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슈타지 닮은 '이명박근혜 국정원'

국정원 불법사찰, 독일의 파일공개운동 교훈 삼아야

등록 2017.11.03 20:55수정 2017.11.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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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운동에 동참하길 바라는 시민 또는 문의가 있으신 분은 다음의 연락처로 연락해주길 바랍니다. <시민행동> 사무처장 전문갑 010-2288-6757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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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의 한 장면. 슈타지는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비즐러는 드라이만 부부를 감시 도청하는 임무를 맡았다. ⓒ SYcomad


슈타지(Stasi), 구동독의 악명 높은 국가안전부(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이다. 계급의 적과 국가의 적을 뿌리 뽑을 목적으로 1950년에 창설돼 딱 4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동독의 비밀정보기관이자 비밀경찰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1년 전인 1988년, 슈타지는 9만1천 명의 공식직원과 18만9천 명의 비공식직원(협력자)을 고용하며 인구1700만의 동독을 불신과 공포가 만연한 상호감시사회로 타락시켰다. 

국민 셋 중 하나를 국가의 적으로 사찰한 빅 브라더, 슈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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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밀케(Erich Mielke) ⓒ 독일 연방 문서보관소


"내가 원하는 건 우리나라 사람 각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알아내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배신행위를 예방하고 제압할 수 있다."

슈타지 장관으로 무려 34년 동안 군림하며 동독을 사찰국가이자 밀고사회로 변모시킨 에리히 밀케(Erich Mielke)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밀케가 꿈꿨듯이 1984년의 동독은 이미 슈타지가 모든 것을 엿보고 엿듣는 빅 브라더 지배사회였다. 

밀케의 발언내용을 접하면서 나는 정부비판세력을 상대로 한 심리전수행을 국정원의 당연한 역할로 강조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떠올렸다. 그는 심지어 검사들에 대해서도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쇼킹한 발언을 일삼았다.

'10년 좌파정권 기간에 신규 임용돼 그 행태에 길들여진 젊은 검사들은 그 성향이 쉽게 안 바뀌지만 보수정권에서 임용돼 제대로 일하다 좌파정권 당시 때가 좀 묻은 중견검사들은 교육해서 다시 쓰면 된다'고 했다던가. 그는 반정부=좌파=친북성향 도식에 따라 비판세력에게 빨간딱지를 붙여준 후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수행하는 걸 자신의 사명으로 착각하고 권력을 제멋대로 행사했다. 

슈타지 장관 밀케는 체제수호를 목적으로 무려 6백만 동독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정보파일을 만들어 관리했다. 국민 셋 중 하나를 국가의 적으로 의심하고 옴짝달싹 못하게 사찰했다는 뜻이다. 우리정보기관이 중앙정보부 이래로 관리해온 사찰대상 시민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국정원 적폐청산은 현재의 개인과 단체사찰 규모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 나아가서 그 가운데 국내보안정보와 무관하게 정권안보와 사회통제 목적으로 작성, 관리해온 정보파일을 삭제, 폐기하는 데서 시작한다.
  
슈타지기록이 파기되지 않고 보존, 공개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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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2월 6일 윤병세 외무부 장관이 독일 연방슈타지기록소를 방문했다. ⓒ 연방슈타지기록소(BStU)


독일연방에는 연방슈타지기록소라는 정부기관이 있다. 1990년 2월에 문을 연 연방슈타지기록소에는 2012년 기준 1708명이 일하고 있었다. 슈타지기록 소장은 지금까지 예외 없이 동독시절 반체제인사로 내몰려 고초를 겪었던 유명한 반대자들이 맡아왔다. 개인파일 보관서가의 총연장길이만 무려111킬로미터. 여기에 통독당시의 동독인구 1700만 가운데 무려 600만 명에 대한 비밀정보파일이 180만 장의 사진과 슬라이드 자료와 함께 빼곡하게 꽂혀있다.

슈타지는 1989 년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직후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서분쇄와 파기, 소각에 들어간다. 1989년 12월 4일 에르푸르트시의 슈타지 지부건물 굴뚝에서 평소와 달리 검은 연기가 올라온다. 슈타지가 문서소각공작에 들어간 사실을 직감한 시민들은 슈타지 건물로 몰려가 시설을 점거, 장악한다. 드디어 1990년 1월 13일 동독 호네커 정권이 무너지고 동베를린에 있는 슈타지 본부건물이 시민에게 점거됐다. 이 날로 동베를린 등 13군데에 있던 모든 슈타지 건물과 기록이 전적으로 시민통제에 들어가 모든 기록이 보존된다. 역사는 슈타지가 이때부터 기능을 멈췄고 1990년 2월 8일 공식적으로 수명이 다했다고 기록한다.

베를린장벽 붕괴 직후부터 한두 달 사이 슈타지가 밤낮으로 분쇄한 사찰기록은 보유기록의 5%가 넘는 4500만 쪽이었다. 문서분쇄기를 24시간 돌리다보니 대부분의 기계가 열을 받아 며칠 지나지 않아 고장이 났다. 이때부터 슈타지 직원들은 서류를 손으로 찢어서 자루에 담는다. 운 좋게 불태운 서류도 있지만 미처 소각하지 못한 대부분의 파손분쇄기록이 1만6000자루 가득 남아있는 상태였다. 1995년부터 연방슈타지기록소는 6억 조각으로 찢어진 이 자루기록의 완전한 복원을 진행 중이다. 분쇄기가 고장 나서 손으로 한번 찢고 자루로 들어간 서류처럼 복원이 용이한 서류도 일부 있지만 분쇄기에 잘게 잘린 기록도 많다. 완전한 복원까지는 앞으로도 최소한 20년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호네커가 실각하고 드 메이지에르가 동독의 과도정부를 맡던 시절부터 동독인들은 슈타지 기록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봉인파와 개방파는 각각의 논리로 무장했지만 개방파들이 승리했다. 주로 동독의 기득권세력들로 구성된 봉인파들은 슈타지 직원에 대한 보복위험과 사회분열을 우려하며 봉인을 주장했다. 개방파들은 시민들의 알권리와 과거청산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동독지역 시민들은 물론 서독지역 시민들도 개방론자의 손을 들어줬다. 1991년 말 연방슈타지기록법이 통과됐고 그에 따라 1992년 1월 2일, 베를린 소재 슈타지기록소가 시민의 신청을 받아 본인문건공개를 시작했다. 역사적인 날이었다.

2015년까지 290만 명이 넘는 구동독출신 시민들이 본인의 슈타지 파일을 공개신청하고 열람했다. 2014년에도 4만1천 명이 본인기록 열람을 신청했다. 외국인도 본인에 대한 슈타지 파일 열람을 신청할 수 있다. 동독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티모시 가튼 애시(Timothy Garton Ash)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의 파일내용을 소재로 책을 펴냈다. 2015년 1월 9일부터는 슈타지 파일의 아주 작은 일부가 온라인으로 모든 시민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2500쪽의 사찰기록, 250개의 사진자료, 6시간 길이의 녹음, 15시간의 다큐 필름이 그것이다. 밀케가 동독시민 중 국외여행자를 다루는 방법을 90분간 특강한 녹음테이프도 들어있다.

시민들은 자신에 대한 슈타지 파일을 직접 열람하고 복사를 요청할 수 있다. 1991년 겨울 독일정부가 슈타지 파일에 대해 비밀분류를 해제할 때 사찰당한 시민에게 본인기록접근권한을 주는 문제와 함께 언론에 취재목적의 기록접근권한을 주는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결과적으로 첫째, 18세 미만 청소년이나 전직 슈타지 직원에 대한 파일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으며, 둘째, 다른 정보파일에 대해서는 언론의 취재요청이 있으면 공개하되 개인정보를 지우고 준다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본인사찰기록 확인 당시의 다양한 반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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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5월 24일 이경수 주독일 대사가 연방슈타지기록소를 찾았다. ⓒ 연방슈타지기록소(BStU)


반체제인사로 찍혀서 슈타지의 사찰대상이 된 동독출신 저명인사들은 대부분 1992년 1월 2일 정보파일공개 첫날 슈타지기록소를 방문해서 본인에 대한 사찰기록을 봤다. 기록을 열람하며 놀란 사람만큼이나 안도한 사람들이 많았다. 놀란 이유는 슈타지가 시시콜콜한 사생활정보나 사회활동정보까지를 믿을만한 주변사람(동료, 친구, 이웃, 심지어 가족)을 밀고자로 고용해서 기록해놨기 때문이다. 이혼한 전 남편이 밀고자였다는 사실에 충격 받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린 여성정치인도 있었다.

반면 자신에 대한 비밀정보원 제안을 받고 거절한 친지 얘기가 나오는 대목을 마주치거나 프락치 활동을 의심했던 동료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은 안도했다. 본인에 대한 사찰파일이 너무 많고 사찰빈도가 너무 잦아서 놀란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내용이 안 적혀있어서 비밀정보원한테 고마움을 느꼈다는 사람마저 있었다. 물론 징그럽게 상세한 사찰대장(예를 들면, 손님의 이름과 방문일시 기록대장)을 눈으로 보고 질린 사람도 많았다.    

당시 슈타지는 사찰대상인물의 직업적, 사회적 명예를 훼손하고 나쁜 평판을 만들어내기 위해 비밀리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수행했다. 영문도 모르게 직업적, 사회적, 개인적 삶이 파탄이 났던 사람들은 그 배후에 슈타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승진기회나 꽃보직 전보기회가 갑자기 날아가고 좋은 교육연수기회나 여가휴양기회가 슬그머니 사라진 게 알고 보니 슈타지 때문이었다.

슈타지는 말하자면 반체제, 반정부세력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심리전수행의 전문가였다. 이웃과 직장, 동종업계는 물론 가족에게도 사찰대상에 대한 나쁜 소문과 평판을 퍼뜨리고 여론을 조작해서 악마를 만들어내고 왕따를 시키는 어둠의 선수였다.

경악에서 안도까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슈타지 파일을 직접 확인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얘기가 있다. 도둑맞았던 삶의 일부를 이제야 비로소 돌려받은 느낌이 든다는 것. 슈타지에 대해 누군가가 쓴 기록을 읽고 슈타지를 이해하는 것과 슈타지가 자체 생산한 본인사찰기록을 통해 슈타지를 체감하는 건 천지차이다. 진실은 때로 상처를 덧나게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과 사회 모두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슈타지 기록을 직접 보고 나면 누구든지 아무런 미련 없이 동독시대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찬가지로 이명박근혜 국정원의 불법사찰전모와 본인사찰파일을 보고 나면 누구든지 아무런 미련 없이 국정원의 정권안보시대를 끝장내자고 할 것 같다.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의 생생한 증거인 비판세력(개인/단체)정보파일과 심리전수행기록은 국정원이 저지른 갖가지 정권안보활동을 생생하게 증언할 것이다.    

슈타지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감시기술과 정보저장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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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 인정하나" 질문에 흘겨보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정치공작과 불법사찰 등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추명호 전 국익정보국장이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추 전 국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야권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의 문화예술인을 방송에서 하차시키는 일을 기획하고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추 전 국장은 “우병우 전 수석에게 비선보고 한 혐의를 인정하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전달했나”, “나라를 위해 일했다고 생각하나”를 묻는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법정으로 향했다. ⓒ 유성호


슈타지의 사찰기록이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이지만 오늘날의 정보기관은 슈타지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훨씬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슈타지의 감시기술과 사찰규모는 오늘날의 감시기술과 사찰규모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Joseph Snowden)이 호루라기를 불어 드러났듯이 미국NSA는 하루에 50억 개의 모바일 폰 위치기록을 수집하고 이메일과 접속기록을 포함해서 매월 420억 개의 인터넷기록을 수집한다. 슈타지의 40년 적공이 미국NSA의 한 달 적공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누군가를 엿보고 엿듣기 위해 슈타지는 전화 도청과 우편 검열에 매달리며 친구, 이웃, 동료는 물론 가족까지 포섭했지만 지금의 정보기관은 이메일과 SNS 등 온라인만 장악하면 된다. 슈타지기록소의 총연장111킬로미터 문서고에 가지런히 꽂힌 사찰기록정보도 지금 같으면 메모리 칩 몇 개에 충분히 들어갈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IT기술과 감시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생산과 보관, 유통이 점점 저비용, 고효율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감시사회의 망령은 슈타지 해체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고 더 고도화된 형태로 우리 곁에 와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정원이 어디까지 촉수를 뻗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국사회를 감시사회의 덫에서 빼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MB국정원과 GH국정원이 자행한 내국인 불법사찰과 심리전수행의 전모를 드러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국정원이 다시는 국가안보와 무관한 정권안보와 사회통제 목적의 정보수집활동을 하지 못 하게 하려면 지금까지 국정원이 비밀의 장막 안에서 제멋대로 자행한 불법사찰과 심리전수행, 정치개입과 사회통제의 모든 유형과 수법을 샅샅이 파악해야 한다.

'내놔라 내 파일' 시민행동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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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사찰기록 정보공개청구 시민운동 출범을 선언하는 ‘국민사찰근절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내놔라시민행동’ 기자회견이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정면 계단에서 개최되고 있다. ⓒ 최윤석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된다. 가장 좋은 것은 국정원이 스스로 전모를 밝히는 것이다. 그것이 안 되면 지금처럼 국정원개혁위를 국정원직원이 정리요약해주는 자료에 의존해서 권고하는 나약한 기관으로 만들지 말고 직접 국정원의 모든 파일과 직원, 시설을 조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 불법과 편법행태로 여러 번 해체됐어도 할 말이 없을 대통령직속기관을 바로잡기 위해 대통령이 개혁위에 특별한 권한을 못 줄 이유가 없다.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운동은 바로 시민들의 알권리와 정보인권을 행사하여 국정원의 불법사찰 전모를 파악하고자 겨냥한다. 다만 유명하다는 이유로, 다만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다만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로 비밀정보기관의 사찰을 당하는 야만의 시대는 더 이상 계속되면 안 된다.

국정원의 사찰을 당했을 것으로 우려하는 모든 시민과 활동가, 명망가들은 국정원에 내 개인파일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알권리와 정보인권을 헌법상의 권리이자 시민의 권리로 갖고 있다. 더 많은 시민과 단체가 '내놔라 내파일' 운동을 함께할수록 더 많은 불법사찰의 총체적 진상이 밝혀질 것이다. 국정원의 지난 권력남용을 청산하고 국정원을 유능한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재편할 실질적 방안은 그래야만 나올 수 있다. '내놔라 내 파일 시민행동'에 지지와 동참을 당부드린다.
#슈타지 #국정원 불법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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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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