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벗어달라"는 50대 가이드, 거절할 수 없었다

[킬리만자로 산행기③] 호롬보에서 키보산장까지

등록 2017.11.14 20:22수정 2017.11.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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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시오 킬리만자리 군락. 마이크 나무 ⓒ 이철영


조용필의 '표범' 찾아, 인천에서 탄자니아까지 33시간
킬리만자로 산장에서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산행 3일차 : 호롬보에서 제브라락까지


호롬보 산장에서 제브라락(얼룩말 바위)까지 가는 셋째날 산행은 고소적응일이다. 4050m의 제브라락까지 갔다가 다시 원점회귀함으로써 고소증에 대비하는 것이다.

큰 고도차가 없으므로 식생은 비슷했지만 이 구간에는 '세네시오 킬리만자리'라는 독특한 나무가 있었다. 이 작가는 그것을 '마이크 나무'로 명명했다. 생긴 모양이 영락없이 거대한 마이크였다.

큰 것은 족히 10m는 되게 보였는데, 멀대같은 녀석이 작은 관목과 풀밭 사이에서 생뚱맞았다. 어쩌면 걸리버여행기에서 나옴직한 거인족이 이곳에서 노래 부르고 놀다 꽂아 놓고 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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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와 함께. ⓒ 이철영


며칠이 지나니 항상 대열을 앞뒤로 지키는 가이드들과 친해져서 자연스럽게 호구조사가 진행됐다. 현지 가이드를 총괄하는 대장인 30대 초반의 실바노는 아주 영민하고 강건한 친구였다. 판단이 빠르고 단호해서 책임자로서 적격인 인물이었다. 척박한 사바나에서 살아남은 선조들의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 받았음이 분명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굳게 다문 입술, 강하고 맑은 눈빛은 높은 자존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가이드 시험을 통과했다 했고, 영어실력도 뛰어났다. 아마도 아프리카의 고통스런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상당한 이해가 있으리라 여겨졌다.


20대 후반의 윌리엄은 아이가 고작 한 살인데, 아내가 얼마 전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씩씩했다. 붙임성이 좋은 그는 항상 힘든 이가 없는지 먼저 말을 걸어오고, 잘 살피고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남겨진 아이와의 삶도 잘 꾸려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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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브라락. ⓒ 이철영


아우구스티노는 나와 52세 동갑이었다. 우리 나이로 치면 나보다 한두 살 많은 나이일 것이나,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산행 내내 전담비서처럼 내 옆을 지켜줬다. 그는 자식이 넷인데, 대학에 다니는 큰 아이를 자랑스러워 했고, 막내는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그는 정상 정복 이후 탈진한 이 작가의 봇짐을 하산길 내내 대신 메고 다녔다. 그의 얼굴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고단한 삶의 흔적이 배어 있으나, 넉살이 좋았고, 아주 작은 호의에도 고마워하는 따뜻한 마음씨의 동네 아저씨였다.

산행 말미에 그는 아주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나는 옷이 한 벌밖에 없다. 당신의 바지를 주면 안 되겠냐"고 욕심을 냈다. 내 바지를 벗기려 하다니 내 마누라가 알면 어쩌려고 그러시나. 7,8년 가까이 입어서 본전 다 뽑았지만 편해서 내가 아끼는 옷인데, 탐을 내다니 쩝쩝.

그러나 어찌하랴. 그의 애절한 큰 눈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절치 못하리라. 나는 아깝지만 이왕 빼앗길 것 흔쾌히 내어 주기로 하고, 덤으로 내 헤드랜턴까지 주기로 약속해 버렸다. 아우구스티노는 뛸 듯이 기뻐했고, 산행일정이 끝난 뒤 우리는 으슥한 곳에서 은밀하게 전달식을 가졌다. 소정의 웃돈까지 덤으로 얹어서.

산행의 반환점인 '제브라락'은 말 그대로 얼룩말 바위다. 4000미터의 고산에 느닷없는 얼룩말의 출현이라니, 산행객들에게는 신선한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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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좌측이 함양 양 선생이다. ⓒ 이철영


명일의 전투준비를 위해 산장에 일찍 귀환해 휴식을 취했다. 우리의 숙소는 공용식당의 2층이어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박 이사는 그 계단도 숨차지 않게 오를 것을 신신당부했다. 고산증은 순간에 오는 것이니 항상 천천히, 몸에 부하를 가하지 않아야 되는 것임을 수없이 강조했다.

보통 3000미터 이상이 되면 고산증이 오는 경우가 생기는데 다행히 일행 중에는 아직까지 증세가 나타난 사람이 없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편안히 침대에 누워 이러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중에서 제일의 입담은 부산에서 오신 '우짜노 김 선생'이었다. 음주가무의 세계에서부터 사업에 이르기까지 세상일에 정통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유쾌한 분이었다. 역마살을 인정 받은 덕분에, 집에서 짜증을 부리면 부인께서 빨리 해외 나가라고 쫓아낸다고 자랑한다.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꼴등을 많이 했고 이번 산행에서도 일부러 꼴등을 할거지만, 인생은 마라톤이므로 마지막에 잘하는 것이 진정한 일등이며 세상 사는 지혜임을 강조했다.

그는 산행 마지막에 어디론가 사라진 듯했다가, 어디에선가 다시 짠 하고 나타났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또 나름 꼴등의 지혜를 발휘하셨으리라. 유쾌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와중에 동갑내기 함양 양 선생이 비스듬히 누워있다가 뚱딴지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이 선생님, 작가들은 왜 자살을 하나요?"

명색이 이번 여행에서 작가로 불리고 있으므로 멋있게 대답해야 했다.

"아~ 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칼을 품고 삽니다. 작가는 그 칼로 자기의 살을 도려내 사람들에게 보여 줍니다. 그것이 글이고, 먹고 사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 칼이 너무 깊이 내면을 향하면 스스로를 죽이게 됩니다".

돌발적인 질문이었기도 했지만 그것에 대한, 너무도 거룩한 대답은 순간 사람들의 말문을 닫았고, 숙소의 공기는 썰렁해졌다. 눈치 없는 사람들의 폭력은 무섭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후,  아~  네~.  다시 우짜노 김 선생의 이바구가 좌중을 장악했다.

산행 4일차 : 호롬보에서 키보산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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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 그리고 황량함. ⓒ 이철영


아침 일찍부터 산행이 시작됐다. 3720m에서 4700m까지 올라가는 쉽지 않은 코스다. 고소적응을 위해 더욱 느리게 걷는 것이 주문됐고, 일행은 소걸음으로 마지막 산장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출발한 지 한시간도 되지 않아 드문드문 보이던 관목과 풀까지 모두 사라지고 크고 작은 바위만 굴러다니는 황량한 풍경이 계속 되었다.

길은 화산재로 가득하고 햇볕은 따가웠다. 사막이나 마찬가지다.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어도 될 법하다. 저 멀리 마웬지와 키보봉이 보인다. 그러나 봉우리들은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산행 중에 가장 많이 보는 건 정작 아름다운 풍경이거나 신기한 동식물보다, 앞에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일행의 뒷모습이고 그들의 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의 무게를 지고 산을 오른다.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온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 잘 풀리지 않는 사업, 자식들의 취직 등. 사내들의 배낭은 이러저런 고민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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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들의 짐 무게는 최고 30키로에 달한다. ⓒ 이철영


젊은 시절 뜨겁게 사랑하고 번식한 죄로 사내들의 배낭은 책임져야 하는 삶의 과제로 무겁다. 노래 한 구절이 계속 되뇌어졌다. 엄살 같아서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인데 그 순간에 떠올랐던 건 무슨 이유였을까.

우리가 저마다 / 힘에 겨운 인생의 / 무게로 넘어질 때 / 그 순간이 바로 /
우리들의 / 사랑이 / 필요한거죠


사랑이 필요하고 좋은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중년의 사내들은 어디로 가야 사랑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20대엔 넘쳐나는 사랑을 주체할 수 없었으나, 세상과 싸우다 치이고 밀려나는 사이 사랑은 고갈되어 버렸다. 누군가를 치유해주거나 내 스스로를 치유할 사랑의 묘약이 어디엔가 남아있을까. 해답을 얻기 위해서라도 묵묵히 산을 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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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걷는 일행들. ⓒ 이철영


8시간여를 걸어 키보산장에 도착했다. 결전을 앞둔 분위기 때문인지 키보의 분위기는 총잡이가 휩쓸고 간 서부극의 마을처럼 어둡고 무거웠다. 발걸음을 떼는 데도 상당히 힘이 들었다. 산소량이 지상에 비해서 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행들에게도 고산증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두통과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이가 많아졌다. 그러나 뾰족한 수는 없다. 일행들은 눈에 띠게 말수가 줄었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구토와 통증이 시작되었다.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것도 힘들어 중간에 토해야 했다. 그전에 다녀왔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내심 이번에도 괜찮으려니 기대했었으나 언감생심이었다.

자정에 출발해야 했으므로 일찍 저녁을 먹고 오후 6시부터 취침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행들은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킬리만자로 산행기 #호롬보 #제브라락 #키보산장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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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기행 연재했던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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