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당한 '재둥이'...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아기고양이를 나무 아래 묻으며

등록 2017.10.16 09:35수정 2017.10.1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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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둥이의 죽음을 모르는 걸까. 재둥이가 하늘로 떠난 15일에도 길고양이 에이미와 흰둥이는 집앞으로 밥을 먹으로 왔다. ⓒ 이재환


죽음에도 무게가 있다면 모든 죽음의 무게는 같을지도 모른다. 죽음 자체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이라는 점에서 보면 특히 더 그렇다. 로드킬 당한 모든 들짐승과 인간의 고독사는 외로운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닮은점도 있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운명을 타고 난다. 어떤 죽음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14일 충남 홍성군 홍북면 이응노의 집에서는 순리필음(박영임 김정민우)의 들-고독사 전시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로드킬을 당한 들짐승들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순리필름 박영임씨는 "외면 받고 설자리를 잃어서 죽는 것은 로드킬로 죽은 동물이나 고독사를 당한 사람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일갈했다. 길에서 죽어간 생명체 앞에서 마냥 담담할 수 있는 인간은 그리 많지가 않다.

순리필름의 전시회가 시작된 바로 그 다음날 공교롭게도 나는 또 하나의 로드킬을 목격했다. 그동안 아침 저녁으로 사료를 나눠 주던 재둥이라는 아기고양의 죽임이다.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오마이뉴스>에도 소개가 되었던 바로 그 고양이다.

재둥이는 죽기 바로 전날까지도 평소처럼 어미 에이미와 흰둥이(형제)를 따라와 사료를 먹고 갔다. 그랬던 재둥이가 15일 새벽, 도로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되었다.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이 재둥이를 텃밭 나무 아래에 묻어 주었다.

유감스럽게도 로드킬은 인간으로부터 혹은 무리로부터 외면당한 동물들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재둥이의 죽음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어서도 아니고, 외면 받고 방치된 탓도 아니다. 단지 인간의 부주의가 그 원인일 뿐이다. 재둥이가 죽은 곳은 민가를 관통하는 도로이다. 이런 도로에서조차 시속 70km 이상으로 질주 하는 자동차들이 종종 목격되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드시 서행해야 할 곳에서 과속을 하고, 야밤에 규정 속도를 어기며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로드킬의 주범이다. 인간이 외면하더라도 동물들은 생태적인 환경만 조성되면 스스로의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동물들은 인간의 부주의까지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고백부터 하자. 귀촌 1년차가 되면서 나 또한 로드킬의 가해자가 될 뻔한 경험이 두 번 있었다. 한번은 충남 홍성군 훙동면에서 홍성으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또한번은 홍성에서 결성으로 가는 언덕길에서였다. 두 번 모두 시야 확보가 어려운 어두운 밤에 일어난 일이다.

운전을 하고 가는 중에 멀리 눈앞에 검은 물체가 아른 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무심코 질주했다면 아마도 나는 사슴 한 마리를 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록 시야기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때 사슴 한 마리의 윤곽이 뚜렷이 보였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서행하자 사슴은 유유히 도로 밖 안전지대로 빠져 나갔다.

결성에 가는 길에 고라니를 만났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멀리 어두운 물체가 보였고, 서행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눈에서 반짝 반짝 빛을 내던 그 동물은 바로 새끼 고라니였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잠시 차를 멈추자. 녀석은 도로를 무사히 빠져 나갔다. 두 번 모두 다행히 시속 50km 미만으로 서행을 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차를 천천히 운행한 것만으로도 두 마리의 생명체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3월 홍성으로 귀촌한 이후 운전 중에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덕분에 나는 급한 일이 아니면 서행 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물론 내차 뒤를 따라 다니는 차들은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듯 보인다. 상향등을 켜고 뒤를 바짝 쫓아오는 차가 있는 가하면, 너무 천천히 달린다고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서행을 한다고 해서 로드킬을 완벽하게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골길에서는 갑자기 길 옆 풀숲에서 길고양이나 강아지가 튀어나와 운전자를 놀라게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내 경험담에서도 보듯이 과속만 하지 않아도 로드킬은 확실히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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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아이가 하늘나라로 떠난 재둥이이다. 비록 짧은 이연이었지만 귀여웠던 재둥이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 이재환


간혹 차도 옆에서 놀거나 차도로 뛰어가는 재둥이를 보면 위험하게 느껴지곤 했다. 재둥이는 겁이 많아 사료를 먹을 때도 경계를 늦추지 않던 아이였다. 지난 15일 새벽, 어느 운전자는 그런 재둥이를 보지 못하고 치고 말았다.

사고 순간, 평소에도 겁이 많던 재둥이가 얼마나 아프고 두려워 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재둥이에게 사료를 나눠 주며 애정을 쏟았던 나와 내 가족들은 슬픔에 잠겼다. 재둥이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미와 흰둥이는 여느 때처럼 밥을 먹으러 집 앞으로 와 있었다.

로드킬은 과속으로인한 부주의가 주된 원인이다. 동물들은 그들만의 속도로 '그들의 길'을 간다. 인간은 동물들의 속도를 상상 이상으로 추월하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인간이 속도를 줄이고 조금만 신경을 써도 상당수의 동물을 살릴 수 있다. 아무리 생각 봐도 로드킬의 원인과 책임은 동물을 배려하지 않는 부주의한 인간에게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재둥이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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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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