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칠남매 김장, 올해가 마지막입니다

칠남매가 친정에 모여 해온 김장, 그 마지막... 가슴이 먹먹하다

등록 2017.11.12 16:34수정 2017.11.1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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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칠남매가 친정에 모여 하는 김장은 이제 그만, 여러모로 의미있는 김장이 되었다. 일부 형제의 김치는 이미 차에 실렸다. 마지막이라 올해는 두 해 먹을 김장을 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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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가 절여지거나, 씻어 건져 놓은 절임배추의 물이 빠지는 동안 틈틈이 추수를 했다. 감 따는 데 선수인 큰 형부가 올해도 많은 일을 했다. ⓒ 김현자


지난 주말(4~5일), 친정에서 김장을 했다. 친정 칠남매 모두 모여 한 김장이었다. 친정은 전라도다.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하다보니 김장을 좀 늦게 하는 편이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12월이 되어야 김장을 하곤 했는데, 동지를 일주일가량 앞둔 12월 중순에 하는 집도 많았다. 


서울은 전라도보다 김장을 일찍 하는 편이다. 이런 차이로 결혼한 후 한동안 김장철마다 혼란을 겪곤 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인데도 오랫동안 보고 자란 때문인지 서리가 오거나 추워진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12월에 하려니 짐작하곤 했다. 그런데 찬바람이 부는가 싶게 (시)어머님이 11월 초나 중순 무렵으로 김장 날짜를 잡아 통보하면서 어긋나곤 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김치냉장고가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한겨울에도 배추를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김장에 대한 생각이나 풍경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김장철에 주로 보이던 절임배추가 최근 몇 년 전부턴 한여름에도 보인다. 김장철과 상관없이 아무 때나 시간될 때 많이 담가 먹는다는 지인도 있고, 겉절이가 더 좋아 일 년 내내 겉절이만 해먹는다는 지인도 있다.

여하간 그래도 친정은 지난해까지 11월 중순~12월 초에 하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11월 첫 주인 4~5일에 했다. 그러니 대략 보름에서 한 달 가까이나 빨리 한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유례없이 김장을 빨리 한 이유는 추수를 겸한 김장인 때문이다.

다른 때는 김장 전에 형제들 각각 형편 되는 대로 추수를 거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추수와 김장을 따로 할 사정이 되지 못했고, 그래서 추수와 김장, 둘 다에 무리가 없는 날로 잡은 것이다.

"누구나 해야 하는 김장. 아예 모두 모여 하자. 그러면 일부 자식들이 가 일손을 도와도 일손이 부족해 일손 사는 일이 없을 거야. 그냥 얻어만 먹던 자식도 덜 죄송하고. 각자 김장비를 드리지만, 회비에서 공식적으로 얼마를 덜어 김장비도 드리고, 모여 먹을 것을 준비해 김장으로 인한 부모님의 경제적인 손실도 전혀 없게 하자. 이왕 준비하는 것 고기 좀 더 넉넉히 사고, 동태 몇 마리 더 사서 떨어져 사는 우리보다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려운 곳 긁어주시는 동네어르신들 밥 한 끼라도 대접하자. 모인 김에 미처 하지 못한 추수도 하자. 우리가 한나절 힘쓰면 부모님은 열흘 쉴 수 있으니까!"


그동안 우리 칠남매는 올해처럼 친정에 모여 김장을 하곤 했다. 이처럼 모여 김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막둥이가 결혼하는 것으로 우리 칠남매가 모두 가정을 이뤄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김치 양이 많아지면서. 한두 해 시간을 낼 수 있는 형제들이 달려가 김장을 돕다가 어느 해 누군가 이와 같은 제안을 했고, 한 집도 빠짐없이 모여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우리 형제들처럼 화합이 잘 되는 형제들도 드물 것 같다. 김장 때는 더더욱 화합이 잘되곤 했다. 모여 김장하는 햇수가 더해질수록 경험과 분위기만으로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손발이 척척 맞아 점점 갈수록 손쉬운 김장을 해왔다. 김장 때의 이런 화합은 몇 집이 함께 농사일을 하거나 등으로 이어져 무슨 일이든 쉽게 해내곤 하는 원천이 되었다.

해마다 김장하는 내내 웃음이 쉴 새 없이 터지곤 해 동네사람들 대부분 부러워했다. 김장을 핑계로 동네어르신들을 대접하기도 하고, 김장 때마다 특별한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둘러 앉아 많은 이야길 나누곤 했다. 그래서 몸은 힘든데도 즐거운, 축제 같은 김장이었다. 내 스스로 국보급 김장이라고 자랑할 정도로 값진 우리 칠남매의 김장은 해마다 이랬었다.

동네사람들도 부러워하던 '국보급' 칠남매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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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 김에 축하해줄 일을 축하해주고, 여러 음식을 나눠먹고, 사위도 속을 넣어 보는 등 누구나 선뜻 즐겁게 일을 하고, 아이들에게도 제대로의 김장을 알게해줘 여러모로 의미있는 우리의 김장. 국보급 김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앞니가 빠졌던 꼬맹이가 어느덧 사춘기를 맞았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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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친정 형제들이 모여 김장을 하며 많은 추억들이 쌓였고, 화합을 더 잘하게 됐고, 무엇보다 누구나 김장을 너끈히 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 김현자


이런 김장을 올해 마지막으로 했다. 올해로 87세이신 아버지와 82세인 엄마. 엄마가 설을 앞두고 입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두 분이 각각 두 번씩, 올해만 네 번이나 입원했다. 두 분이 걷잡을 수 없이 쇠약해지시는 것을 느끼며 "친정에서 김장을 하는 한 부모님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힘들 수밖에 없다"에 모두 공감, 친정에서의 김장을 접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김장 때까지만 해도 마지막 김장이 될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아니, 엄마가 설을 앞두고 원인모를 어지럼증으로 한 달 넘게 입원했을 때도, 한여름에 뇌수막염으로 다시 입원했을 때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던 것이었다.

어차피 두 분이 살아계시는 동안, 아니 한 분이라도 살아계시는 동안 김장은 할 수밖에 없을 것. '부모님의 인정상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계속될 것이다'고 지레짐작, 그래서 누군가의 "이젠 모여 하는 김장도 없애고, 농사도 그만 짓게 하자"는 말에 나머지 형제들이 "무슨 말!" 하며 펄쩍 뛰기까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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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으내 엄마를 설레게, 그리고 행복하게 했을 배추를 그렇게 간곡하게 말렸음에도 두 분이 이미 손질해 놓으셨다. 고마운 동시에 죄송하다. ⓒ 김현자


"요즘 내가 배추 보는 재미로 안사나(산다). 나도 모르게 눈과 마음이 자꾸 배추한테로 가곤 한다. 그것들 보고 있으면 가슴이 설레고 행복하다. 곡식은 밤에 자라거든. 아침마다 가보면 어느새 또 자라 있는 것이 얼마나 기특하고 예쁜지, 아침에 눈 뜨면 그것들 보고 싶어 밥하기 전에 밭으로 가 보고 오곤 한다." - (엄마)

"다른 것도 아닌 당신이 늙어서, 그래서 눈에 띄게 쇠약해지셔서 김장을 접자 하면 심정이 어떠실까? 가뜩이나 올해 병원에 많이 입원하시며 많이 나약해지고 조급해지신 것 같은데..."

누군가 형제들끼리의 SNS 공간에 털어놓은 고민에 우린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이젠 더 이상 모여서 김장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우리도 김치를 얼마 먹지 않는다. 사시사철 있는 배추로 먹고 싶을 때마다 담가먹지 뭐!"라며 선뜻 동의했던 엄마는 막상 섭섭하신지 가을 어느 날 전화너머로 이처럼 말하기도 했다. 김장 때 보니 자식들 모두에게 한 것 같다. 엄마는 몇 번 더 김장 중단의 아쉬움과 섭섭함을 돌려 말하곤 했다.

해마다 금요일 밤에 출발해 일요일에 돌아오곤 하던 나는, 이번에는 목요일에 출발해 절이는 것부터 김장을 시작, 형제들이 떠난 후 뒷설거지까지 한 후 월요일 오후에야 출발해 왔다. 그동안 형편되는 다른 형제들이 이처럼 미리 내려가 김장 준비를 하곤 했다. 마지막 김장인데다, 그동안 먼저 가 일을 많이 했던 형제들에게 보답하고 싶기도 해 먼저 달려간 것이다.

가을 들어 두 번이나 입원한 아버지가 김장을 며칠 앞둔 월요일에 퇴원했다. 함께 간 여동생 부부와 배추를 뽑아 손질해 금요일 오후에 절여도 충분할 것 같아 '아무 것도 하시지 말라'고 거듭거듭 간곡하게 말씀드렸는데도 이미 배추와 무까지 모두 뽑아 대강의 손질을 해두셨다. 그래서 일요일 오전에 마무리하려던 계획과 달리 토요일에 김장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지난 일요일. 단풍철이라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았다는데도 어떤 형제도 막히거나 하지 않고 빨리 도착했다고 한다. 몸이 불편한데도 배추와 무를 손질해두신 부모님 덕분에 여유 있게 출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부모님 덕분'을 느낄수록 아울러 드는 생각은 김장을 접길 참 잘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그 '덕분에' 때문에 그동안 부모님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의 생각과 함께 말이다. 다른 형제들도 같은 생각들일 것이다. 

87세 아버지와 82세 엄마와 함께 해온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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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 김장을 하는 동안 두고두고 마음 속에 번져 있을 추억과 한번씩 꺼내 보며 웃기도 하고 그리워도 할 사진들도 많이 쌓였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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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핑계로 참 많은 것들을 나눴다. 지난해 새로 만든 꽃밭에서 언니들이 70~80년대 유행했던 촌극을 해 우리 모두를 즐겁게 했다. 돌아보니 우리의 김장은 해마다 하는 축제였다. ⓒ 김현자


"배추가 어찌 이렇게 잘 절여졌데? 이제 다들 김장 도사가 된 것 같아!"
"그렇지? 작년보다 소금도 반절 밖에 안썼는데. 그래서 김서방하고 김치 공장 차리자 입 맞췄지!"
"이번에 김장이 특히 더 잘된 것 같아. 이번 김치 정말 맛있네! 명품 김치야 명품 김치!"
"뭣보다 좋은 것은 동네 아줌마들 손 전혀 빌리지 않고 우리끼리 했다는 거야. 배추가 잘 절여지고 물이 빨리 빠져 버무리다보니 그렇게 됐지만, 해마다 해온 김장 마무리를 잘한 것 같아 좋고. 뭣보다 엄마가 올해는 누구네 김장 해주러 가야한다는 부담이 없을 것 같아 좋네. 우리 것 해줬으니 어떻게든 도와줘야 한다는 것과 인정상 도와주는 것은 분명히 다르잖아!"
"이번 김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가지도 빠짐없이 굿이야 굿!"

사실 그동안 칠남매가 모여 하는 김장이었지만, 동네 어르신 몇 분이 꼭 오셔서 김치 속 넣는 것을 도와주곤 했다. 우리끼리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오랫동안 이어져온 인정이라 거절하지 못하기도 했던 것이다. 여하간 100% 우리만의 수고와 노력으로 해낸 김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분의 도움도 없이 우리끼리만 속을 넣었다. 간곡한 부탁에도 부모님이 배추와 무를 손질해 놓아 어쩔 수 없이 두 분의 손을 빌린 것 외에 우리 칠남매 모두의 손만으로 해낸 것이다. 해마다 큰일은 하지 않았으나 쉬지 못하고 일하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간섭하거나 소소한 것들을 해주시곤 하던 부모님은 이번에는 거의 뒷짐지고 구경만 하셨다. 그래서 더욱 의미있는 올해의 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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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칠남매가 모여 김장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많이 늙으셨고 우리는 김장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물려 받았다. 즐거움이 넘쳤던 김장들이라 아쉬움은 더 크지만 그래도 접길 잘했다. 알맞춤한 시기에 접은 것이다. 스스로 위안삼고 있다. ⓒ 김현자


"처음 김장할 때만해도 모두 모여 함께 하는데도 엄두가 나지 않아 겁나고 그랬는데 이제는 누구나 자기 김장은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모두 잘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손발도 척척 맞고 그래서 이젠 정말 엄마아빠 도움 전혀 없이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마지막이라 아쉽긴 하지만 뭐, 귀한 것 확실하게 배운 거지! 애들에게도 그동안 김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고. 이제부턴 두 분이 일을 놓을 수 있어 좋지!"

김장이 끝나고 막내가 이런 말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지간한 음식들은 그럭저럭 해먹겠는데, 김치가 여전히 힘들다"던 막내가 말이다. 사실 마지막 김장이 한편으론 아쉽고 섭섭하기도 하다. 뭣보다 부모님의 건강 때문에 접은 것이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먹먹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잘한 선택이란 것에는 변함이 없다.
#김장 #절임배추 #월동준비 #친정(부모님) #몽실가(새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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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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