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원' 받고 박근혜 재판 맡게 되는 국선변호사

박 전 대통령의 재판 보이콧, 국민들이 '국선변호인' 조력받을 권리 침해하는 셈

등록 2017.10.18 16:02수정 2017.10.1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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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국선변호사는 법원으로부터 공소장과 국선변호인 선임서를 받으면 가장 먼저 피고인의 상태를 확인한다. 솔직히 구속된 상태라면 약간의 한숨이 나온다. 접견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불구속 사건에 비해 내용이 복잡할 가능성도 크다. 피고인을 만나보기 전에 검찰에 가서 사건기록을 복사해야 한다.

근래에는 스캔이 가능해져 휴대용 스캐너를 이용해 사건기록을 스캔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복사기만 이용할 수 있어 두꺼운 사건자료를 들고 일일이 복사해야 했다. 그것도 기록을 복사하려는 이들이 많으면 먼저 온 사람의 복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복사가 끝나면 기록 중 개인 자료를 일일이 찾아서 삭제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화번호나 주소,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 다양한 개인정보들을 일일이 칼로 잘라내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이 소요된다. 이렇게 확보한 사건자료를 일일이 검토하고 피고인을 만난다.

국선변호사의 어려움, '돈'과 '신뢰'

구속사건은 사전에 접견신청을 하고 시간에 맞춰 구치소를 방문해야 한다. 입구에 소지품을 맡기고 접견실에 가면 피고인이 나온다. 피고인과 이런저런 사건 이야기를 하고 가장 처음 확인하는 것은 범죄를 자백하는지 여부다. 흔히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무죄를 주장하는 형사사건 1건을 맡느니 민사사건 10건을 맡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무죄를 주장하는 형사사건에는 품이 많이 들어간다.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검사가 제출한 주요 증거를 부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술자 등 증거와 관련된 이들에 대한 증인신문절차를 거쳐야 한다. 인원이 많거나 증인신문절차가 지연될 경우 재판이 한없이 늦어지고는 한다. 간혹 현장검증까지 필요하다면 속절없이 하루를 빼먹고 판사, 검사, 피고인 그리고 법원 직원들과 현장에 다녀와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이 끝나면 국선변호인은 사건을 다시 꼼꼼히 복기해야 한다. 변호사 보수증액신청을 위해서다. 사안이 복잡할 경우 보수는 약간 증액된다. 사건자료가 500장이 넘으면 약간, 공판기일 출석이 2회를 초과하면 30% 이내, 피고인 접견횟수가 1회를 초과하면 30% 이내 등, 이러한 식이다. 국선변호사는 한 사건 당 약 30만 원의 보수를 받는데 소소한 증액 사유를 모아 신청하면 많게는 50만 원 정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국선변호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정작 사건의 난이도, 고된 노동, 낮은 보수가 아니다. 피고인과의 신뢰다. 류승완 감독의 2010년작 <부당거래>에는 불량 국선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에게 "그러면 국선 아니면 내가 정신 나갔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 변호하게. 제가 국선변호하면 얼마 받는 줄 아세요? 30만 원 받아요, 30만 원. 그럴 일 없으면 돈 많이 주고 좋은 변호사 선임하세요"라며 되레 화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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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당거래>중 한 장면. 극중 국선변호사 역을 맡은 황병국 감독 ⓒ 필름트레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국민들에게 국선변호사의 이미지는 <부당거래>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그리고 국선변호인을 선정받는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국선변호인을 선임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국선변호인과 피고인 간 의견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피고인들은 "30만 원 받고 하는 사건이라 이런 식이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이렇듯 변호사에게 신뢰관계가 깨진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변호사 업무 중 어렵지 않은 일은 없겠지만 이처럼 국선변호 업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만한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선변호사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국선변호에 임한다. 역설적이게도 사명감이 없다면 30만 원의 보수를 받고 국선변호사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명감을 가지고 변호에 임한다 해도 국선변호사도 사람임은 어쩔 수 없다.

사건이 너무나도 복잡하고 피고인이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다면 짜증이 나거나 변호를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국선변호사들이 기피하고 싶어할 만한 사건이 터져버렸다. 이제 '국선변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인 박근혜'를 변호해야 할지도 모른다.

박근혜 재판, 국선변호사가 싫어하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유영하 변호사를 비롯한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7명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 출석해 사임계를 제출했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구속 상태거나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등의 사건을 '필요적 국선사건'으로 분류해 반드시 국선변호사를 선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백억 원대의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필요적 국선사건에 해당한다. 변호인들이 전원 사임한 박 전 대통령은 현재 담당 변호사가 없는 상태다. 사선 변호사를 다시 선임하지 않는다면 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주어야 한다.

국선변호사는 법원이 관할 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중 국선변호인으로 등록된 변호사 중에서 임의로 선정한다. 대부분 법원 실무관이 각 변호사에게 골고루 분배될 수 있도록 배정한다. 그런데 과연 이 복잡하고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린 사건을 누구에게 배정해야 할까? 국선변호인 배정단계부터 법원의 고민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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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사건을 배정받은 변호사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국선변호사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모든 유형을 갖췄다. 수사기록만 10만 쪽이 넘는다. A4용지 40박스가 넘는 분량이다. 피고인은 혐의를 부인한다. 다투어야 하는 증거가 하나둘이 아니고 신문해야 하는 증인도 많을 것이다. 특히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국선변호사로서는 난감한 사건일 테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배정받은 국선변호사는 "그러면 국선 아니면 내가 정신 나갔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 변호하게. 제가 국선변호하면 얼마 받는 줄 아세요? 30만 원 받아요, 30만 원. 그럴 일 없으면 돈 많이 주고 좋은 변호사 선임하세요"라는 부당거래의 대사가 턱밑까지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책상 한편에는 법원으로부터 받은 감사패가 있다. 감사패에는 "귀하는 국선변호인으로서 뛰어난 인권의식과 남다른 사명감으로 국선변호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국선변호제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므로 이에 감사패를 드립니다"고 쓰여 있다. 국선변호인으로 감사패까지 받았지만 필자 역시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은 배정받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국민들이 제공 받아야 할 국선변호인 빼앗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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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재판부에 사임계를 제출한 유영하 변호사 ⓒ 유성호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국선변호사로서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을 담당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전직 대통령이 가진 사법부와 국선변호인제도에 대한 태도다. 재판이 마무리되어 가는 단계에서 변호인이 전원 사퇴한 것은 재판에 대한 일종의 보이콧이고 사법부에 대한 압박이다.

피고인에게는 무죄를 주장하거나 형량을 낮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자가 사법부에 보이는 태도로써는 부적절하겠지만 재판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사임도 일종의 재판전략으로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고, 국선변호인을 배정받겠다는 박 전 대통령의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반 국민들이 불구속 상태거나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지 않는 사건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정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야 하는 필요성을 모두 소명해야 한다. 국선변호인 제도에 배정된 예산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국선변호사는 한 건당 30만 원 밖에 받지 못하지만 국선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사건이 워낙 많아 소요되는 예산은 상당하다.

하지만 예산은 항상 턱없이 부족하다. 2015년에는 국선변호사 보수가 체불되어 문제가 되기까지 했었다. 때문에 형량이 낮은 사건 중에는 변호인의 조력을 전혀 받지 못하고 피고인 혼자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헌법 제12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선변호인 제도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인 변호인 조력권을 실현하는, 국가로서는 반드시 보장해야 할, 국민으로서는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하지만 국선변호사 제도의 현실은 국선변호사들의 헌신과 국민들의 희생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골 촌놈과 다방 아가씨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 <너는 내 운명>에는 힘없는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사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고의로 에이즈(AIDS)를 전염시켰다는 혐의로 구속된 전은하(전도연 분)는 무릎을 꿇은 채 국선변호사의 다리를 부여잡고 "변호사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정말 몰랐어요. 저 그렇게 나쁜 년 아니에요"라며 애원한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국선변호사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으로 부여잡는 희망의 끈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국선변호사들은 지금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는 사명으로 재판에 임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탄핵심판에서 호화변호인단을 꾸려 재판을 지연시키고 재판부에게 막말을 하는 등 사법부와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당시에도 변호인단은 모두 사임하겠다며 재판부에 으름장을 놓은 바 있었다. 그런데 이번 형사재판에서는 변호인단 총사임을 실행해 버렸다. 변호인단이 사임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담당변호사가 없는 피고인 박근혜에게는 국선변호사가 배정될 것이다.

국선변호인은 사건당 한 명씩 배정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사건은 난이도나 민감성으로 볼 때 한 명의 변호인으로는 진행이 불가능하다. 다수의 변호인이 선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만큼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아야 할 다른 국민들의 권리는 침해될 것이다.

변호인단을 이끌었던 유영하 변호사는 사임계를 제출하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선변호사 제도를 하나의 재판전술로 사용하고자 하는 피고인 박근혜를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선변호를 수행했던 변호사로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는 말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박근혜 #유영하 #국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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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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