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시신에 3년 면회 간 엄마
"내가 가난해서 아들이 죽었다고요?"

[군대·죽음·상처-트라우마센터를 만들자⑤] 고 김준엽 하사의 엄마 김운선씨 이야기

등록 2017.10.18 09:57수정 2017.10.1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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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국가 차원의 군트라우마센터를 만들자는 의미로 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바로가기)에서 국가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군피해치유센터 함께'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 기자 말

아들을 보낸 후, 엄마는 9번 교통사고를 냈다 ⓒ 안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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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준엽 하사의 제복. ⓒ 이희훈


1764일 전, 아들이 군대에서 죽었다. 고 김준엽 하사(살아있다면 27세)의 엄마 김운선(58)씨는 지금도 아들을 떠올리면 곧장 몸과 마음이 멎는다. 그리고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남는다.

'우리 아들이 왜 죽었을까?'

'쾅!'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발생한 교통사고만 아홉 차례. 엄마는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에 잠겨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생각의 끝은 항상 같다.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다는 것.

좁은 골목길 끝. 엄마의 집 입구엔 낡은 태극기 하나가 외롭게 걸려 있었다. 아들이 죽은 뒤 걸어둔 태극기는 5년 가까운 세월을 한 곳에서 버텼다. 낡고 헤져 축 처진 태극기를 보며 엄마는 한숨을 내뱉었다. 엄마의 목소리도 축 처져 있었다.

"우리 아들이 국가를 위해 죽었잖아요."

그러나 국가는 아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이 죽은 까닭을 "불우한 가정환경"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가난해서 아들을 죽인 건가요?"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엄마가 탄 택시는 철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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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준엽 하사의 영정이 된 군 복무 당시 사진 앞에는 엄마가 켜놓은 촛불이 있다. ⓒ 이희훈


지난 8월 28일 오후 6시 30분. 엄마의 집에도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좁은 집 한 편,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아들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아들의 사진이 곧장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방에 불을 켜지 않았다. 아들의 사진 주변 촛불이 방 안의 유일한 빛이었다.

"사실 전등이 나간 지 오래됐어요. 집에 전등 갈 사람이 없어서..."

인터뷰는 전등을 고치는 것으로 시작됐다. 전등은 합판과 스티로폼으로 된 천장에 위태롭게 달려 있었다. 의자를 딛고 올라선 기자에게 엄마는 연신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제가 집에 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라는 말도 조심스레 덧붙였다.

'탁.' 엄마의 집에 아주 오랜만에 불이 들어왔다. 아들의 영정 사진이 더 선명해졌다. 구석에 걸린 아들의 제복도 눈에 들어왔다. 제복 곳곳엔 듬성듬성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어깨의 하사 계급장과 '김준엽 KIM'이라고 적힌 명찰도 빛이 바래 있었다. 옷의 주인은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그렇게 옷과 함께 남아 있었다.

2012년 12월 20일, 일터에 있던 엄마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들이 잘못됐다는 전화였다. 엄마는 곧장 택시를 잡았다. 무조건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택시는 철원을 향해 달렸다.

엄마는 인터뷰 내내 애써 눈물을 감췄다. 하지만 아들을 처음 마주한 당시를 떠올릴 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아들이 목을 맸다는 거예요. 정말 생각해보지도 않은 일이어서..."

정작 그때는 맘 놓고 울 수도 없었다.

"제가 울고 그러면 괜히 수사하는 데 방해될까 봐... 그땐 그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어요. 군대를 철석 같이 믿은 거지. 지금 같으면 절대 안 그래요."

엄마는 3년 동안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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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군에서 잃은 김운선씨가 아들이 입었던 제복을 옷장에서 꺼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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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준엽 하사의 엄마가 아들이 입었던 제복의 단추를 잠그고 있다. ⓒ 이희훈


군에서 내린 결론은 자살이었다. 검시 및 부검 결과 '의사(목맴 사망)'의 흔적이 아들의 몸 곳곳에 있다고 했다. 아들의 휴대폰과 노트북에 자살을 암시하는 흔적도 남아 있다고 전해왔다. 내용은 없었지만 죽기 일주일 전에 '유서.hwp'라는 제목의 파일이 생성됐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매듭법, 자살 등의 검색 기록도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에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은 아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아들의 손이 뒤로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불과 두 달 전,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와서 "진급하려면 자격증도 많이 따야 하고, 위에 분들에게 잘 보여야 해요"라고 말하던 아들의 당찬 모습도 눈에 선했다. 엄마는 아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어 3년 동안 장례도 치르지 않았다.

3년 동안, 엄마는 여느 엄마들처럼 아들을 면회하러 갔다. 차이가 있다면 면회 장소가 국군일동병원 영안실이었다는 것. 엄마의 손엔 음식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걸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얼음장 같은 아들의 시신을 보는 것으로, 그렇게 엄마의 면회는 끝났다.

2015년 추석, 엄마는 또 아들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아들이 죽은 지 3년이 다 돼가던 때였다. 그날 아들을 마주한 엄마는 이전과는 다른 감정에 휩싸였다.

"시간이 지나니까 내 아들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더라고요. 눈도 더 들어가고, 피부도 더 새까매지고... 하아, 아들의 모습이 없는 거예요."

아들이 제 모습을 잃어갔듯, 엄마의 일상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남편과 이혼했고, 아들의 형도 잠을 설치며 우울증 약을 먹어야 했다. 꿋꿋이 버티던 엄마는 첫째마저 잘못될까 봐 밤마다 잠을 설쳤다.

군에서는 계속 아들의 장례를 치르라고 설득했다.

"계룡대에서 만난 박 중령이 제 손을 잡고 이야기했어요. (죽음을 인정하는 문서에) 사인하면 순직 처리를 해주겠다는 거예요. 언론에만 노출시키지 말아 달라는 말과 함께요."

차가운 영안실에 있는 아들, 아픈 첫째 아들, 자신의 무너진 일상... 이런 상황이 엄마의 머리를 휘감았다. 결국 엄마는 3년 만에 아들의 장례를 치렀다.    

아들이 죽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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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준엽 하사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가까이 지났지만, 엄마는 지금도 아들의 영정 앞에 촛불을 켜놓는다. ⓒ 이희훈


엄마는 아들이 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는지 꼼꼼히 따져보기 시작했다.

아들은 2011년 8월 병사로 입대했다가 상병 때 부사관에 지원, 2012년 10월 하사로 임관했다.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으로 '군인 아저씨'를 썼던 아들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찍이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착한 아들이기도 했다.

병사 때 관측병으로 복무하던 아들은 하사가 된 후 측지부사관(포병의 측지 업무 수행) 임무를 부여받았다. 아들에겐 생소한 보직이었다. 더구나 당연히 거쳐야 할 포병학교 특기교육도 받지 못한 채, 곧바로 자대에 배치됐다(이에 대해 국방부는 아들과 같은 소수 특기 부사관의 경우, "자대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포병학교에 입교한다"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는 주특기인 측지 임무 대신 차량 선탑(운전병과 함께 선임자가 차량에 탑승하는 것)과 같은 지원업무가 주로 주어졌다. 하사 임관부터 세상을 떠난 날까지 82일 동안, 아들에겐 임무 숙지의 기회가 제대로 부여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아들은 이등병을 붙잡고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할 일이 없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죽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아들은 자신과 가까웠던 옛 학원 선생님에게도 이런 상황을 털어놨다.

"병사일 때와는 다르게 배워야 할 게 많아요. 책임감도 더 크고요. 근데 체계적으로 교육을 좀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시스템이 잘 안 돼 있어요. 그래서 어려워요."

선생님은 "사수가 잘 해주니? 모르면 사수에게 여러 번 물어서라도 차질 없이 잘 해 나가야지"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게 잘 안 돼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던 중, 아들에게 '주특기 연구강의 발표'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교육도, 임무 수행의 기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고위 상급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진행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국방부는 "발표가 아닌 환담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눈앞이 깜깜했을 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대대장의 일지에 아들이 '고문관'으로 적혀 있었어요. 그럼에도 단 한 번의 개인면담이나 신상관리가 없었어요. 게다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측지 임무를 강의하라는 명령까지 받았으니... 내 아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잦은 음주 강요도 아들을 힘들게 했다. 아들은 술을 못 먹는 체질이었다. 하지만 선임들은 매주 3~4회 술자리에 참여하라고 통보했다. 아들은 결국 열 차례 정도 술자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82일 동안 열 차례 술자리에 참여했으니 거의 매주 못 먹는 술을 마셔야 했다.

"아들이 저를 닮아서 술을 못해요. 저는 술 한 번 잘못 먹으면 탈진하고 한 달 동안 설사를 하거든요. 근데 걔가 업무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게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선임들과 어울리기라도 하려고 술자리에 불려간 거죠. 그렇게 되면서 연구강의 준비는 더 못하게 된 거고요."

옛 학원 선생님도 아들과 나눴던 대화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아들 : "사회에서는 사양하거나 조금만 마셔도 됐는데 군에서는 싫다고 해서 마시지 않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 : "그냥 안 마시면 되잖아. 못 마신다고 말하든지."
아들 : "그럼 왕따 당해요. 그래도 다행히 술이 조금씩 늘고 있어요. 근데 술은 정말 싫은데..."

결국 아들은 주특기 연구강의 발표가 있던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생 군인하고 싶다"던 아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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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시선이 자주 닿는 집 곳곳에 아들의 사진이 놓여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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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준엽 하사가 입었던 제복. ⓒ 이희훈


하지만 국방부는 아들의 순직 처리를 거부했다. 아들의 죽음을 "원만하지 못한 가정환경과 복무염증 등의 개인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사망"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사인만 하면 순직 처리를 해주겠다"는 박 중령의 말까지 떠오르며 울분에 휩싸였다.

"우리 집 가난한 거 맞아요. 제가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것도 맞고요. 근데 우리 아들은 그런 상황 때문에 더 군인이 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집안 형편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니요..."

아들은 행정보급관 남 상사와 한 면담에서 "경제적인 문제와 제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고 싶어 부사관 지원을 결심하게 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들이 죽기 두 달 전, 엄마는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나눴던 아들과의 대화가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있다.

"엄마, 나 직업군인 평생 하고 싶어요."

이미 23개 자격증을 갖고 있던 아들은 "그래서 자격증도 더 많이 딸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술은 잘 못 먹지만 그래도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먹으려고 노력할 거예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국방부의 판단은 엄마를 '아들을 죽음으로 내 몬 엄마'라는 죄책감에 휩싸이게 했다. 엄마는 또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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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준엽 하사의 엄마가 아들의 이야기를 하며 흘린 눈물을 닦고 있다. ⓒ 이희훈


"결국 부사관도 내가 가난해서 지원한 건데... 내가 가난해서 아들을 먼저 보내버렸네요. 아들 둘이 장가갈 때 집 한 채씩 해주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그래서 애들 어릴 때 먹는 거 줄이고, 입는 거 줄이고 그랬어요. 그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차라리 월세 살아도 좋은 옷, 좋은 장난감, 맛있는 음식 실컷 사줬어야 했는데..."

한숨을 내쉬던 엄마는 집 앞에 걸린 태극기를 내다봤다.

"군대에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은 국가에서 예우해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래야 군대에 가는 다른 아이들도 자긍심을 갖고 국가에 충성하죠. 지금 이런 상황인데 어느 누가 군대에 가고 싶겠어요? 나 같아도 애국자 하기 싫지..."

엄마의 군대 밖 전쟁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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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군트라우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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