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앞두고 피고인소환장을 받은 이유

피고인 1년차, 다시 시작하는 총선시민네트워크 1심

등록 2017.10.04 19:11수정 2017.10.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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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연휴를 앞두고 들뜬 28일 밤, 집에 도착해보니 우편물이 와있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날아온 익일특급 편지 한통.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 재판 때문이었다. 박근혜정부가 2016년 20대총선 패배후 낙선운동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들을 표적수사한 사건이다. 22명이 기소되어 현재 1심재판을 받고 있다. ⓒ 강홍구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고 계시지요. 저도 역대급 명절연휴를 앞두고 들떠 있었습니다. 지난달 28일 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우편물이 와 있더군요. 서울중앙지법에서 날아온 익일특급 편지 한 통.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아래 총선넷) 재판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김진동 재판장이 이재용 부회장 사건도 맡으며,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지요. 저도 한동안 잊고 있었네요.

덕분에 집안 분위기가 싸늘해졌습니다. 20대의 마지막 추석연휴. 기대했던 오붓한 시간이 엉망이 되었네요. 부모님 입장에서야 '번듯한 직장' 범위를 벗어난, 시민단체 활동을 마음에 차지 않아 하셨지요. 마침 형사재판 통지까지 역대급 명절맞이 불효자1+1세트를 안겨드렸네요.

곧 서른인데 일자리며, 결혼은 어떻게 하느냐는 말들이 날아옵니다. 애정이 담겼지만 도움은 안 되는 잔소리라 불리는 그런 말들 아시지요. 뭐 저뿐이겠어요. 69만 5000명의 취업준비생들과, 통계에도 안 잡힐 수많은 이름 없는 청년들도 긴 연휴가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네요.

저는 피고인입니다. 노래제목처럼 벌써 1년이네요. 연휴가 끝나고 다음날이 기소된 지 정확히 한 해를 맞는 날이랍니다. 박근혜정부의 검찰은 지난해 2016년 10월 10일에 공소장을 접수했지요.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더군요. 낙선운동 기자회견을 연 죄였습니다. 민생을 파탄내고 헌정을 유린한, 집권세력에 항의하라는 주권자 시민들의 뜻에 따른 죄였습니다.

2016년 20대 총선을 기억하시나요. 벌써 까마득하실 것 같네요. 박근혜 정부는 패배의 화살을 시민단체로 돌렸습니다. 함께 연대한 시민단체의 사무실과 활동가 자택 등에 압수수색이 들어왔습니다. 투표일 전날 선관위가 공동대표 2명을 고발하며 시작된 사건이 계속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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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연휴를 앞두고 들뜬 지난 28일 밤, 집에 도착해보니 우편물이 와있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날아온 익일특급 편지 한통.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 재판 때문이었다. 박근혜정부가 2016년 20대총선 패배후 낙선운동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들을 표적수사한 사건이다. 22명이 기소되어 현재 1심재판을 받고 있다. ⓒ 강홍구


궁금합니다. 이렇게 눈덩이를 굴린 건 누구의 기획이었을까요. 박근혜정부의 수사당국은 무더기로 소환장을 날렸습니다. 피켓 들고 기자회견에 한 번 참석한 활동가한테도 말이죠. 결국 검찰은 22명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엮어냈습니다. 박근혜정부에 바치는 충성어린 굴비세트였을까요. 그렇게 형법 책에서나 본 공동정범이 되었습니다.

1년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결국 파면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정권까지 교체했습니다. 관제시위 의혹을 전면부인 하던 한 관변단체 인사는 자기도 이용당했다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시작하셨습니다. 지금은 적폐청산 할 때가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각하께서 찔리는 구석이 많으신 걸까요?


MB정부의 활약상이 연일 보도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2012년 대선개입을 비롯해 국정원이 주도한 수많은 대국민 공작들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지요. 어버이연합과 탈북단체 등 관변단체를 활용한 전략들도 말만 무성하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인터넷 교육과 어플까지 활용하며 꼼꼼하게 실버댓글부대를 양성했더군요. 정권의 입맛에 따라 블랙/화이트 리스트를 만들어, 국민을 편 가르고 사실상의 분열통치를 했다는 대목은 참담한 지경입니다.

선거개입을 암시하는 문건들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2011년 12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이 문건은 정진석, 박형준 등 청와대 출신 11명을 적극 지원하라더군요. 명분은 거창합니다. 'VIP 국정철학 이행과 퇴임이후 안전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네요.

향군회장 선거 관련 문건도 있습니다. 2012년 총선과 중복되어 '향군의 총선지원이 제하될 것'이 걱정되었나 봐요. 총선에서 향군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회장선거를 2월로 조정하고 '국정운영 후원세력'이 당선되도록 보훈처·기무사 등 국가기관이 개입할 것을 명시한 셈이지요.

국정원뿐 아니라 국군 사이버사령부도 시민들을 상대로 여론조작 공작을 했다고 합니다. 국가안보에 직결된 기관들이 총부리를 자국민에게 겨누다니 이게 정말 나라였는지 되묻게 됩니다.

이러려고 선거법을 어긴 피고인이 되었나 자괴감도 듭니다. 당시 여권후보를 당선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대놓고 선거에 개입하려 한 사람들은 수사조차 안하고 면죄부를 주다니요.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피고인석에 앉아야 할 사람들은 MB정부 고위관계자들 아닌가요. 헌정을 파괴해 탄핵까지 당한 박근혜 정부의 관련자들도 두말할 게 없겠지요.

아직 바뀌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박근혜정부가 파면되었지만 지난 9년간의 잔재는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위해 만든 선거법이 여전히 유권자들의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마저 억압하고 있는 게 현실이고요.

22명의 총선넷 활동가들은 여전히 피고인입니다. 이제라도 공소를 취소하고, 표적수사를 사과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첫걸음 아닐까요. 정권의 개가 아니라, 진정한 공익의 대변자로서 할 일을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네요.

기상여건 때문에 완전한 보름달은 6일쯤 볼 수 있다지요. 소원은 생각해 두셨나요. 저는 이만 꼬치나 끼우러 가야겠어요. 어머니가 선곡한 김광석씨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20대의 마지막 추석연휴가 이렇게 또 하루 멀어져가고 있네요.
#2016총선시민네트워크 #표적수사 #낙선운동 #공소제기1년 #이명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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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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