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친구였다

2017오마이뉴스 글로벌 행복포럼 <행복교육의 미래를 말하다>에 다녀와서

등록 2017.10.30 09:33수정 2017.10.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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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고등학생 온다고 했는데 한 명도 안 왔잖아.'

유유히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2017 오마이뉴스 글로벌 행복교육포럼' 강연 장소에 들어서기 직전, 먼저 들어가는 몇몇의 덴마크 학생들을 보고 한 말이다. 그래, 나는 알고 있었다. 이들이 우리와는 상당히 많이 정말로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지난 26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이 행사엔 덴마크 코펜하겐 류슨스틴 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했다. 그리고 덴마크 교육에 관심 있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도 전국 각지에서 300여 명이나 왔다. 난 그 중 하나였다.

뭐, 뭐가 있겠나. 그래, 키가 클 거다. 북유럽권 아이들이니까, 바이킹의 후손들이니까 키가 많이 클 거다. 그래, 영어 잘할 거다. 아무리 자국 언어가 있다고 해도 서양 애들은 영어 많이 쓰니까 영어 많이 잘할 거다. 뭐, 또 뭐가 있겠나. 아 그래, 우리보다 더 개방적일 거다. 우리가 보수적인 건지 저들이 개방적인 건지 지금 논할 바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좀 더 적극적일 거다.

그렇다. 난 다 알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마음의 대비는 모두 해놓고 있었고 때에 따른 적절한 반응, 대처도 모두 생각해 놓았었다. 근데 오 마이 갓, 잇 이즈 토틀리 디프런트! 여긴 완전히 딴판이었다.

내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건 딱 하나였다. 내가 그렇게 많은 외국인들과 함께할 기회가 여태 없었다는 것.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긴장할 줄은 몰랐던 거다. 아 맞다. 나 낯 많이 가리지.

'이거 아무래도 고등학생 보낸다고 해놓고 우리 기죽이려고 성인들 보낸 것 같은데? 야 쟤네 봐봐. 어딜 봐서 고등학생이야...'

긴장한 탓인지 홀로 아무말대잔치를 하고 있던 나는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독려했다. 뭐 좀 이상한 방법이긴 하지만 내 상황을 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동시에 나마저 패닉에 빠진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침울하게 바뀔 것 같아 의무감으로 꿋꿋하게 서 있었다.


아니 그도 그럴 것이 유일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권진이와 하늘이가 갑자기 아픈 게 아닌가. 나 혼자 남은 거였다. 나는 모든 상황에서 동작은 더 크게, 소리는 더 소란스럽게 하여 나의 전신으로 '나는 절대 긴장하지 않았다아아아!!!!!!'를 고래고래 소리쳤다. 근데 본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다. 내 눈동자는 정신없이 동요하고 있었다.

한 번 동요하니 별 것이 다 눈에 들어왔다. 왜 저렇게 뒤에 앉은 학생과 대화를 하는지,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면서 짝다리를 짚는 건지, 강의를 하는데 왜 한 손은 바지주머니에 꽂아 넣고 있는 건지, 선생님한테 왜 '헤이'라고 하는 건지, 그리고 이봐 젊은이, 어른이 뭘 주실 때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 거라네.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쓰여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내 머릿속엔 오직 '달라달라달라'가 증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토론도 들어가기 전 내 마음은 저기 어디 20만 광년쯤 떨어진 소마젤란은하 정도에 가 있었다. 더는 빠져나올 수도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였다.

'오 나 축구 좋아해요.'

하필 조에 남자라곤 유일하게 나밖에 없는지라 미리 준비한 축구 이야기라든지 록 밴드 이야기라든지 다 접어놓고 있었던 중에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래 축구 좋아한다잖아, 덴마크 사람이니까 자국 사람은 잘 알겠지 싶어서 물었다.

'디드 유 세이 댓 유 라이크 사카?'

'예쓰'

'오 댄, 두 유 노우 크리스티안 에릭센?'

'오 예쓰! 유 투!?'

그 아이도 꽤나 놀란 눈치다. 설마 에릭센을 알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괜찮아, 나도 놀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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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아직 긴장이 다 안 풀린 탓인지 머릿속은 텅텅.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에릭센은 덴마크 출신 축구선수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라는 팀에서 손흥민과 함께 뛰고 있다. 아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흥민을 좋아한 적이 없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열렬한 팬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토트넘 홋스퍼도.

'예쓰! 위 얼 올레디 프렌즈! 예아!'

게다가 손 그리고 에릭센, 둘은 친구란다. 나랑 얘도 친구였다. 이런 우연이. 아으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 둥근 공 안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국적도 뭣도 다 필요 없다. 축구는 만인의 공통분모이며 우리를 하나로 모이게 하는구나. 지구도 그렇지 않던가. 우리는 공과 같이 둥근 지구에서 함께 살고 있는 지구촌 이웃이다. 오냐 그래, 우리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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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댑(DAP)이라는 포즈. 이렇게 간결한 동작으로 하나가 되는 건 덤이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이 보잘 것 없는 기회로, 토론 주제와는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로 나는 드디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상한 거리감을 혼자 만들어냈던 구름은 걷히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를 게 뭐가 있겠나. 다른 나라에 태어나서 조금 다른 교육을 받고, 조금 다른 문화권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왔을 뿐인데. 우린 이렇게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똑같은데. 중요한 건 무엇이 다르냐가 아니라, 그 다름을 넘어서 이렇게 열심히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말을 더듬거릴 때마다 도와주려 애쓰는 모습이 우리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다.

나 분명히 행복교육포럼에 다녀왔는데 기억에 남는 건 역시나 그 '크리스티안 에릭센'뿐이다. 아니 뭐 다른 것도 기억 나는 건 많이 있는데...모르겠다. 내 가슴이 이걸로 글을 쓰지 않으면 오늘 밤 잠에 들지 못할 거라고 한다. 그냥 그 마음 하나 통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언제든지 함께 뜻을 모아갈 수 있는 한 지구촌의 존재들이라는 그 단순한 기쁨을 다시 깨우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충분한 마음을 가득 담아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외치고 싶다.

예스, 위 아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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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귀중한 기회를 만들어 주신 오연호 대표님과 한 컷!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덧붙이는 글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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