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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지났지만... 남겨진 난제, 데커드는 진짜 인간일까?

[오늘날의 영화읽기] <블레이드 러너 2049>, SF영화가 예언한 미래를 사는 우리

17.10.23 11:03최종업데이트18.10.0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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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릴 때 만났던 작품들에서 그린 '미래'를 만날 때가 있다. 영화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의 1999년이 그랬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2001년에는 우리가 왜 아직 목성에 가지 못했는지 궁금했다. <빽 투 더 퓨처>(1987)가 예언했던 2015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시간 여행은 어디로 간 것인지 의아했다. 과거의 어느 날 예언됐던 미래는 점점 우리에게 다가왔고 '예언된 미래'와 '다가온 오늘'의 차이를 발견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겪어내는 중이다. <블레이드 러너>(1982) 1편이 예언했던 2019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두려움은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로 인해 다시 되새겨졌다.
 
'인간의 세상, 이제 30년 남은 거야?'
 
<매트릭스>(1999)에 영감을 주었다는 영화<공각기동대>(1995)에는 '뇌'를 제외한 모든 인체가 기계인 사람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너에겐 고스트가 있으니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결국 그녀를 안심시켰던 '고스트'는 인간 전체를 공격할 뿐 아니라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사라진다. 영화는 당시만 해도 허황된 미래로만 느껴졌다. 기술적인 진보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에게, 오늘 다시 SF 역사상 가장 의견이 분분한 질문이 던져진다.

데커드는 인간일까, '레플리컨트'일까?
  

영화 <블레이드 러너2049> 스틸 컷. ⓒ 소니 픽처스

 
<블레이드 러너>(1982)가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그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의 정체성은 꾸준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데커드와 함께 <블레이드 러너>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라는 필립 K. 딕의 소설이 창조해 낸 2019년의 인류는 우리의 미래를 증명해 낼 또 다른 30년을 유예하며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필립 K. 딕이 묘사한 세상을 눈앞에 그려낸 '창조주' 리들리 스콧은 모호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기로 유명한(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감독 드니 빌뇌브를 속편의 창조주로 선택한다. 여기에 <카우보이 비밥>(1998)을 만든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2022년 대정전 에피소드까지 같이 준비한 것을 보면 거장이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창조주들의 향연은 오랜 세월의 기다림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의 벅찬 순간이었다.
 
그러나 절망이다. 30년을 끈기 있게 기다렸지만 속편이 나왔음에도 '데커드'의 정체에 관해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2049년의 지구엔 2019년부터 한 번도 그친 적이 없는 것처럼 비가 내린다. 인류의 꿈은 '오프 월드'로 불리는 새로운 식민지로 떠나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구는 '떠나야 할 대상'이며 '레플리컨트'라고 불리는 인간형 로봇과의 끝나지 않은 전쟁만이 가득한 공간일 뿐이다. 게다가 30년의 세월은 그 전쟁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레플리컨트,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영화 <블레이드 러너2049> 스틸 컷. ⓒ 소니 픽처스

 
지난주 '알파고-제로'라고 불리는 진화된 알파고가 등장했다. '알파고-제로'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보를 학습하지 않고 스스로 터득한 규칙만으로 그동안 최고의 바둑고수들을 모두 물리치며 인류를 절망하게 만들었던 알파고 선배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인간의 가르침 따위는 필요 없다는 알파고-제로를 보며, 세상에 등장한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의 놀라운 진화에 두려움이 커졌다. 아직 '그들'에게 레플리컨트의 몸을 부여하는 것은 완성된 기술이라고 보이지 않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의 일을 기계가 대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동의가 끝난 모양이다.

끝없이 비가 내리고 인간에게 버림받아 황폐해진 지구의 미래가 우리의 것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은 불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미래가 인류에게 '인간다움'을 묻는 동안 우리는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진보된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에 동의하기 전에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미래의 모습을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가 기계와 역할을 교환하는 동안 기계가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까지 가져가 버렸을까 두렵다. 영화에서 만난 기계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속편에서도 데커드로 등장하는 해리슨 포드를 만나는 순간은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훨씬 더 복잡해진 질문도, 인류에게 버림받은 지구에 대한 연민도, 과연 '인간'은 존재하는 세상인지에 대한 모호함 등으로 계속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 순간만은 화면을 향해 만세를 외칠 만큼 행복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미래학자라는 사람들이 종종 언급하는 이 말은 '예측 불확실성'에 대한 책임회피로 보여서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래는 분명 '현재의 결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테니 우리의 '현재'가 내리는 결정에 대해 진지해 질 필요는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 및 사회의 전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불확실하지만 '인간다움'에 대한 인간의 고민을 기계가 대신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제 곧 2019년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그런데, 데커드는 진짜 인간일까?
오늘날의 영화읽기 블레이드 러너 2049 데커드 레플리컨트 드니 빌뇌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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