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잃은 엄마의 새 전쟁터,
이 쓰린 무대를 주목해주세요

[군대·죽음·상처-트라우마센터를 만들자⑧] '함께'와 안은미컴퍼니의 <쓰리쓰리랑>

등록 2017.11.08 10:05수정 2017.11.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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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7일, 엄마 6명이 무용단 '안은미컴퍼니'와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군에서 죽거나 다친 장병의 엄마들이었습니다. 6명 중 5명은 본 기획의 '인터뷰이(interviewee)'기도 합니다(스토리펀딩 바로가기).

공연 제목은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공연은 일주일 전 이미 매진됐고(약 650석), 그들의 아픈 몸짓을 본 관객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긴 시간 눈물과 박수를 쏟아냈습니다. 이 글은 공연을 직접 관람한 관객의 후기입니다. - 편집자 말

군피해가족과 안은미컴퍼니가 함께 한 공연 <쓰리쓰리랑> ⓒ 안정호


군대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전쟁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국가와 싸우고, 편견과 싸우고, 슬픔과 절망에 싸워나간다.

그들 중 일부는 무대라는 새로운 전쟁터에 나섰다. 군대에서 죽거나 다친 아들의 엄마 6명이 지난 9월 17일 국립 KB하늘극장에 올랐다. 춤을 추기 위해서였다.

쓰라림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손을 잡고 겨우겨우, 느릿느릿 움직이는 춤. 위 영상은 그날 무대에 오른 엄마들의 몸짓 일부를 재생한다.

발걸음, 어깻짓, 부러진 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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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군인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거센 몸짓으로 군대를 표현하고 있다. ⓒ 최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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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군인 복장을 한 무용수가 줄에 매달려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다. ⓒ 최영모


군복을 입은 이 하나가 밤하늘 가운데 등장하며 공연은 시작됐다. 밧줄에 묶인 그의 몸은 천장을 지나 천천히 내려왔다. 군인이 가까워지자 객석에선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날 군 피해 유족 일부는 관객으로 참석했다. 국방색 모자 속에 잠긴 얼굴 어딘가에서 아이를 떠올린 것일까, 여자의 울음은 가슴을 내려치듯 깊었다. 또 다른 소리가 무대 쪽에서 들려왔다. 

"편지 보내는 거, 잘 전달받는 거야? 엄마가 보내는 거?"
"네, 바로바로 그날그날 받고 있어요."



"오빠, (입대) 동기들은 괜찮아?"
"어, 괜찮은 것 같아."

2016년 11월 15일 사망한 장병과 그 가족의 전화. 통화 속 엄마의 목소리는 반가움과 웃음을 머금었다.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라졌다. 무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호명에 답할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승우야- 승우야- 승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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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고 김준엽 하사의 엄마 김운선씨가 공연 도중 슬픈 어깻짓을 내보이고 있다. ⓒ 최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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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공연에 참여한 엄마들이 슬픈 어깨춤을 추며 울부짖고 있다. ⓒ 최영모


고통의 소리는 공연 내내 다른 모습으로 이어졌다. 한 엄마는 발걸음으로, 다른 엄마는 어깻짓으로, 또 다른 엄마는 부러진 북채를 내려 보며 내쉬는 한숨으로... 무대 위 엄마들은 군대 내 폭력과 죽음을, 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그려냈다.

"엄마 가는 그날까지 꼭 행복하길 바랄게. 동영아, 마지막으로...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동영아 정말 사랑해. 사랑한다고, 가슴 저리게 사랑해... 저는 오늘도 부칠 수 없는 마음의 편지를 아들에게 보냅니다." - 공연 중(고 고동영 일병 어머니 이순희씨)

고통과 고통 사이를 메운 이들은 안은미컴퍼니의 무용수. 이들은 군인 복장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꿔가며 연기했고, 공연 막바지 엄마들과 손을 이어 아리랑 춤사위를 만들어냈다(관련기사 : "결혼도 출산도 안 해봤지만..." '빡빡머리' 무용가, 군피해 엄마 손잡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이분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대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마음 한 곳에 있었다. 우린 점심을 함께하고 끝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힘도 내보고. 공복순 군피해치유센터 '함께'(아래 함께) 대표님이 이야기 도중 '누군가 우리 이야기를 들어 주기만 해도 좋다'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용기를 냈다.

이렇게 우리는 만나서 이 공연을 함께 만들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쓰라린 슬픔이 무대에서 춤을 춘다. 불문율처럼 금기시됐던 군대 문화는 이제 바뀌어 가야한다." - 안은미 안은미컴퍼니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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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머리 위에 향불을 얹은 안은미 '안은미컴퍼니' 예술감독이 눈을 감은 채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 ⓒ 최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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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무용수들이 죽은 군인의 몸 위에 태극기를 얹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 최영모


안 감독이 만난 공 대표는 이날 무대에 오른 6인 중 하나이자, 고 노우빈 훈련병의 어머니다. 군 복무 중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장병 가족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함께'를 만들었다.

그는 2011년 4월 24일, 뇌수막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피부가 새카맣게 변한 아들을 맞이해야만 했다. 이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군의 '규율주의'를, 자살충동과 우울증세에 시달리는 자신을 마주하며 깨달았다. 자신과 같은 군 피해자가 곳곳에 많다는 것을. 

"우리 주변엔 군에서 죽은 가족의 이야기를 꽁꽁 숨기고 사는 사람이 너무도 많아요. 자식 먼저 보내면 죄인이라잖아요. '남들 다 갔다 왔는데 왜 당신네 아들만?'이란 시선도 여전히 존재하거든요. 그렇게 가슴에 꽁꽁 눌러놓고 있다 보면 절로 화병이 생기는 거죠." - 공복순 '함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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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무대에 오른 두 엄마가 죽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은 뒤, 무대에서 내려오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최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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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무대에 오른 엄마들이 상복을 입은 채 슬픈 어깨춤을 추고 있다. ⓒ 최영모


'함께'는 군트라우마센터 설립 목소리에 힘을 보태달라고 말한다. 국가 차원에서 군 피해 가족을 책임져야 하며, 그 일환으로 치유센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함께'가 2016년 설립돼 군 피해 가족을 위로해왔지만, 민간단체가 징병제 국가의 군 피해자 모두를 돌볼 순 없다.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 국가는 언제까지 엄마에게 책임을 미룰 것인가. 

공연의 전체 내용은 아래 영상에 담겨 있다.

[풀영상]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 안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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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군인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거센 몸짓으로 군대를 표현하고 있다. ⓒ 최영모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은 채 통용되어 온 말이다. 한국에서 군대는 심신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성인 남성이라면 다 갔다 와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군대가 그렇게 '사람다운 사람'을 많이 만들어냈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람다운 사람'들로 넘쳐났을 것이다. "혹독한 시련을 겪어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은, 신화(神話)에 가깝다.

우리 사회는, 그리고 많은 사회가, 군대에서 사병들의 심신에 가해지는 혹독한 시련을 정상이자 일상으로 취급한다. 군대에서 시련을 겪으며 형성되거나 교정된 인격은, 군대 밖에서도 미덕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군대가 사병에게 요구하는 일차적 덕목은 무엇인가?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다.

무조건 복종을 당연시하는 군대 문화가 사회 밖으로 나온 것이 외국 사전에 한국어 발음 그대로 gapjil이라고 등재된 '갑질 문화'다. 갑질은 군사문화를 중심에 둔 한국 문화에 특유하거나 두드러진 현상이다. 우리는 왜 이러고 사는 걸까?

국민들에게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신체'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주요 특징이고, 군대가 그런 신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효율적인 기구였던 것도 보편적 현상이지만, 식민지 근대는 개인의 자발성을 극도로 왜소화하고 일방적 순응만을 요구했다. 학교 교육에서 남녀 불문하고 '온순 착실한 성격과 방정한 품행'만을 요구하던 일제가 '박력'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조선인을 침략전쟁에 동원할 준비에 착수하면서부터였다.

'밀어붙이는 힘'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명령에 따라 앞뒤 가리지 않고 돌격해야 하는 말단 보병에게나 어울렸지만, 곧바로 남성성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오랫동안 남성성을 대표하는 정신이자 태도였던 기개와 지조는 성가신 개념이 됐다. 부정한 권위에 맞서고 부당한 명령에 불복하는 것은 비국민적 악덕으로 재배치됐다. 식민지 원주민들을 기개 없는 박력, 지조 없는 돌격정신을 지닌 제국 군대의 사병으로 만들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 무자비한 구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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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공연 말미, 엄마들과 무용수 그리고 관객까지 하나가 돼 손을 잡고 무대를 돌았다. 이윽고 하늘에서 꽃상여가 내려왔다. ⓒ 최영모


해방 후 식민지 군사 문화의 문제점을 스스로 성찰할 여유도 없이 전쟁이 터졌다. 부득이하게 사회 전반이 전쟁의 논리에 지배됐다. 혹자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무모한 짓이 전쟁이라고 한다. 전쟁은 살인, 방화, 약탈을 정당화하고, 묻거나 따지거나 망설이는 행위를 죄악시한다.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유보한 채 아무리 무모한 명령이라도 충실히 이행하는 인간, 기계의 부품처럼 움직이며 문제가 생겼을 경우 즉각 교체할 수 있는 인간이 전시 군대가 요구하는 효율적인 인간이었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분단 상태는 지속됐고, 군사적 관점에서 국민의 자질을 규정하는 태도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는 말이 설득력 있는 담론으로 통용됐다. 물론 보통의 남성들은 '사병'으로 군대에 갔다. 사병에게 명령은 자신이 개입할 수 없는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사람 된다'는 것은 하달된 명령만을 성실히 이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전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대량 생산된 '사병형 국민'들이 군사독재 체제와 초기 개발 경제를 떠받쳤다. 기계적인 단순노동을 기축으로 한 초기 경제 개발 과정에서는 이런 국민이 유효하고 유능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개발독재'라는 작명에는 정합성이 있다.

산업구조가 고도화하고 민주주의가 진점함에 따라 군사 문화의 지배력도 약해졌다. 복종과 순응만을 가르치던 학교 교육이 변했고, 폭력적인 병영 문화도 개선됐다. 하지만 '박력'을 군인이 고수해야 할 핵심 가치로 삼고 국민 다수를 사병의 위치에 묶어두려는 요구와 그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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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손잡고 추는 가장 느리고 아픈 춤, 쓰리쓰리랑>.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눈물과 박수를 오랜 시간 쏟아냈다. ⓒ 최영모


새로운 사람이라야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에 진정 필요한 국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병형 국민이 아니라 묻고 따지고 항의하며 '명령' 자체에 개입할 수 있는 민주적 국민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정한 권위에 맞서는 '기개'와 부당한 명령에 불복하는 '지조'를 지닌 국민. 군대 문화도, 그런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군인의 진정한 본분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것이다. 현대의 군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생명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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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트라우마 #함께 #안은미 #쓰리쓰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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