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초'의 찰나, 당신의 돈이 사라진다

[책 속의 금융읽기] 마이클 루이스의 <플래시 보이스>

등록 2017.10.23 08:56수정 2017.10.2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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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월스트리트만큼 탐욕이 긍정되는 장소를 찾기도 쉽지 않다. 비단 영화 <월스트리트> 속 고든 게코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월가(街)발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았고, 그 당시 목격했던 다수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와 부정직한 모습들을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탐욕이 긍정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를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이다. 따라서 그 믿음이 깨진 2008년의 파국 이후 미국 정치권은 적극적으로 금융 시장에 대한 규제에 나서기 시작하였고 도드 프랭크 법안과 볼커 룰 등을 도입하였다. 더 이상 'Greed is good'이라는 게코의 말은 통용되지 않을 것 처럼 보였다.

<플래시 보이스>는 그런 믿음, 혹은 기대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보여주며 미국 사회에 충격을 안겨다 준 책이다.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는 그의 글 이전까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있던 미국 금융시장의 거대한 그림자에 주목한다.

이른바 '초단타매매꾼'이라 불리는 세력이다. 루이스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미국 금융시장을 교란 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얼마나 많은 금융 소비자들의 돈이 그들에게 '약탈' 당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정치권의 규제에서 완벽히 벗어나 있던 새로운 '탐욕'의 실체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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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보이스>, 마이클 루이스, 2014 ⓒ 비즈니스북스

'단타'라는 용어 자체는 한국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컴퓨터 화면에 매매 프로그램과 차트들을 띄워둔 채 증권의 매매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들의 모습은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한다. 단기거래를 여러차례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참여자들이다. 그렇다면 루이스가 고발하고 있는 존재도 이런 사람들일까.

본질은 같다. 차별점은 시간의 단위와 기술에 있다. '초단타매매'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플래시 보이스>에 등장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전광석화(FLASH)처럼 거래한다. 거래의 단위가 '분'은 커녕 '초'를 넘어 '밀리 세컨드'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 개념은 인간의 능력 밖에 있다. 그렇기에 초단타매매꾼들은 늘 거래를 위해 프로그램들을 사용한다. 사람들이 가격의 변화를 인식하기도 전에 전산화된 숫자의 변화를 인식한 프로그램들이 매매를 대행해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매매방식을 사용하는 것일까. 저자는 '시장의 조작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초단타매매꾼들의 목적은 '선행매매'에 있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남들이 사기로 결심한 주식을 한발 앞서 구매한 뒤, 거기에 추가적인 금액을 붙여 되팔아 이득을 취한다. 그러한 과정이 '밀리 세컨드'의 단위에서 무수히 많이 이루어지고, 초단타매매꾼들은 천문학적 이윤을 아무런 리스크 없이 획득할 수 있었다.

단,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이 무슨 주식을 거래할 것인지 어떻게 먼저 알 수 있을까에 대한 답과 그걸 알게 되었을 때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먼저 그 주식을 선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책에는 초단타매매꾼들이 불법적인 방식을 동원한 사례도 나온다. 증권사와 거래소로 들어오는 여러 금융 소비자들의 '주문 정보'들을 '다크풀'이라 불리는 시스템을 활용하여 중간에서 빼돌리고 자신들의 거래에 가장 먼저 그 정보들을 활용한 것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과정에 참여한 주체들 중 많은 이들이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돈을 믿고 맏겼던 소비자들이 실제로는 가만히 앉아서 월스트리트에게 돈을 약탈당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플래시 보이스>가 출간된지도 약 4년이 지났다. 위의 사실들이 밝혀지고 미국 사회에는 상다한 충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그 뒤로 4년간 금융 기술은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발전하였으나, 여전히 미국 정부의 대처는 미비하다. 대중의 경각심도 마찬가지로 한참 부족하다. 기존의 금융 범죄들과 다르게, 다양한 기술과 새로운 개념이 동원된 <플래시 보이스> 속 금융 범죄는 이해하기도 주의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급속한 기술 변혁의 시기가 도래하였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을 그 어느때 보다 금융의 영역을 확실하게 바꾸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원을 위시한 규제 기관들도 이에 촉각을 바로세워야 한다. 소비자의 소중한 자산이 찰나에 약탈당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말이다.

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제용 옮김, 곽수종 감수,
비즈니스북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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