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인은 명절이면 도망가고 싶다

[2017 추석 열전] 명절음식, 이제는 좀 바꾸어 봐도 좋지 않을까

등록 2017.10.02 13:57수정 2017.10.0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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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걱정돼요. 가족이랑 친척들이 제가 채식하는 걸 아직 몰라요."

얼마 전 채식을 결심한 지인이 연휴를 앞두고 한 말이다. 아직 '채밍아웃(내가 채식을 하노라고 주변에 밝히는 것)'을 하지 않았다며, 벌써부터 가족과 친척들의 반응이 걱정된다고 했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명절에 듣는 잔소리 목록에 몇 마디가 더 추가된다. 그러니까, "졸업하고 뭐 할 거니?" "취업은 언제 하니?" "결혼은 언제 하니?"와 더불어 "고기를 왜 안 먹니? 너 그러면 사회생활 못한다" 따위의 말을 추가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만 먹어라"라든지 "이건 먹어도 돼. 여기에 고기 조금밖에 안 들어갔어"는 보너스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채식인에 관한 기본적인 배려와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너의 신념은 잘 모르겠고, 난 너에게 고기를 먹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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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채식을 한다.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한 공장식 축산과 같은 생명착취에 반대하고, 이 의사를 일상적인 실천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다. ⓒ pixabay


나는 채식을 한다.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한 공장식 축산과 같은 생명착취에 반대하고, 이 의사를 일상적인 실천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다. 3년 전쯤부터 닭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육고기(육지 동물)를 서서히 끊었고, 지금은 물고기와 동물의 알, 유제품까지만 먹는 '페스코 채식(pesco-vegetarian)'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달걀도 먹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채식을 결심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윤리적인 먹거리를 고민하고, 착취와 차별에 반대한다.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난 동물을 평생 움직일 수 없게 가두어놓고 잔인하게 죽이는 그 과정에 눈 감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채식은 개인의 신념이고, 인간은 누구나 신념에 따라 삶을 결정하고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다시 말해, 개인이 먹을 것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인권의 중요한 조각이다. 

채식을 결심하는 순간, '귀찮은 사람'이 되어버리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보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주인공 영혜의 입에 탕수육을 쑤셔 넣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 폭력을 방관한다. 주변 채식인의 가족이 강제로 입을 벌려 고기를 먹였다는 이야기는 (다행히) 들어본 적이 없으나, 우리 사회는 채식인에게 동물성 음식을 먹여 보려는 시도를 간접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범한다.

이를테면, 김밥집에서 "제가 채식을 해서 말인데요. 계란, 햄 빼고 주세요"라고 말하면 "에이, 그러면 맛없어요"라는 말을 흔하게 듣게 된다. 나는 "계란, 햄은 빼는 대신에 맛있게 주세요"라고 한 적이 없다. 같은 가격으로 빈약한 김밥을 먹겠다고 이야기해도 핀잔을 들어야 한다.

그래도 김밥처럼 그 자리에서 재료를 넣고 빼달라고 주문할 수 있는 경우면 다행이다. 재료를 넣으려는 순간 제지를 할 수 있으니까. 찌개를 주문하면서 고기를 빼달라고 했는데 예기치 못하게 달걀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요리를 한 사람에게 계란은 고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외식을 할 때에는 번거롭더라도 빼주었으면 하는 재료를 하나하나 말하는 '귀찮은 손님'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채식을 하려면 반드시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채식인에게 명절은 배고픈 주간

김밥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니 배 놔라 감 놔라, 아니, 햄 빼라 오뎅 빼라 할 수 있지만, 명절의 음식은 다르다. 숭고한 제사상에 대대손손 고기를 올려 왔는데 어떻게 감히 손녀가 '돼지 빼라, 문어 빼라' 할 수 있겠는가? 제사를 지낼 때에는 제일 뒷줄 구석에서 절을 하고, 식사를 할 때에는 여자들끼리 작은 상을 따로 빼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일개 손녀가 말이다.

명절이 되면 채식인은 더더욱 음식 선택권이 없어진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명절 음식'을 떠올려 보라. 고기산적, 계란물을 입힌 전과 동그랑땡, 돼지수육.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야 '명절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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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성 식품을 일절 거부하는 비건 채식인은 명절이 되면 도망가고 싶어진다고 한다. ⓒ pixabay


동물성 식품을 일절 거부하는 비건 채식인은 명절이 되면 도망가고 싶어진다고 한다. 먹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어려운 것이야 늘상 있는 일이라지만, 호기심과 걱정, 경멸이 뒤섞인 눈빛들을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채식인은, 어디서나 소수자다.

채식인도 행복한 명절 만들기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부담과 의심 없이 먹을 수 있는 명절 음식은 없을까? 간단하다. 계란물을 묻히지 않은 전만 있어도 우리는 행복하다. 밀가루 반죽만 사용한 전을 부쳐내고, 그 다음에 계란물을 사용한 전을 부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경상도 지역에서 자주 먹는다는 배추전을 강력 추천한다. 버섯전, 부추전도 훌륭하다. 굳이 더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밀가루와 기름만 있으면 무엇인들 맛있다는 것을.

비건 채식인의 경우 간장을 먹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미리 알아두자. 소고기에서 추출한 조미료를 넣는 간장이 꽤 많다. 간장의 성분표를 확인하고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이유로 제사상에 절을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이제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착취와 차별에 반대한다는 신념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하고 대화해 달라. 치사하게 먹을 것으로 소외시키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는 말자. 

조상님께 좋은 음식 드리고 싶은 마음,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좋은 음식'의 정의를 바꿀 때도 되지 않았을까. 올 추석, 모쪼록 평등하고 평화로운 밥상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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