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집이 '폭행'당하고 있습니다

[2017 전국일주 - 대전편] 대전교구 갈마동본당 주임 신부가 거리로 나선 이유

등록 2017.10.09 11:17수정 2017.10.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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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가 월평공원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는 계획을 밝히자 대전시민들이 인간떼 잇기 행사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조금 특별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머무름과 떠남이 자유로운 휴가는 사제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홀로 가는 휴가, 그래서 많은 시간 자신을 만나고 침묵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휴가입니다. 숙식이 가능한 차가 있어서 더 편안했던 여행이었습니다.

휴가철이 지났음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퍼집니다.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부러움 그러나 제가 누릴 수 있는 몫은 아닙니다. 대신 그들에게 하느님의 강복을 전하고, 어머니이신 땅을 바닥삼아 하늘을 바라봅니다.

바람 소리가 나무의 합창 소리로... 나무의 외침 들어보세요

하늘과 땅, 그 속에서 몸을 식혀주는 바람을 만납니다. 연인을 향한 구애의 몸짓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강렬하게 몸의 감각을 일깨워줍니다. 장소에 따라서 다른 소리를 들려주는 바람을 느낍니다. 세포를 통해 전해지는 살아있음에 대한 확인 그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충남 청양의 칠갑산 정상에서의 작은 머물음을 기억합니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귀를 여는 순간 들리는 바람소리. 그런데 갑자기 바람 소리가 나무의 합창 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서 나무의 외침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존재의 소리가 된 바람소리, 아! 맞습니다. 바람은 존재를 공명시켜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들음으로 알게 되는 존재의 확인의 경험은 경탄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말씀, "좋구나!"를 외치게 됩니다.

희랍어 '집'에서 유래한 '에코'... '살림'이 곧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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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가 월평공원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지으려는 계획에 맞서 대전시민들이 인간띠잇기 행사를 벌이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요즘 생태(生態)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됩니다. 생태(ecology)는 eco + logy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이중 eco는 희랍어 oikos에서 나온 단어인데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ecology)는 '집에 대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놀라운 점은 우리 선조들은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를 집에 대한 살림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가정(家庭), 국가(國家), 우주(宇宙), 집에 대한 살림이 곧 생태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집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해야 합니다. 

경제(economy)는 eco + nomos로 이뤄진 단어입니다. 즉, 경제는 "집을 살리는 법(규정)"이라는 뜻입니다. 경제는 집을 살리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찾고 실행해야 하는 구체적인 실천이며, 그 실천은 현재 집의 상태가 이야기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집에 대한 이야기는 집에 살고 있는 생명에 대한 성찰을 전제합니다. 집은 자연생태(환경)를 바닥으로 시작합니다. 그 위에 인간이 살고 인간사이의 관계맺음을 통한 문화가 형성되게 됩니다.

자연생태를 바닥으로 사는 인간생태와 인간사이의 관계맺음으로 드러나는 사회생태는 집에 대한 이야기의 모든 것입니다. 인간생태와 사회생태는 바닥은 자연생태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인간생태와 사회생태의 지속은 자연생태의 건강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공동의 집이 폭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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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갈마동 성당 신도들이 월평공원 문제를 의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걱정하고 있다. ⓒ 갈마동 성당


가톨릭교회공동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을 '공동의 집'으로 가르칩니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 집은 지속돼야 합니다. 그리고 집에 속한 구성원이 어느 곳에 가든지 어떤 상태의 모습을 보이고 있던지 안심하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의 집의 구성원들은 정의로운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정의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내가 아프리카의 흑인 혹은 동남아시아의 소수민족으로 태어나고 세상 어느 곳에서 살아도 불이익을 받거나 삶을 영위하는데 아무런 두려움이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갖게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공동의 집)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공동의 집은 폭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점차 심화되는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는 인클로져의 폭력을 통해 이득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영겁의 시간동안 자리 잡고 살았던 수많은 생명들의 삶의 터에 울타리를 치고 소수 사람들의 정원 속의 관상용 자원으로 만들었습니다. 허락된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한 공간, 허락의 기준은 소유하고 있는 돈의 양입니다. 생명이 거래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 구입한 생명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니라 자원이 됩니다. 경제성과 효율성이 적어지면 폐기되고 버려지는 자원이 됩니다.

대전 도솔산 개발은 정의에 어긋나는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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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교 대전 갈마동성당 신부 ⓒ 심규상

여행을 떠났습니다. 캠핑카를 타고 떠난 여행입니다. 창조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기 위한 여행, 그러나 아름답다고 하는 곳에 들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커다란 건물들이 보입니다. 차단막을 설치하고 돈을 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제 아름다움을 느끼고 체험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체험할 수 없는 창조의 아름다움, 정의롭지 않습니다.

대전 도솔산을 오릅니다. 누구나 쉼이 가능하고 숨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오를 수 있어서 그리고 누구나 숨을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작은 공간 그러나 정의로운 공간입니다. 그 속에 앉아서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바람소리에 응답하는 수많은 생명의 소리를 듣습니다. "참, 좋습니다."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짓는 대전시의 도솔산 개발, 이것은 정의의 문제입니다. 창조의 정의에 어긋나는 개발, 저는 이것을 거부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임상교씨는 대전 갈마동성당 신부입니다.
#도솔산 #대전시 #아파트단지 #생태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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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7 오마이뉴스 전국 일주 '지역이 희망이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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