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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신태용-김호곤? 불통이 불신을 부른다

17.10.16 10:45최종업데이트17.10.1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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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의 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장이라는 인물들이 국민들의 비난이 무서워 쫓겨다니는 이런 한심한 상황을 대체 언제까지 봐야할까.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만 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사람도 없고 뚜렷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건만 한국축구는 한걸음도 더 전진하지 못하고 여전히 깜깜한 터널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유럽 원정 평가전을 마친 신태용 국가대표팀 감독과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지난 1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함께 귀국했다. 두 사람은 러시아-모로코와의 평가전을 마치고 선수단이 스위스 현지에서 해산된 이후에도 독일과 러시아를 돌며 외국인 코치 면접과 러시아 월드컵 베이스캠프를 위한 사전 답사 일정 등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신 감독과 김위원장은 평소 관례대로 공항에서 취재진과 인터뷰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소동으로 무산됐다.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이하 축사국)을 자청하는 회원들이 신 감독과 김 위원장의 귀국시간에 맞춰 항의 시위를 여는 것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축구회관으로 급하게 인터뷰 장소를 변경했다.

시위에 참여한 팬들은 '한국 축구는 죽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신태용-김호곤의 사퇴와 히딩크 감독의 영입 등을 주장하는 구호를 외쳤다. 최근 대표팀과 축구협회를 바라보는 세간의 험악한 여론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축구협회 관계자들의 대답은 외면과 회피였다.

신 감독과 김 위원장은 오후에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럽 원정에 대한 결산과 앞으로의 월드컵 준비 계획 등을 밝히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주요한 화제는 여전히 지난 평가전에서의 졸전과, 멈추지않고있는 히딩크 복귀 논란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좋지 않은 여론의 분위기를 의식한 듯 다소 위축된 모습이었지만 입장 자체는 결과적으로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본인들의 거취도, 월드컵 준비 계획도 큰 변화없이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갈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평가와 책임은 지금이 아닌 월드컵 본선에서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강조하며 최근 세간의 부정적인 여론에서는 다소 억울한 심경도 내비쳤다.

신 감독은 "지금은 힘들고 인정을 못받을 수 있지만 내년 6월(월드컵 본선)에는 인정받는 대표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경기를 놓고 축구팬들이 실망하신 것은 당연하다. K리그와 상생의 길을 모색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경기력이 떨어져 있는 선수들을 발탁하면서 내용, 조직력 등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앞으로는 말로만 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11월부터 월드컵에 나갈 선수들 위주로 팀을 구성하여 승리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김호곤 위원장 역시 "국민들께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김 위원장은 "결국 경기력 문제다. 축구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 결과보다 월드컵으로 가는 과정인 만큼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저를 비난하더라도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에게는 믿음과 성원을 탁부드린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퇴 주장에 대해서는 "기술위원장으로서 경기력에 대한 책임을 지라면 지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다. 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하여 아직 할 일이 많다"라며 일축했다. 히딩크 감독 논란에 대해서는 여전히 "히딩크 측으로부터 정식으로 제의를 받은 기억이 없다."며 최근 국정감사에 출석한 노제호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과 상반되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히딩크 감독과는 이미 만나서 협의가 잘 끝났다. 이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계속되는게 대표팀에 무슨 보탬이 되겠냐"며 자제를 호소하기도 했다. 

신 감독과 김 위원장 모두 이구동성으로 지나간 일보다는 앞으로의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애써 초점을 맞추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평가전 부진과 히딩크 논란 등에 대한 사과도 물론 형식적으로는 포함되어 있었지만, 사실상 인터뷰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변명과,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대한 서운함이 가득 묻어났다. 하지만 문제는 팬들도 과연 그 정도의 변명으로 지금 한국축구의 위기상황을 충분히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다.

A매치 졸전이든, 히딩크 논란이든 유쾌하지 않은 화제를 자꾸 반복하는 것은 한국축구를 위해 피곤하고 소모적인 일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확실하게 정리하지않고 적당히 넘어가거나 시간에 맡긴다고 알아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정확한 진단과 반성없이는 언젠가 또 같은 실수를 거듭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신 감독과 김 위원장의 태도에는 이미 눈앞에 벌어진 '결과'에 대하여 마지 못한 인정은 있을지 몰라도, '과정'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자숙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들이 왜 출범 4개월밖에 안된 신태용호들의 졸전에 실망하게 됐는지, 히딩크 논란이 어쩌다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됐는지, 그 전후 과정과 국민정서를 지금까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 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현실인식을 가지고 '내년 월드컵 본선까지 기다려주면 알아서 잘할 것이다'라는 막연한 호소만으로는 지금의 여론을 바꾸기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상황을 한국축구의 위기로까지 악화시킨 근본적인 원인은 신태용 감독과 김호곤 위원장의 심각한 '불통'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 감독은 이미 월드컵 최종예선부터 자력으로 일궈내지 못한 본선진출과 졸전에 가까운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비판을 무시하고 부적절한 처신으로 잇달아 구설수에 오르며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먹은 측면이 있다.

김호곤 위원장은 히딩크 논란에 대하여 어설픈 말바꾸기를 하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자 오히려 히딩크 측과 일부 축구팬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감정적이고 무성의한 처신으로 도마에 올랐다. 이러한 신 감독과 김 위원장의 처신은 하나같이 축구팬들에 대한 존중보다는 자신들의 권위나 자존심을 지키는데만 급급한 모습으로 비쳤다.

차라리 팬들 앞에서 어설픈 변명보다는 단 한번이라도 그간의 상황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자신들의 실수를 솔직히 시인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이들이 만일 세간의 비판이나 합리적인 문제제기에 조금만 더 솔직하고 겸허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오늘날 팬들이 이렇게까지 한국축구를 불신하는 상황까지는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신 감독과 김 위원장은 내년 월드컵 본선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축구팬들은 지금 그들이 '월드컵에 나가야하는 자격' 자체를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작 축구팬들이 듣고 싶어하는 진실한 해명은 정몽규 회장을 비롯하여 축구협회의 그 어느 누구도 해주지 않고 있다. 여전히 팬들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는 축구인들의 뻣뻣한 '불통'에 팬들이 싸늘한 '불신'으로 응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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