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치보복은 나로 끝나길"... 변호인 전원 사임

추가 구속에 반발하며 '재판 보이콧'... 국선 선임될 듯

등록 2017.10.16 10:22수정 2017.10.1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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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16일 오전 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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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재판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등의 혐의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 오전 왼쪽 옷깃에 수인번호 '503번'을 달고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첫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53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 사진공동취재단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저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기간 연장을 앞두고 재판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공판 중에 처음으로 입장을 밝힌 그는 이 모든 상황을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이후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전원 사임하겠다고 했다.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66차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 5분께 유영하 변호인의 요청으로 발언 기회를 얻었다. 첫 공판에서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등을 묻는 인정 신문 때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입을 연 순간이었다. 발언 시작 전 정면에 위치한 검사석을 어두운 표정으로 응시하기도 했다.

그는 먼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구속돼 주4회씩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참한 시간들이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사사로운 인연을 위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다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과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심신의 고통을 감내하였다"고 말했다. 미리 준비한 종이를 읽는 듯 시선은 계속 아래로 고정한 채였다.

하지만 이내 목소리 톤이 안정되더니 구속 영장을 청구한 검찰과 이를 발부한 재판부를 강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오늘은 저에 대한 구속기한이 끝나는 날이었으나 재판부는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13일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면서 "검찰이 6개월 동안 수사하고 법원은 다시 6개월 동안 재판을 하였는데 다시 구속수사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앞으로의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이제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차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음은 박 전 대통령의 이날 발언 전문이다.


"구속되어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판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던 공직자와 국가경제를 위해 노력하던 기업인들이 피고인으로 전락한 채 재판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염려해주시는 분들께 송구한 마음으로, 그리고 공정한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으로 담담히 견뎌왔습니다.

사사로운 인연을 위해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다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마음과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심신의 고통을 감내하였습니다. 저는 롯데, SK뿐만 아니라 재임기간 그 누구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습니다. 재판과정에서도 해당 의혹은 사실이 아님이 충분히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저에 대한 구속기한이 끝나는 날이었으나 재판부는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13일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6개월 동안 수사하고, 법원은 다시 6개월 동안 재판을 했는데 다시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변호인들은 물론 저 역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변호인단은 사임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저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차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시는 분들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적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합니다.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길 바랍니다."

변호인 전원 사임...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

이어서 변호인단은 전원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더 이상의 재판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었다. 유영하 변호사는 "개인 능력 한계를 넘어서는 사건이지만 역사적 중요성과 소명의식으로 본 재판에 성실히 임해왔다고 감히 자부한다"면서 "이는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였고, 양심에 따라 재판할 거라고 본 재판부를 무한히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무죄추정과 불구속 재판이라는 형사법 대원칙이 힘없이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저희 변호인들은 본 재판 진행할 재판절차에 관여해야 할 어떤 당위성도 느끼지 못하였고, 피고인을 위한 어떤 변론도 무의미 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되지 않을 것이며 사법 역사상 치욕적인 흑역사로 기억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유 변호사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발언을 잠시 멈추었고, 방청석에서는 여성의 곡소리가 들렸다.

사실상 '재판 보이콧'...지지세력에도 '결과 인정치 말라'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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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법정에 출석한 박근혜-최순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한 가운데, 오른쪽에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앉아 있다. 박 전 대통령 왼쪽은 유영하 변호사, 최순실씨 왼쪽은 이경재 변호사. ⓒ 사진공동취재단


변호인단이 사임계를 제출하면서 박 전 대통령 공판은 국선 변호인을 새로 선임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경우 10만 쪽에 달하는 재판기록을 새로 검토해야 하기에 시간이 상당히 지체될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이날 예상치 못한 피고인의 발언에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의견을 청취했다. 김세윤 판사는 모든 발언을 들은 뒤 "우리 재판부는 어떠한 재판 외적 고려 없이 피고인에 대한 구속사유 심리해 재발부를 결정했다"면서 "변호인이 사퇴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피고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고, 국민에게 실체를 밝히는 규명 작업도 상당히 지체될 수밖에 없다, 사임 여부 다시 신중하게 고려해달라"고 당부했다.

재판은 변호인 측이 예정된 증인 신문을 포기하면서 약 50분 만에 마무리됐다. 피고인이 퇴정할 때는 방청석에서 한 여성이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며 "저를 사형시켜 달라"고 외쳤다.

그동안 공판에서 아무 발언도 없던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재판부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고 변호인들이 전원 사임한 것은 재판부가 검찰이 신청한 추가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하지만 형사 절차대로 국선 변호인이 선임돼 공판 절차가 계속 진행돼 결론이 나겠지만 자신과 변호인들은 그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것으로도 보인다. 또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에게도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기도 하다.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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