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주는 건 아닐까?

[서평] '일'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 <일하지 않을 권리>

등록 2017.09.29 17:10수정 2017.09.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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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하지 않을 권리>를 읽는 내내, 드는 의문을 내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았다. "직업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그렇다면, 당신에게 일과 직업은 무엇인가요?"

최x혜씨(약사)
"일은 살아가면서 목적의식적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 직업이라는 건 사회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공인된 일이고."


장x수씨(의대생)
"'직업'은 목표가 아닐까.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목적의식을 가지고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


20대 후반 정x석씨(화가 지망생)
"어쩌다 보니, 직업보다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지 않는 상호작용들이 많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벌어야 하나 싶을 때가 오면 과감하게 그만두고 있어요."

20대 중반 김x엽씨(취업 준비중)
"직업이나, 일이나 저에겐 '막막함'인 거 같아요. 초조하기도 하구요. 간절하기도 해요. '칼퇴근법'을 만든다고 하는 정당의원 실에서 일하는 친구들조차도 죽겠다고 합니다."


20대 초반 하x진씨(대학생)
"직업은 원하는 가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직업 자체가 목표라기 보단, 바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여건에 맞게 선택할 도구 같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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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을 권리> 데이비드 프레인 ⓒ 동녘

그들에게 '직업'이라는 단어는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전문직 종사자, 예비종사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선택권이 있고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많았다.

반면, 취업준비 중인 지인들은 허탈함과 초조함 또는 '자신을 객관화' 하는 냉소적인 시선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심지어,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온 친구는 '직업'은 본래 생각하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도구 정도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약 10년 전 내가 초등학교 때 고민했던 직업과 일은 '꿈'과 '기쁨' 그리고 '자아실현'이라는 단어와 잘 연결되었다. 그러나 지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직업과 일은 '사회적 지위', '안정적인 생활' 정도만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스펙을 쌓기 위해 인턴을 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여 교수 아래에서 연구를 하는 친구들은 나름대로 고민해 본 목표와 '직업'을 일치시켜 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얼마 못 가 포기하거나, 마음이나 몸이 병들게 된 친구들은 결국 방바닥에 드러누워 버린다.

정상적인 삶이라고 받아들이며 근근이 버티고 있는 친구들은, 안타깝게도 '시발비용' 지출 횟수가 잦다. 비정상이 된 마음과 몸을 치유하기 위해 계획에도 없던 '시발비용'은 번만큼 오히려 더 쓰게 만든다.

더불어, 생각보다 맞지 않는 적성과 지속되는 스트레스. 특히,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일수록 '과소비'는 일상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직업이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만하다.

"일 중심 사회에서 실업은 쓸데없이 넘치는 시간, 경제적 걱정이 안겨주는 굴욕, 사회적 고립과 오명으로 이루어진 중간지대다." "심지어 대량실업이 일어난 후에도 일이 소득, 권리, 소속감의 원천이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사회는 '피치 못할 여가는 행복을 주는 보고가 아니라 오직 고통을 유발하는 시간일 뿐' 임을 입증하는 곳이 된다. 이보다 더 괴상한 일이 있을까."(책 내용 중)

사실, 일자리도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다. 현재까지 보여지는 것들로 미루어 짐작컨대, 청년 구직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는 고도화된 생산력과 국내 기업의 저비용-고효율 중심의 '경제적 합리성', 그리고 기업과 국가의 '책임방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별다른 대안이 없는 동조자들은 '모두가 일을 해야만 한다'는 낡은 윤리를 통해 노동자들을 내몰고 있다. 직업을 가진 이들은 '노동 강도'에, 직업을 가지지 못한 자는 사회적 '압력'과 '강박'에 시달린다.

그저 무거워지는 일상 속에 많은 시간과 여유 또한 없다보니, '직업'의 뜻은 단순한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면, 일단 살기위한 직업으로 생각하게 되고, 내가 이렇게 살려고 고생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심지어는, 직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마저 '노동'이 되다보니 남과 나 자신에 대한 '인간적 감정'마저 황폐화 되고 있는 것 같다.

스트레스 및 여타 현대적 정서장애는 '억류불만'의 형태로써, 체계가 가진 전반적인 부조화의 신호가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스트레스, 불안, 우울 등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일 중심사회와 그에 뒤따르는 불안과 소외 그리고 몸이 생장하고 회복할 능력을 넘어서는 생활 속도 강요가 일으키는 심각한 폐단의 징후다.(책 내용중)

삐걱대는 기계는 언젠가는 고장이 난다. 그러한 순간이 사회속 개인들에게는 매번 찾아오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 보면 오늘날의 일 중심 사회에 사는 사람들 모두 병들거나 미쳐서 쇠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단순한 수단이 되어버린 '일'과 '직업'에게 행복, 건강, 권리, 공적존재로서의 자부심을 바라는 것이 사치가 되어 버린 걸까. 우리는 뻔한 스토리 라인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멋쩍은 얼굴로 인생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만 힘든 줄 아니"라는 이 무미건조하고 폭력적인 한 마디를 깨고 나와, 서로를 이해하는 "너도 힘드니, 나도 힘들어"라는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함께 새로운 피난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당연히 제공받아야 할 이런 권리를 어째서 항상 충분하지도 않을뿐더러 착취적이고 환경적으로 해롭기 일쑤인 일에 굴종해야만 얻을 수 있는 걸까? 우리는 왜 소득, 권리, 소속감의 필요를 채울 다른 방법에 대해서 정치적 토론을 시작하지 않는 것일까?(책 내용중)

일시적인 피난처는 많다. 어느 여행지에서든 우리는 홀로 '순간의 일탈'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일시정지 버튼에서 손을 떼면 변함없는 일상이 또다시 빠르게 흘러간다. 우리가 잃어버린 자유, 시간, 꿈을 잡으려고 한다면, 책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을 가능성을 품고 탐험해야 한다"라고 한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필자는 3가지의 실천을 제안한다. 첫 번째로 지금의 '일'들을 비판하기 위한 '토론의 문을 열자'. 두 번째로, 사회 주변인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갖자. 마지막으로 언어투쟁에 참여하자. 그리고 제대로 무장하자.

토론으로 들어가는 경로는 상당히 다양하다. 책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많은 자유시간을 부여하여 환경적으로 적절한 생산 활동을 실천해보자는 '생태주의적 시각', 일 중심 사회의 스트레스, 불안, 우울 등은 사실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워서 생긴 것이라는 '공공의료적 시각',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남성과 여성 모두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는 동시에 가족생활에 참여할 많은 시간을 부여하자는 '여성주의적 시각'을 소개한다.

세대가 교체면서, 많은 부분에서 과도기적인 상황이 도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옛날의 가치'에 휩쓸리고 내몰리는 우리들의 인생에는 주인이 없다.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청년급여, 청년통장, 무상교복 등으로 일단 숨통을 틔워주고 있지만 좀 더 지속적인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사회 속에서 삐걱대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 주변의 일 거부자들, 대안적 쾌락주의자들은 주어진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름의 즐거움, 부, 행복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진 대안과 언어는 '일'과 '직업'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위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일하지 않을 권리 -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반론

데이비드 프레인 지음, 장상미 옮김,
동녘, 2017


#일 #권리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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