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집요했던 병장 주먹질... "도움받을 곳 없이 홀로 감당중"

[제보 취재] 선임 폭력으로 정신질환 안고 전역한 노윤수씨 이야기... 피해자 지원책은 '미비'

등록 2017.11.19 15:21수정 2017.11.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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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를 걷고, 팔목을 보여준 노씨. 커터칼로 그어 생긴 상처의 흔적이 남아있다. ⓒ 고동완


노윤수(가명·22)씨는 왼쪽 팔목을 들췄다. 일직선으로 난 자국들이 선연했다. 오른손으로 그 자국을 수차례 문질러도 꿈쩍을 안 했다.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흉터였다.

"가해자 생각이 계속 맴돌아 괴로웠어요. 괴로움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려 커터칼로 팔목을 긋기 시작했죠."

손목을 긋고 두루마기 휴지를 부지불식간에 풀어 상처를 감싼 노씨는 다행히도 생명을 지탱할 수 있었다. 칼날이 동맥을 비켜가 지혈이 가능했던 것이다. 전역 20여 일을 앞둔 올해 8월 23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로새겨진 정신적 상흔은 노씨 혼자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노씨가 하루에 먹는 알약은 수면제와 항우울제를 비롯해 11종. "사람과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다"라는 노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9일에 만난 노씨는 대구에서 경기도 문산에 가다가 하룻밤을 묵기 위해 서울역을 지나던 중이었다. 이날 노씨는 군부대에서 의무 기록을 뗄 겸, 다음날 검찰청에서 있을 가해자와 '합의 조정'을 앞두고 상경했다.

사건의 발단이 된 '폭력'은 집요하고, 은밀했다. 군에 스며든 병폐가 여전히 온존하다는 걸 보여줬다.

지속적이고 집요했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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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가 복무 당시 군 생활관에서 자필로 쓴 일기장. 폭력으로 인해 생겨났던 괴로움이 역력하다. ⓒ 고동완


2016년 12월 26일, 육군에 입대한 노씨는 올해 2월 경기도 모 부대로 '소총수' 특기를 받고 배속됐다. 노씨는 선임과 간부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정도로 일에 열심이었단다. 그러던 중 2017년 3월 중순, 선임 A씨가 노씨에게 접근했다. 노씨는 그가 자신의 정신 상태를 파국으로 몰고갈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처음, A병장(당시 상병)이 옥상으로 데려가더니 이런 말을 했어요. '일 열심히 해서 불렀는데, 힘든 거 없냐'고. 시작은 격려였는데, 제 왼팔에 10cm 짜리 문신을 보더니 자기 전역 전까지 지워주겠다며 때리기 시작했어요. 귓속말하러 다가오더니 뺨을 때리더군요."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문신. 그 문신은 노씨가 자신만 보기 위해 팔 윗쪽에 새긴 것이었다. 노씨에게 가해진 폭력의 강도는 점차 세졌다. 뺨에 이어 어깨와 팔, 가슴으로 구타 범위가 번졌다. 주먹, 손바닥, 손등, 손가락…. A씨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씨를 때렸다.

A씨는 생활관 안에서도 '감시 사각지대'라 불리는 복도 끝으로 노씨를 데려가, 손가락으로 온몸을 쿡쿡 찔렀단다. 폭력은 지속적이었다. 다음은 노씨가 군에서 기록한 내용의 일부다.

2017년 3월 중순~4월 24일. 장소: 흡연장, 취사장
"화장실에서 마주할 때면 손으로 내 몸을 후려쳤다. 복도에서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손으로 내 가슴팍을 밀치더니 웃으며 껴안았다."

2017년 4월 10일~14일. 장소: 흡연장.
"진지 공사 중 쉬는 시간에 그 병장이 누운 채로 나를 불렀다. 옆에 날 눕게 한 후, 왼팔 소매를 걷어 손으로 팔목을 내려쳤다. 아파서 몸부림치면 내 머리를 잡고 박치기를 했다. 그 병장은 '난 옛날에 진짜 많이 맞았어'라며 '너가 찌르면(신고하면) 신고한 사람은 너뿐'이라고 위협했다."

위계질서 위에서 움텄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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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가 지난 9일 상경해 군 부대에서 뗀 '의무 기록'. 정신적 증세가 악화된 노씨는 여러 종류의 약을 섭취해야 했다. ⓒ 고동완


폭력은 A씨가 내키는 대로 이뤄졌다. 노씨가 맞은 시기는 한창 부대에 적응할 이등병과 일병 때였다. '계급'의 지위를 힘껏 악용한 폭력이었다.

"맞을 때 울면서, 화내면서 '왜 때리냐'고 물어봤어요. 때린 이유가 너무 궁금했거든요. 폭행을 당할 때 왜 내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그것 때문에 때린다더군요. 그 말을 듣고 자포자기했어요."

봄이 가고, 초여름이 된 2017년 7월 초 넘어서까지 폭력은 흡연장과 생활관 등지에서 계속 행해졌다. 노씨의 고뇌도 계속됐다. 눈덩이처럼 피해가 커지는 동안, 노씨는 이 사실을 상부에 신고할까 수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노씨의 '신고 의지'는 '하극상'을 했다는 따가운 시선에서 오는 두려움과 다른 피해자의 신고를 유야무야했던 소대장(당시 중위)의 태도 때문에 꺾이고 말았단다.

"군에선 신고하려면 지휘 계통을 밟으라 하잖아요. 동기도 다른 선임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직속 간부였던 소대장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어요. 하지만 별 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더군요. 먹이 사슬처럼 소대장이 상병 B씨를 갈구고, B씨가 아래 후임을 갈궜어요."

이를 두고 육군본부 관계자는 1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B상병에 피해를 입은 장병들이 있어, 소대장이 훈계 차원에서 B상병을 지적한 것"이라며 "피해 사실은 대대장까지 보고돼 주의 조치가 이뤄졌다"라고 해명했다.

노씨는 샤워장에서 혼자 있을 때 수건으로 몸에 피가 날 때까지 문지르고, 먹은 걸 토하게 됐다. 노씨의 정신적 피해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2017년 7월 19일, 노씨는 소대장이 바뀌고서야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알렸다. 소대장이 상부에 사고 사례를 보고하면서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혼한 홀어머니·외삼촌 도움 받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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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가 펼쳐보인 진료 기록과 서울로 상경하면서 들고 온 약봉지. ⓒ 고동완


노씨와 육군에 따르면 가해자 A씨와 노씨는 이틀이 지나 서로 격리되도록 조치됐다. 군 검찰은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미 폭력이 낳은 정신적 상흔은 노씨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아픈 기억을 잠시라도 떨치려 커터칼로 팔목을 그은 노씨에게 폭력의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입원 신세를 졌던 노씨는 결국 2017년 9월 15일, '현역부적합'으로 전역했다.

지난 8월 말 전역한 A씨는 민간인 신분이 됐다. 이에 따라 수사는 의정부지방검찰청으로 이관됐다. A씨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노씨에게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거듭 사과를 했다. 뒤늦은 뉘우침이었다.

노씨는 지난 10월부터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번에 1박 2일 '외박'으로 올라온 것이다. 과거의 상흔을 잊어보려 했던 노씨는 약물과 술에 의존하는 것 같아 입원을 택했다. 지난 10월 31일까지 청구된 진료비와 입원비만 총 240만 원이 넘는다.

이혼한 홀어머니가 번 돈과 외삼촌의 도움으로 치료비를 충당하고 있으나, 늘어가는 건 빚뿐이다. 검찰에서 합의가 되거나 재판 결과로 가해자가 금전적 보상을 해준다고 한들, 노씨의 정신적인 피해는 반영구적으로 남는다. 남은 일생, 들어갈 치료비만 생각하면 노씨는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한다.

"알아보니 병원비를 지원받으려면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나 보훈보상대상자 제도를 신청하는 방법 외엔 없더라고요(관련 기사: 윤일병 엄마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신청하려면 법률적 부분을 알아야 하고, 그렇다고 지원을 받기도 까다로운데... 또 스스로 이걸 감당해야 한다는 게 괴로워요."

"군은 '우리 역할은 더 이상 끝'이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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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폭력을 당한 노씨. ⓒ 고동완


노씨는 군에서 나오자마자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다. 군에서 입은 피해를 두고 도와주겠다고 선뜻 말을 건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보훈처에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도 직접 수소문해서 알아낸 것이었다.

"연대장 포상을 받을 만큼, 정신이 멀쩡할 때는 군에서 열심히 일했어요. 나라를 지킨다는 자긍심도 있었고요. 그런데 나가고 보니 막막했어요. 상처를 보듬어주거나 피해를 구제할 제도적인 도움이라곤 없었어요. 군은 '전역하면 우리 역할은 끝'이라는 느낌? 어디에 가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해주지 않았어요."

이에 대해 육군본부 관계자는 1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복무 중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고, 그 피해로 전역하게 되면 전역 이후 최장 6개월까지 군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라면서 "피해(정도)를 보고 전역한 당사자에게 지원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씨는 "지금껏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육군본부가 밝힌 지원책은 지원이 끝나는 6개월 이후엔 보훈처의 국가유공자 심의를 거쳐야만 진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지난 10월 9일 김중로 국민의당 의원이 각 군으로부터 제출받은 '구타 가혹 행위 현황'을 보면, 올해 육해공 3군의 전체 징계는 1만9872건이었고, 이중 약 25.6%에 달하는 5080건이 구타와 가혹 행위에 대한 처벌이었다.

군은 신고제도 '국방 헬프콜' 등 도입으로 자살 사고와 군무 이탈이 감소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폭력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사후 처방은 아직 미진하기 짝이 없다.

처벌은 일회성에 그치지만, 폭력으로 남겨진 트라우마는 일평생 재발을 거듭한다. 그 뒷감당은 폭력의 토양이 된 군이 아닌 오롯이 피해자,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고 있다. 노씨는 "피해를 입고 전역했지만, 일상생활을 하기도 어렵다"라면서 "무거운 짐을 피해자가 홀로 떠안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군대 #폭력 #병사 #병장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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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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