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클수록 엄마의 사랑을 잃어버려야 한다

아이의 성장 과정과 부모의 역할 살펴보는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등록 2017.10.13 10:38수정 2017.10.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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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A는 아침마다 패닉 상태가 된다. 특히 학교 갈 준비를 하느라 거울을 보고 옷을 입을 때, 갑자기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공포는 구역질이 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거울 앞에 선 자신이 역겹다. 종종 학교를 빼먹어 결석 횟수도 많다.

그런 A에게도 열정을 쏟는 일이 있다. 바로 코스프레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따라서 옷을 입고 분장을 하면, 얼굴이 밝아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변신하고 사진을 찍어 자랑스럽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코스프레 전시회에도 적극 참여한다.


거울 속 자신을 역겨워하던 A는 코스프레를 하면 자신만만해지는 극적인 변신을 한다.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엄마의 세상에 갇힌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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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겉표지 ⓒ 위고

이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는 책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수련 지음)에 나오는 사례(23~25쪽)다. 심리치료사인 저자는 이 학생이 겪는 어려움이 사실은 엄마와의 관계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한다. A의 엄마는 자녀의 하루 일과를 전부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A가 집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엄마의 세상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군가의 완전한 통제 속에 살면서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그 누군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일 때, 일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갇혀 있다는 건 다른 어떤 관계도 시작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26쪽)

엄마의 사랑이 아이를 압도하다 보니 A는 엄마와 분리되는 것에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A는 스스로 삶의 지팡이를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코스프레다. 이것의 의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코스프레는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보완해줄 뿐만 아니라, 엄마와 분리되는 것에 부담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빌미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28쪽)

이 사례를 보면, 엄마의 사랑이 지나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애착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문제가 됨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너무 오래 지속되는 애착관계, 그것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애착관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애착관계"(30쪽)라고 지적한다.

반드시 잃어버려야 할 사랑

태어난 아이는 상당 기간 엄마에게 의존한다. 그리고 엄마는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아이를 보살핀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사랑에는 양면성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사랑에 매일수록 아이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관계가 너무 오래 지속되거나 유일한 관계가 되어버리면, 사랑의 응답에 묶이면서 존재가 비워질 수 있습니다. 자기가 바라던 것을 잃고, 존재의 의미를 주었던 사랑이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반전을 낳게 되는 것이죠."(37쪽)

아이가 성장하려면 이전의 애착관계를 끊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아이가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랑을 잘 잃어버리는 것이 관건이 된다며, "엄마가 베풀어준 사랑이 정말로 의미 있는 사랑이 되는 것은 아이가 그것을 얼마나 잘 잃는가에 달려 있습니다"(29쪽)라고 말한다. 이어 저자는 성장의 조건을 이렇게 정리한다.

"어른이 되는 것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은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을 아낌없이 듬뿍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사랑을 잃어버려야 합니다."(30쪽)

그런데 만약 아이가 성장하는데도 엄마의 사랑이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아이에게 공포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입만 벌리던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죠. 점점 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성장의 방향을 거슬러 엄마와의 애착이 계속해서 연장된다면 아이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럴 때 아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 중 하나가 공포증입니다."(54쪽)

이뿐만 아니다. 저자는 엄마의 사랑이 흘러넘치기만 한다면 아이는 성장하지 못하며 미래에 대한 전망이 차단된다고 지적한다.

친구 같은 아빠? 아이에겐 '아빠는 최고'라는 신화가 필요해

아이가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의 핵심은 무엇일까? 저자는 성장이란 내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 생각, 경험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성장입니다."(9쪽)

특히 '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태어나서부터 애착관계에 있는 엄마보다는 엄마 옆에 있는 사람, 즉 아이의 공동 책임자인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흔히 아이에게 아빠는 초능력자 내지는 영웅과 같은 존재다. 아이들이 자기 아빠가 최고라며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저자는 "아빠에 대한 아이의 엉뚱하면서도 허풍스러운 찬미는 사실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107쪽)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이는 엄마와의 애착관계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내 아빠는 최고'라는 신화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아빠가 최고라는 신화는 아이의 상상일 뿐이지만 아이를 새로운 자리로 끌어당겨주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112쪽)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아빠들이 많다. 아이와 놀아주고 따뜻하게 도닥여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친구 같은 아빠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126쪽)라고 경고한다.

성장 과정과 삶에 대한 인상적인 통찰 담겨

이 책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도 얻을 수 있다. 아빠가 아이의 성장에 주는 영향을 보면, 인간은 '신화'의 세계를 통해 각자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뿐만 아니다. 성장과 삶에 대한 다음과 같은 통찰도 인상적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 부모와의 분리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분리도 이루어내야 합니다. 자신의 일부를 잃어야 하죠.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입니다. 그리고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와 형태가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는 과정, 하나의 사랑법이 좌절되면 다른 사랑법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과정, 어떻게 보면 그것이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95쪽)

이 책은 아이의 성장에 선생님과 친구의 역할도 소중하다고 설명한다. 아이에게 친구가 왜 소중한지에 대해서만 잠깐 소개하자면 이렇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뺐으면 안 됩니다. 놀이 상대가 없어서 심심하고 외로워져서가 아니라, 그렇게 되면 아이는 더 이상 스스로 바라는 것이 생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친구가 없다면 상처를 치유받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늘 어려운 길로 돌아가게 됩니다."(260~261쪽)

저자는 "친구가 하는 일을 부모가 해줄 수는 없습니다"라며, 아이의 성장 과정을 "완성시켜 줄 좋은 열쇠"를 가진 존재가 바로 친구라고 말한다(260~261쪽). 왜 그런지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

아이의 성장을 위한 어른들의 역할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책

한편, 우리 사회의 부모들은 그간 아이의 성장을 잘 이끌어 주지 못해 왔다. 아이가 세상을 만나는 과정, 자기 세계를 만드는 과정, 어른이 되는 과정 등을 이해하지도 잘 이끌어 주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아이의 성장 과정과 그에 필요한 어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어 관심을 끈다. 더구나 책 곳곳에 흥미로운 사례들과 인상적인 통찰이 펼쳐진다.

이 책을 부모는 물론이고 학교 선생, 나아가 아이를 갖고자 하는 예비 부모에게 권한다. 부모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도 성장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교양서로서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을 부모 역할에 관한 실용적인 조언들에 집중해서 읽어도 좋지만, 그와 함께 자신의 성장 과정과 삶을 돌아본다면 더욱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이수련 저자는 파리7대학에서 정신분석학 박사를 받았고, 프랑스의 오베르빌리에 아동청소년병원, 생브리외 아동청소년 메디컬 심리센터 등에서 임상을 했으며, 슬라보예 지젝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자크 라캉의 <세미나 11> 등을 번역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 어떻게 엄마의 사랑을 잃어야 하는가

이수련 지음,
위고, 2017


#이수련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부모의 역할 #아이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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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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