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시스템 없는 한국축구, 피파랭킹 추락은 당연하다

[주장] 신태용 감독, '비운의 역사' 반복하지 않으려면

17.10.18 10:50최종업데이트17.10.18 10:50
원고료로 응원
가뜩이나 분위기가 좋지 않은 한국축구에 악재가 겹치고 있다. 최근 한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62위로 추락하며 축구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지난달보다 무려 11계단이 하락한 순위다.

올해 치른 A매치에서 계속 부진했던 것이 순위 하락의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총 8차례 A매치서 1승3무4패에 머물렀다. 지난 월드컵 본선 진출 이후 당시 한국보다 순위가 낮던 러시아(9월 64위), 모로코(9월 56위)에 잇달아 대패하며 랭킹 점수를 상실한 것이 치명타였다.

피파랭킹이 곧 해당 국가의 축구 수준을 모두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문제는 이 랭킹이 바로 2018 러시아월드컵 조 편성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의 순위는 월드컵 본선 출전이 확정된 23개국 중 최하위권인 21위다. 현재 플레이오프를 기다리는 유럽의 남은 8개국도 모두 한국보다 랭킹이 높다. 시드 배정을 좌우하는 1~3그룹에 들어갈 24개국이 사실상 완성된 상황이다.

이로서 한국은 12월 1일 실시되는 2018 러시아월드컵 조 추첨에서 최하위 시드 배정이 사실상 확정됐다. 최약체팀들이 모이는 4그룹에 속하게 된 한국은 본선 별리그에서 1승 제물을 찾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

한국 축구팬들 입장에서 더욱 굴욕적인 것은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심지어 본선 진출에 실패한 중국(57위)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한국 축구가 중국보다 낮은 랭킹을 기록한 것은 지난 1993년 8월 피파 랭킹 산정 이후 처음이다. 중국 언론에서도 한국을 피파랭킹에서 추월한 것을 비중있게 조명하기도 했다. 지난 최종에선 중국 원정에서 사상 첫 패배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던 한국으로서는 또 한 번 이래저래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일 수밖에 없다.

축구팬들은 반응은 엇갈린다. '피파랭킹 집계 방식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신뢰도를 부정하는가 하면, '3그룹이나 4그룹이나 어차피 한국이 월드컵 에서 최약체인 것은 마찬가지'라며 자조 섞인 반응도 있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어쨌든 한국축구가 전략적인 측면에서 피파랭킹 관리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피파랭킹의 중요성이 하루 이틀 거론된 것도 아니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조 편성의 기준이 된다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한두 경기 결과만으로 랭킹이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속성 있게 대표팀 운영을 관리할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이런 피파랭킹 참사를 불러온 근본 원인인 셈이다.

한국의 피파랭킹이 급락하기 시작한 것은 홍명보 전 감독 시절부터다. 2013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약 1년 남겨놓은 시점에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재임 기간 평가전을 포함해 5승 4무 10패. 승률 26.3%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그 여파로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지 얼마 안 된 2014년 11월에는 한국축구의 피파랭킹이 역대 최저인 69위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홍명보에 이어 지휘봉을 물려받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초기에는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을 비롯해 아시아권에서 승승장구하며 다시 순위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지난해 12월에는 37위로 지난 몇 년 사이 가장 좋은 순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권의 약팀들만을 상대했던 초창기가 지나고 최종예선에 접어들며 슈틸리케호는 한계에 봉착했고 피파랭킹도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질된 슈틸리케 감독에 이어 한국대표팀을 지휘하게 된 신태용 감독은 부임 후 이란-우즈베크와의 최종예선 2연전, 러시아-모로코와의 평가전을 합쳐 2무 2패에 그치며 아직까지 첫 승을 거두지 못했다. 이란-우즈베크전은 무득점 무승부라는 졸전에도 불구하고 상대국들의 도움에 힘입어 어부지리로 본선 진출을 확정 지으며 운이 따랐지만, 러시아-모로코전에서는 그야말로 참패를 당하며 밑천을 드러냈다.

아쉬운 점은 평가전의 활용 방식이다. 홍명보 감독의 경우, 이미 전임 최강희 감독이 월드컵 본선을 확정 지은 상황에서 지휘봉을 물려받으며 성적 부담 없이 팀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홍명보호는 1년간 평가전에서 성적은 성적대로 놓치면서 새로운 전술 실험이나 선수 발굴 같은 성과도 미미했다. 결국 월드컵 본선에서는 자신이 익숙한 올림픽팀 출신과 해외파 멤버들에 대해 의존하다가 '의리축구' 논란에 휘말리는 등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쳤다는 평가다.

신태용 감독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짓고 난후, 첫 평가전이었던 유럽 원정에서 해외파 위주의 반쪽짜리 선수단을 꾸리는 '기행'을 저질렀다가 연달아 참패를 당하며 역풍을 맞았다. 신 감독은 K리그 배려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피파랭킹과 10월 평가전이 내년 월드컵에 미칠 중요성을 간과한 무리수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명보와 신태용 모두 A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시점에 지도자로서 월드컵 같은 최고 수준의 메이저대회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다보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성급한 결정과 판단 착오가 많았을 것이라는 진단도 존재한다.

더 큰 문제는 감독이 다소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 주변에서 이를 견제하거나 합리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마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홍명보호에서 슈틸리케호, 그리고 신태용호를 거치며 지난 몇 년간 기술위원회는 사실상 감독의 등 뒤에 숨어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는 혹평을 받았다.

또한 한국축구의 수장으로서 중심을 잡고 각종 공과에 책임을 져야할 정몽규 회장은 대표팀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앞장서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대표팀이 좋지 않은 성과를 낼 때도 누가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무언가 대국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쓴소리도 없다 보니 한국축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신태용 감독과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내년 6월 월드컵 본선까지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평가전 결과나 피파랭킹으로 대표팀을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재미있게도 히딩크나 홍명보 전 감독도 같은 이야기를 한 바 있다. 하지만 히딩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반면, 홍명보는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역시나'로 끝났다.

모든 일에 과정 없는 결과란 존재하지 않는다. 히딩크는 평가전에서 강팀에 대패할 때도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설득시키면서 팀이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다. 그에 비하여 홍명보나 신태용 감독은 '과정'에서 아무런 설득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내년 6월이 되면 달라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사항만 반복하고 있다는 게 차이다.

신태용 감독이 내년 월드컵에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곤란하다. 한국축구가 왜 월드컵에 나가야하는지, 나가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어떻게 세계축구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인지 분명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번의 피파랭킹 추락이나 4그룹 배정 같은 악재는, 내년 러시아월드컵의 또 다른 참사를 예고하는 복선에 불과할 수도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