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을 둘러싼 '거짓말'... 하얼빈에서 본 진실

의정부시에 있는 안중근 '쌍둥이 동상'이 하얼빈에도? 취재 뒷이야기를 공개한다

등록 2017.11.03 16:12수정 2017.11.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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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공항 10월의 하얼빈의 기온은 아직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 구진영


10월 말의 중국 하얼빈은 춥지 않았다. 10월 25일 오후 10시 즈음, 하얼빈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러 이동하는데 코드를 입지 않아도 될 만큼 선선했다. 하얼빈하면 막연히 추울 거라 예상했던 내가 우습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하얼빈이 10월 말에도 영하의 강추위일 거라 생각했던 것은 1909년 10월 26일에 찍힌 흑백사진 때문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자신의 운명을 전혀 모르는 듯 하얼빈역에 내려 모자를 살짝 들어올린 그 사진 속에 두꺼운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그래서 막연히 추울 것이라 생각했던 게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고 난 뒤, 108년이 지났다. 108년 전 그날을 생각하며 하얼빈역을 찾게된 이유는 엉뚱하게도 안중근 의사 동상을 둘러싼 거짓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경기도 의정부시는 그동안 의정부역 근린공원에 설치한 안중근 동상을 두고 '2014년 한중정상회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하얼빈역에 표지석 설치를 제안한 데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안중근 기념관과 동상을 제작 지시해 설치했다'고 홍보해왔다. 또, 중국 민간단체인 차하얼학회에서 쌍둥이 동상을 만들어 하나는 의정부시에 기증하고 하나는 하얼빈역에 설치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계획'조차 없는 하얼빈역 안중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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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 북부광장 조감도 의정부에 설치된 안중근 동상과 똑같은 쌍둥이 동상이 들어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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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 남부광장 조감도 의정부에 설치된 안중근 동상과 똑같은 쌍둥이 동상이 들어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하얼빈의 상징인 눈꽃모양의 조형물이 들어설 곳은 표시돼 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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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역 공사현장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구를 겨눈 장소는 현재 모두 철거되어 공사중인 상태다. ⓒ 구진영


그러나 실상은 의정부시의 홍보와 달랐다. 외교부에 확인한 결과, 시진핑 국가주석에 의해 안중근 기념관이 하얼빈역에 설치된 것은 맞지만 동상 제작 지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의정부시는 '시진핑 제작 지시 안중근 동상'에서 '중국에서 온 안중근 동상'으로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쌍둥이 동상'은 어떻게 된 걸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0월 26일 오전, 하얼빈역을 찾았다. 하얼빈역은 여기저기 공사 중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향해 저격한 하얼빈 남쪽 역사는 현재 모두 철거된 상태였고 하얼빈 북쪽 역사는 공사가 어느 정도 완료돼 운영 중이었다.

북쪽 역사 광장에서 살펴보니 동상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하얼빈역 조감도를 확인해봤더니 남쪽에도 북쪽에도 역 광장에 동상을 설치할 계획이 없었다. 하얼빈을 상징하는 눈꽃 모양의 동상이 설치된다고 표시돼 있었으나 안중근 동상 설치 예정 장소는 전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의정부시가 감사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국제문화교류원이 하얼빈역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완료되면 설치를 한다고 답했다는데, 조감도에는 표시가 안 돼 있었다. 의정부시 홍보의 사실 여부를 더 확인하기 위해 이번엔 안중근 기념관으로 달려갔다. 안중근 기념관에서 만난 관계자와 대화를 나눴다.

안중근 기념관에 물었더니...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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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기념관 입구 안중근 기념관은 하얼빈 역에 있다가 최근 리모델링 관계로 옮겨졌다. ⓒ 구진영


"하얼빈역에 안중근 동상이 설치된다는데 알고 계십니까?"
"들어본 적 없습니다."
"(의정부에 설치된 안중근 동상을 보여주며) 이렇게 된 동상이 설치된다는데 모르십니까?"
"이런 동상은 본 적 없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작 지시해서 하나는 한국에 주고 하나는 하얼빈역에 설치한다 하는데 알고 계십니까?"
"전혀 모릅니다. 혹시 당신들 대련에 있는 동상을 착각하고 하얼빈에 온 것 아닙니까?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 동상은 기념관에 있는 저 흉상 하나입니다."

이 관계자는 기념관 입구에 있는 안중근 의사 흉상을 가리켰다. 대련에 가야 할 사람들이 하얼빈에 온 것 아닌가 하며 황당하다는 듯 우릴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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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기념관 내부 안중근 기념관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안중근 의사의 흉상을 만날 수 있다. ⓒ 구진영


애초 예상했던 대로 안중근 의사 동상은 하얼빈역에 설치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2006년, 하얼빈역 앞에 안중근 동상이 세워졌지만, 열흘 뒤 중국 정부에 의해 철거된 적이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외국인 동상 건립 불허 방침'을 내세워서 동상을 철거했다. 실외에 외국인 동상은 세울 수 없다는 것. 결국, 이 동상은 2009년 부천시 안중근 공원으로 옮겨졌다.

의정부역에 설치된 안중근 동상과 똑같은 동상은 하얼빈역에 세워질 수 있을까. 이미 안중근 동상이 한 차례 철거된 바 있다는 사실, 하얼빈역 조감도에서 찾을 수 없는 동상 부지, 중국 안중근 기념관 관계자도 새로운 안중근 동상을 모른다는 정황까지. 이 모든 것을 종합해봤을 때, 동상 설치는 불투명해 보인다.

안중근 의사가 자신을 묻어달라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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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린 공원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모의했다는 장소로 잘 알려져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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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린 공원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는 비석이 서 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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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린 공원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모의했다는 장소로 알려져있다. ⓒ 구진영


안중근 기념관을 나와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논의했다는 자오린공원(兆麟公园)으로 향했다. 자오린공원의 10월 26일은 늦가을에 접어들어 있었다. 커다란 버드나무들이 밝은 노랑 빛을 내며 108년 전 그날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대학 때 '현대시론'이라는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교수님이 백석의 시를 이야기하며 "이 얼마나 고민한 문장인가!"라고 감탄하신 적이 있다. 그때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는데, 자오린공원을 들어서니 그 시가 떠오르며 이해되는 듯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안중근 의사는 유언으로 자신을 하얼빈 공원(현재 자오린공원)에 묻었다가 독립하거든 조국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왜 하필 이 공원에 묻어달라 했을까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된 듯하다. 안중근 의사는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자오린공원에서의 결의를 잊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죽인 이유를 15가지나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일본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중근 정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108년이 지난 지금, 그 안중근 정신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안중근 동상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보면 그 정신은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안중근 정신은 그런 게 아니다. 의정부역 근린공원에 안중근 동상이 계속 세워져 있다는 건 안중근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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