔아, 돌잔치 다시 할까?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