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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에 담긴 천우희의 소신 "메시지 강한 작품에 끌려"

[인터뷰] 천우희가 첫 드라마로 <아르곤> 선택한 이유

17.10.14 18:06최종업데이트17.10.1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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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아르곤>은 천우희의 첫 드라마였다. ⓒ 나무엑터스


"끝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아요. 정말 다 좋았거든요. 촬영장에서 너무 웃고 다녀서 백진 선배(김주혁)가 '150부작 드라마 한 번 해봐야 웃음 사라지지' 하고 놀리셨다니까요? 하하하."

tvN <아르곤>은 천우희의 첫 드라마였다. <곡성> <한공주> <써니> 등 이미 여러 영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력을 보여줬지만, 모두들 드라마와 영화는 다르다고 했다. 처음 천우희가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우려와 걱정도 많았다고. 영화만 하다 드라마로 가서 욕 안 먹는 배우가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아르곤' 팀의 막내이자 용병기자 이연화 역을 맡은 천우희에게 연기력 논란 따위는 없었다.

"제작 환경도 다르고, 시청자 반응이 실시간으로 쏟아지잖아요. 혹시 혹평을 받으면 중심을 잘 잡고 연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죠. 무엇보다 과연 내가 체력적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드라마 시스템 안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어요. 하지만 <아르곤>은 쪽대본도 없었고, 디졸브(날짜의 경계 없이 밤새 이어 촬영하는 것)도 없었어요. 게다가 8부작이었잖아요! 최적의 조건이었죠.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 후한 칭찬도 받았고요. 첫술에 배부를 생각 없었는데, 너무 배부르게 잘 마쳤어요. 감사할 뿐이죠."

처음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우려와 걱정도 많았다고. ⓒ 나무엑터스


필모그래피에 담긴 천우희의 소신 

천우희는 <한공주> <카트> <26년> 등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에 두루 출연해 왔다. 천우희는 "유명인으로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주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필모그래피만 살펴봐도 그가 중요하다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실 작품 선택할 때 사회적 메시지를 우선으로 보는 건 아니에요. 대본을 읽었을 때 흥미가 생기고, 그때그때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택하는데, 돌아보니 꽤 많은 작품이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고요.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저도 모르게 메시지가 강한 작품에 끌리나 봐요."

<아르곤>에 끌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까? 극 중 <아르곤>의 배경이 되는 HBC는 민영방송으로 그려졌지만, 파업, 해직 언론인, 용병 기자 등의 이야기는 지난 2012년 이후의 MBC를 떠올리게 했다. 사회의 모든 부조리가 뒤엉켜 진실이 감춰져 버린 미드타운 쇼핑몰 붕괴사고는 세월호를, 수많은 아이들을 죽게 만든 독성 분유 사건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연상시켰다. 진실을 추적하다 국민적 비난을 받게 된 아르곤 팀의 수난은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의 진실을 밝히던 MBC < PD수첩>과 닮아있었다.

무엇보다 <아르곤>이 처음 방송되던 9월 4일, KBS-MBC 양대 공영방송 노조는 '공정방송 사수'를 외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지만, <아르곤>의 이야기와 설정을 예사로 넘길 수 없었던 이유다.

"현실적인 부분이랑 분명 맞닿아 있긴 하죠. 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옮겨 <아르곤>을 만든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영방송 파업과) 시간이 우연찮게 딱 겹치게 돼서, 상황적으로 더 조심스러웠던 건 사실이죠. 하지만 너무 외부적인 요인을 신경 쓰다 보면, 드라마에 더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저희는 드라마가 가진 묵직한 메시지를 잘 표현하기 위해, 우리 대로 으쌰으쌰 했어요."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저도 모르게 메시지가 강한 작품에 끌리나 봐요." ⓒ 나무엑터스


MBC와 닮은 HBC... 그 안에서 난처해진 이연화 

현실성 있는 스토리 안에서, 가장 처지가 곤란한 것은 바로 극 중 천우희의 캐릭터, 이연화다. 부당 해고된 기자들의 결석을 채우기 위한 특채로 HBC에 들어온 계약직 기자. 선후배도 모르고, 시대정신도 모르고, 기자 정신도 없는 그들은 지금 MBC 안에도 있다. 2012년 MBC의 170일 파업 당시 대체 인력으로 뽑힌 시용 기자들은, 파업 종료 후 부당하게 쫓겨난 기자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래서 연화를 따돌리는 선배 기자들이 나쁘게 그려지거나, 연화의 기자 정신이 돋보이는 건 사실 위험한 설정이었다. 시용 기자라고 다 나쁘고, 파업에 참여했다고 모두 정의로운 건 아니겠지만, 이런 설정은 자칫 착한 친일파-악한 조선인의 구도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저보다도 감독님과 작가님의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개별적으로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무게 조절을 잘못하거나, 무게 중심을 잘못 두면 이야기가 다르게 전달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오해나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집중했어요. 외부적인 상황을 신경 쓰며 연기했다기보다, 대본에서 주어진 상황 안에서요. 가능한 이연화의 캐릭터만 고민하려고 했어요."

<아르곤>은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 드라마였다. 이는 출연한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사 한 줄 한 줄이 정말 기가 막혔어요. 작가님이 어쩜 이렇게 잘 썼을까 싶었죠. '누구나 틀릴 수 있다. 뉴스는 믿는 게 아니라 판단하는 거다.' 이 대사는 드라마 속 어떤 상황에만 맞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너무 필요한 말이잖아요. 저도 늘 SNS를 하고, 주위에서 정보를 많이 공유해주고 또 전달하거든요. 이 이야기들의 뿌리가 어떤 건지, 뭐가 팩트인지 확인도 않고 '그랬대' 하고 전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젠 뉴스를 보는 마음가짐도 달라질 것 같아요. 배우들은 영화에서 멋진 풍경 보면 마냥 감탄하지 못해요. 와 저거 찍으려고 얼마나 산을 탔을까, 장비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하하. 이면이 조금 보이는 거죠. 기자 연기 했다고 기자들의 삶을 알 순 없지만, 책 한 권 읽은 정도의 간접 경험은 되지 않았을까요? 이젠 뉴스 보면, 얼마나 취재하러 다녔을까, 얼마나 뻗치기를 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웃음)"

"내가 택한 작품이 시청자들에게도 통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 나무엑터스


<아르곤>으로 알게 된 드라마의 매력 

천우희는 첫 드라마로 받은 호평보다 "내가 택한 작품이 시청자들에게도 통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했다. 첫 방송이 나가던 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채팅으로 반응이 바로바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무서우면서도 재밌었다고. 천우희는 그렇게 드라마의 매력에 푹 빠졌다.

"드라마만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다음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도 해보고 싶어요. 사실 멜로와 그동안 인연이 없었거든요. 사실 저는 취향이랄 게 없는 사람이라 두루두루 다 좋아하고 다 해보고 싶긴 해요. (웃음)

<아르곤>은 첫 드라마를 아름다운 기억으로 만들어준 작품이에요. 좋은 사람들, 좋은 에너지, 좋은 반응... 배우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다 느낄 수 있었죠. 모든 것이 감사해요. 사실 지난 4월부터 쉰 적이 없이 달려왔어요. 무뎌서 몰랐는데, <아르곤> 끝내고 나니 몸이 아프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잔뜩 긴장하고 있다 풀린 거죠. 그래서 아직은 정말 <아르곤>을 끝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데, 이제는 푹 쉬면서 홀가분함을 한 번 느껴보려고요."

천우희 아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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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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