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아이에게

[다다와 함께 읽는 그림책] 최숙희 작가 <열두 달 나무 아이>

등록 2017.12.12 15:57수정 2017.12.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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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애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음...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일곱 살 둘째 윤이는 표현이 서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아직 어려워한다. 대답이 짧을 때가 많다.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그날 이후 퇴근해서 돌아오면 윤이 눈치부터 살폈다. 말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린이집에서 오늘 기분은 어땠어?"라고 물어도 대답은 늘 비슷했다. "별로였어"거나 "기분이 좋지 않았어"거나 "귤(가명) 때문에 울었어"라거나. 왜 그랬는지 따져 묻진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기분도 좋지 않아서.


'안 되겠다. 내일은 어린이집에 전화를 좀 해봐야지' 생각만 할 뿐 출근만 하면 집안일은 까맣게 잊는다. 어느새 시간을 보면 점심시간이고, 퇴근 시간이다. 14년 차 직장인 나이 마흔. 머릿속에 회사 일 넣고 다니기도 벅찬 나이다. 퇴근 후 지하철에서 몇 분간의 멍을 때리고 나서야 '아, 어린이집에 전화를 못했네' 하는 날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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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나무 아이> 최숙희 그림책 ⓒ 책읽는곰

그런 즈음 최숙희 작가의 새 그림책 <열두 달 나무 아이>를 읽게 됐다. 알록달록한 한 그루의 나무 위에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으로 서 있거나, 매달려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책장을 편다.

'1월에 태어난 너는
동백나무 아이,
힘찬 날갯짓으로
새날을 여는 아이.'

저자가 엄선해 가려 뽑은 12그루의 나무와 그에 어울리는 품성을 가진 12명의 아이를 소개하는 책이 바로 <열두 달 나무 아이>다.

이 책의 출판사 책 읽는 곰 최현정 편집자에 따르면 "모든 달에 2~4종류의 나무 후보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서 달마다 서로 다른 좋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나무, 꽃, 열매, 나무줄기 등 이미지 면에서 개성이 강한 나무 등을 고르고 또 골랐다"라고. 여기에 "아이의 성별, 성품 등과 나무를 매치시키면서 넣고 빼고를 반복했다"라고 귀띔한다. 함께 책을 보던 아이들은 제가 태어난 달의 나무 먼저 살펴보자고 난리다. 다행히 우리 두 딸들은 모두 8월생.


'8월에 태어난 너는
배롱나무 아이,
한여름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아이.'

오호라. 어찌 알았지? 아무것도 안 해도 예쁜 둘째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면 예쁠 막무가내 둘째 윤이가 제일 예쁠 때가 바로 '한여름 햇살처럼 환하게' 웃을 때라는 걸? 윤이는 웃을 때 반달눈이 되는 게 너무 매력적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어쩜 이렇게 설명이 딱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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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나무 아이 ⓒ 책읽는곰


우리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1월 동백나무 아이는 새날을 여는 아이고, 2월 매화나무 아이는 햇살 같은 아이라니. 우리 나무들에 맞게 아이들의 성품을 연결하는 센스가 돋보인다. "맞네, 맞네" 공감하며 3월, 4월, 5월 등나무 아이까지 읽었을 때 아이에게 물었다.

"윤아, 너 울게 했다는 귤이 생일이 5월이지? 5월에 태어난 아이는 등나무 아이래. 누구에게나 먼저 손 내미는 다정한 아이. 그런 아이가 윤이한테 왜 그랬을까?"
"몰라. 그런데 귤(가명)도 사과(가명)도 배(가명)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나랑 안 놀아."
"아냐. 네가 싫어서가 아닐 거야.  여기 보니, 10월에 태어난 사과는 참나무 아이네. 더불어 나누는 속 싶은 아이. 귤도 사과도 이렇게 다정하고 속 깊은 아이들인데, 너를 싫어할 리가 없어. 엄마 생각에는 서로 오해가 생긴 거 같아. 혹시 전처럼 애들이 놀이하자고 해도, 네가 싫다고 한 건 아냐?"

애들 싸우고 다투는 거야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싸웠던 애들이 맞나 싶을 만큼 "하하호호" 하고 노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도 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면 되는데, 이번에는 며칠이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어서인지 속상한 마음이 좀체 가시실 않는다. 특히 귤, 사과, 배는 어린이집에서 윤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들이고, 그중에서도 귤은 윤이가 더 특별하게 생각하는 아이라 더 신경이 쓰였다. 조금 생각하던 윤이가 말을 이었다.  

"귤은 안 그래. 나한테 먼저 손 내밀어 주지 않아."
"그래? 그래도 뭐... 괜찮아. 여기 봐봐. 12월에 태어난 엄마는 '언제나 흔들림 없이 꿋꿋한 아이'래. 윤이 네가 아무래도 엄마는 윤이가 좋아. 윤이를 사랑해. 그러니 속상한 일 생기면 언제든 이렇게 말해줘."

다행이다. 내가 '소나무 같은 아이'라서. 책에 나오는 대로 정말 소나무 같은 아이, 소나무 같은 엄마였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가 그걸 다 대신해줄 수도 없고, 해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언제나 너희들 편에 있다는 마음은 알게 해주고 싶다. 믿고 기댈 사람은 가족뿐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 소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꿋꿋한 엄마이고 싶다. 책 내용 대로라면 6월 느티나무여도 좋겠다. 넉넉한 그늘을 내어주는 품 넓은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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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나무 아이> ⓒ 책읽는곰


엄마와 아이들의 탄생 나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책 <열두 달 나무 아이>는 어찌 보면 최 작가의 이전 작품 <너는 기적이야>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최현정 편집자는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 주기를, 자신만의 꿈을 소중히 여기고 그 꿈을 키워 가기를... 결국은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서 들려준다고 볼 수 있을 거 같다"라고 말했다.

윤이는 이 책을 통해 알려주지 않으면 모를 친구들의 탄생 나무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가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는 걸 윤이도 알까. 책에 나오는 대로 '다정하고 속 깊은 아이들'과 윤이가 '환하게 웃는' 날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열두 달 나무 아이

최숙희 글.그림,
책읽는곰, 2017


#최숙희 #나무자리 #생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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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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