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논문으로 '박정희와 태권도' 연구한 독일인

독일 함부르크대 한국학 전공 게자 파이글씨 졸업논문 작성기

등록 2017.10.15 11:03수정 2017.10.1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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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솜씨가 부족합니다. 대학 졸업 논문을 쓸 때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논문을 쓰면서 얻은 게 있습니다. 바로 제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려고 노력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한국학과를 졸업한 게자 파이글(Gesa Feigl․27․독일)씨는 자신을 '글치'로 소개했다. 보고서와 졸업논문을 쓸 때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자씨는 "글쓰기가 아주 중요하다"면서 "글쓰기를 하면서 나만의 관점을 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게자씨가 2015년에 쓴 졸업논문은 '박정희 정부의 태권도 정치도구화 연구(Taekwondo als Instrument der Politik unter der Park Chung Hee Regierung: Der Ost-Berlin-Vorfall 1967)'다. 박정희 정부에서 태권도를 어떻게 정치 도구로 이용했는지 다루면서 그 예로 1967년 '독일 유학생 간첩단 사건(동백림 사건)'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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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좋아서 한국학 전공했어요" 게자 파이글 씨는 "한국에 관심이 있어서 태권도도 수련하고 한국학도 전공했다"고 말했다. ⓒ 신향식


"한국에 관심이 있어서 태권도를 수련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도 한국학과를 선택했고, 졸업논문도 한국에 관한 주제로 잡았습니다. 논문을 쓰면서 동백림 사건도 알게 되었고 윤이상 음악가의 사연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게자 파이글씨의 논문은 화제가 되었다. 함부르크 교민사회와 유학생, 교환학생들이 관심을 보였다. 논문의 완성도보다도 연구주제가 신선했기 때문이다. 특히 함부르크대학교 한국학과에서 태권도를 주제로 논문을 쓴 사례가 없어서 더욱 그랬다.

"논문을 집필했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자기 생각을 완벽하게 설정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논문을 쓴 이후로 언론 보도를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았고, 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취사선택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자료도 조사하고, 글 전개 방법도 구상하면서 생각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습니다."

게자 파이글씨는 "학술적 글쓰기를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바르게 실천하는 자세를 갖추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면서 "바로 이것이 독일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글쓰기 위주로 교육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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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태권도' 게자 파이글 씨가 2015년에 쓴 졸업논문 ‘박정희 정부의 태권도 정치도구화 연구(Taekwondo als Instrument der Politik unter der Park Chung Hee Regierung: Der Ost-Berlin-Vorfall 1967)’의 표지. ⓒ 신향식


'박정희 정부의 태권도 정치도구화 연구' 논문으로 관심 끌어

게자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당시 '김게자', '게자 누나', '게자 언니'란 예명이 있었을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국 학생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렸고, 유럽인들에게 낯설고 짓궂은 한국의 대학가 문화를 흠뻑 받아들였다.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 등뒤에서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면 한국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종합방송채널 JTBC의 '비정상회담'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다니엘 린데만이란 독일 청년에 견주어 게자씨가 '여자 다니엘 린데만'으로 통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독일로 복귀한 뒤에도 함부르크대에 교환학생으로 온 한국 학생들을 친누나, 친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고 뒷바라지해 주었다.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의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자 파이글씨를 2015년 10월에 독일 함부르크 중앙역 부근 맥주집에서 만나 첫 구술대담을 하고, 지난 7월 초에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추가로 대담을 하였다. 게자씨는 현재 도쿄에서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 비자를 받고 판매영업 실습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히틀러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 시대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명확하게 자기 생각을 갖지 못해서 히틀러가 하라는 대로 내몰림을 당한 것 같습니다. 자기 생각이 있었다면 나치에 동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국민들에게 자기 생각이 있으면 그 사회는 민주 사회로 발전합니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그것이 왜 옳은지 타당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겠지요. 서로 토론하고 문제제기도 하면서 더 좋은 의견을 얻습니다. 이것이 민주 사회로 발전하는 길입니다."

게자씨는 "자기 생각을 바탕으로 토론을 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주제로 토론하는 사례를 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 반발을 삽니다.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를 차근차근 제시해야 합니다. 막무가내 주장은 '자기 생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말할 때 상대는  그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배워 사회에 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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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지만 논문 작성 경험은 유익" 게자 파이글 씨는 "졸업논문을 쓰면서 무척 많이 고생했지만 자기 관점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 신향식


"한국영화 보던 중 한국어 리듬과 발음을 매력적으로 느껴"

게자 파이글씨는 우연한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아시아권 영화를 즐겨보던 중 어감이 매우 아름다운 영화를 한 편 발견했다. 일본어, 중국어보다 리듬감이 묘했고 발음도 부드러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바로 한국영화였다.(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게자씨는 "한국어 대사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뜻이 궁금해졌고 한국 문화를 하루빨리 배우고 싶어졌다"면서 "다행히 언어에 재능이 있어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뒤 게자 파이글씨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태권도 수련에 들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 관심이 커져 대학 지원 때 한국학과를 선택하게 됐다. 취업하기에 유리한 전공은 아니었지만 관심 있는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논문을 작성해야 했다. 형식적인 보고서 수준에 그치지는 않았다. 무척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야 했다. 논문 길이는 전공마다 다른데 한국학과에서는 1만 단어 분량으로 완성해야 했다. 논문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몇 동기들은 논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재심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저는 독일어로 논문을 쓰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미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냈는데 다시 독일로 돌아온 뒤에 독일어로 글을 쓰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때 소논문을 작성해 보았지만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대학 졸업논문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학문 연구가 체질이 아니었기에 수 개월간 논문에 쓰일 한국어 자료를 찾고, 일일이 출처를 밝혀가면서 정리하는 작업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태권도 사범에게 받은 책에 동백림사건 실려 있어 논문주제로 연결

게자 파이글씨는 졸업논문에서 박정희 정부가 태권도를 어떻게 정치도구화 했는지를 살펴봤다. 어느 날 태권도 사범에게 태권도 역사를 담은 책을 건네받아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책에 동백림사건이 실려 있었다.

'어, 이건 또 뭐야?' 하면서 관심이 갔다. 논문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던 중 이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국의 태권도 사범들이 동베를린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얼마나 관여돼 어떻게 고생했는지 알고 싶었다.

"핍박 받은 분들에게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이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제가 논문을 쓰니 한국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태권도에 관해서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동백림 사건을 잘 몰랐습니다. 알고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논문을 쓴 저보다는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 한국 젊은이들은 그 유명한 윤이상 음악가도 잘 모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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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헌도 참고했어요" 게자 파이글 씨의 함부르크대학 한국학과 졸업논문의 참고문헌 목록. 한국어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 신향식


"반공 앞세워 반대파 탄압하던 박정희가 공산주의자였다니 신기"

게자 파이글씨는 논문에 담은 내용을 구슬땀을 흘려가면서 이야기했다. 자료를 찾아볼수록 흥미진진했다고 했다.

"김종필이 1961년에 설립한 비밀기관(중앙정보부)의 임무 중에는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을 감시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1967년에는 해외에 있던 한국인 200여 명이 한국으로 압송되었습니다. 이들은 간첩죄나 북한과 공조했다는 죄를 뒤집어썼습니다. 대표적으로 1967년 동백림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대규모 간첩 수사를 벌였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관련 인물들을 조사하기 위해 독일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을 불시에 한국으로 납치한 것입니다. 그 중에는 윤이상 음악가도 있어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기울였나 봅니다. 다행히 윤이상 음악가는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년만 복역하고 독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게자씨는 "박정희 정부 시대에 경제적으로 크게 도약했지만 반공을 앞세운 군사정부와 중앙정보부의 비밀활동으로 국민들이 탄압 받기도 했다"면서 "특히 이 논문을 쓰면서 태권도와 정치의 연결고리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박정희가 태권도를 다양한 이유로 그의 정치활동에 이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면서 "박정희는 태권도를 익힌 사람들을 중앙정보부에서 일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태권도는 박정희를 위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전면에 서게 되었습니다. 태권도는 그의 정책인 '문화 한국'을 지원하기 위하여 사용되었고,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와 함께 장려되었습니다. 물론 태권도는 박정희에 의해 많은 지원을 받았고, 국제적으로 성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 없이 태권도는 오늘날과 같은 지위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WTF(세계태권도연맹)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올림픽에서 태권도 종목이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태권도는 박정희가 지원하지 않았아도 다른 방식으로라도 발전했을 것으로 봅니다."

게자 파이글씨는 반공을 앞세워 반대 측을 탄압했던 박정희가 1948년에 공산주의 활동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점이 신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 논문 주제에 더 빨려 들어갔다.

"독일 정부에서 재독 한국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라고 박정희 정부에 요청했으나 보기 좋게 무시당했습니다. 그래서 외교적으로 마찰이 있었나 봅니다. 1958년 북한의 천리마운동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북한경제가 남한보다 크게 발전하고, 1960년대에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주창해 내부결속을 다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박정희는 1961년에 군사정변을 일으켰고 '반공' 외에는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내세울 만한 이념이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해야 했고 그 중 하나가 체육 활성화 정책이었습니다. 국민체육진흥법을 제정하고 태권도 발전방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한때 공산주의자였다고 하니 참 역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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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대 글쓰기 행사' 게자 파이글 씨가 졸업한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의 글쓰기센터 행사에 참가한 함부르크대 학생들. ⓒ 신향식


박정희가 음악가 윤이상 납치조사한 부당성, 논문에 집중 서술

게자 파이글씨는 "논문에서 한국 정부가 윤이상을 납치해 조사하고 재판한 것이 과연 옳은지에 관해 집중 서술했다"면서 "3개월에 걸쳐 A4 10포인트 35쪽 분량으로 논문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또,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논문에 알찬 내용을 담기 위해 힘들어도 견뎌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논문지도 교수는 게자씨에게 논문을 대폭 수정하라고 지적했다. 연구의 깊이가 부족하고 논문 형식에 맞지 않는다면서 보완하라고 요구했다.

게자 씨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독일에서는 교수들이 대충대충 논문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치고는 무척 가혹했다는 표정으로 보였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졸업논문 때문에 고생합니다.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쓸지 고민하면서 교수님과 의견을 나누고 자료도 찾아가며 준비하는데 정말 힘듭니다. 교수님에게  계속 지적을 받아가면서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칩니다. 일부 학생들은 자료가 부족해서 논문  작성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주제를 정해서 논문을 쓰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진행하다 보면 자료가 없거나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 있어서 울상을 짓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에게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논문을 작성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게자 씨는 힘들긴 하지만 얻는 게 많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가 알차게 나오든 그렇지 않든, 교수님 설명을 그냥 받아적는 것이 아니라 궁금한 주제를 탐색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많이 활용합니다. 저는 논문을 쓰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나 인터넷 자료를 바로 믿는 대신 관련 자료를 좀 더 살펴보면서 신뢰해도 되겠는지 판별하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게자 파이글씨는 졸업논문을 쓰면서 진로를 확실하게 설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학술적 글쓰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에, 깊게 학문을 연구하는 분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제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명확하게 확인하고 그에 맞춰 진로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로 뭘 하는 것보다는 손으로 뭘 만들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저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진로를 설계했습니다."

게자씨는 완벽하지 못하지만 정성스럽게 작성한 논문을 드러내 보이면서 살포시 웃었다. 그의 논문에는 쪽마다 5~10개의 각주가 촘촘하게 달려 있었다. 한국어 자료를 포함하여 모두 32개의 참고문헌도 적혀 있었다.
덧붙이는 글 독서신문에도 게재합니다. 독일과 일본 현지 취재입니다. 독일 대학서 학생들 고생시켜 가면서 졸업논문을 쓰게 하는 깊은 뜻을 한국 대학에서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글쓰기 #논술 #졸업논문 #독일교육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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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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