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반대' 강서구민들께... "막연한 거부를 거둬주세요"

[공개 편지] 강서구민이 강서구민에 보내는 편지

등록 2017.10.23 15:48수정 2017.10.2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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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민 강구섭씨가 <오마이뉴스>에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와 관련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강서구민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성원 모두 읽어볼만한 편지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구해 이 편지를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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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에 찬성하는 장애인 학부모 50여 명이 무릎을 꿇었다.(위) 그러지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이 지역 주민 10여 명이 맞 무릎을 꿇었다. ⓒ 윤근혁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서울 강서구 주민분들께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언론을 통해 봤습니다.

'인근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생겨, 재산권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동산을 통한 재산증식이 국민적 관심사인,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든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저 또한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 계약이 조만간 만료되면 반월세로 바꾸자는 집주인의 연락을 받은 후 한숨을 쉬고 있는 강서구민이기에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강서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해 해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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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어있는 이 시대의 절망을 깨자, 장애인차별 철폐하라! ⓒ 최인기


오래전 국가인권위원회의 고위직으로 있던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나라 장애인의 권리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몸에 쇠사슬을 감고 피흘려 가며 이룩한 것이다. 그 전까지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해 해준 것은 없다."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름을 차이로 생각하기보다 우열의 기준으로 치부해 버리는 분위기가 여전히 적지 않은, 그래서 비장애인도 살기 힘든 우리 나라에서, 하물며 장애를 가진 구성원으로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장애인을 보면 측은지심을 느끼며 어떻게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의 손길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장애인들이 작은 희망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평생을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그들의 가족이 조금이나마 수고를 덜 수 있도록,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는 것이 비장애인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언제 원치 않게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막연한 거부감과 불안을 거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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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에서 설립 반대 쪽 주민들이 특수 학교 설립을 주장하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 신지수


우리가 살고 있는 강서구에는 오래전부터 다수의 북한이탈주민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이주배경여성 등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하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지역 구성원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러분도, 저 또한 예외 없이 나이가 들어 사회적 약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의 손을 잡아줄 때, 여러분께서 훗날 사회적 약자가 됐을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 지역을 만드는 데 마음을 모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장애인 특수학교가 설립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하고 훌륭한 여건이 마련될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민들과 사회적 소수자가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지역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음 한켠에 가지고 계신 막연한 거부감과 불안을 거두시고,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함께해주시길 강서구민의 한 사람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서울시 강서구민 강구섭 드림.
#강서구 #특수학교 #장애인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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