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화시대? 문재인만 바라본다고 되는 게 아니다

[분권화시대, 지역정당으로 진보정치의 미래를 모색하다] ① 연재를 시작하며 - 지역정당을 말하다

등록 2017.11.15 17:55수정 2017.11.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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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이었던 2016년 12월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 당시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촛불이 만든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다

한국의 민중들은 2016년 추운 겨울을 광장에서 보냈다. 스스로 준비하는 자발적인 정치참여,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자유발언대에서 탈정치화라는 마타도어는 설 곳을 잃었다. 오히려 바쁜 일상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던 회사원들과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로 내몰렸던 청년·대학생들에게도 정치는 일상화됐다.

정당별 국회의원 수나 헌재 재판관의 성향을 분석하던 정치평론가의 전망을 비웃듯 국회의 탄핵안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인용 판결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촛불 민중이다. 국회의원 의석수 중심의 정치구도나 정치엘리트 중심의 정치제도는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수용할 수 없음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 광장에서 나온 구호가 70년 적폐청산과 개헌이다. 전자는 친일·사대·독재·자본의 카르텔이 주도하는 정치구도 속에서 쌓여온 적폐는 포용이 아닌 결별의 대상임을 말하고, 후자는 이러한 열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면서 새로운 공화국을 설계해야 함을 의미한다.

제도 밖의 촛불정치로부터 힘을 얻어서 제도 안의 선거정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했다. 국민들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첫 걸음으로 적폐청산, 이를 담을 제도적 변화이자 새로운 청사진으로 개헌을 요구했다. 그리고 대다수 민중들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으로 개조되는 것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는 중이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지방분권은 중요한 과제다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그 후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은 불평등·불공정·불균형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러한 폐단이 쌓여가는 이유는 권력과 권한이 소수에 집중되는 독점적인 구조 때문이다. 그중에서 수도권에 정치·경제 권력과 사회·문화 혜택이 집중되면서 발생하는 불균형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지방자치가 다시 시작된 지 26년이 지났지만 지방의 현실은 '스스로 다스린다'는 자치와는 거리가 멀다.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강준만 교수의 책 제목은 지방 주민의 주권이 사실상 박탈됐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불평등·불공정·불균형이라는 한국사회의 병폐들이 집약돼 나타나는 것이 지방의 소멸이다. 지방소멸지수를 살펴보면, 2004년 소멸위험이 6개 지자체였으나 2014년 77개로 급증하고 있다. 2016년은 84곳으로 증가하면서 부산광역시의 영도구와 동구가 포함되고 있다.

지방소멸의 확산속도가 빠르고 지방의 대도시까지 확대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그 다음은 수도권이 인구절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출산율이 낮은 수도권과 대도시의 젊은 층 인구는 지방의 중소도시나 군 지역으로부터 인구가 유입돼 유지되기 때문이다. 인구절벽에 따른 대한민국의 소멸을 막고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지방의 정치·경제적 자생성이 보장되는 지방분권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다.

한편, 적폐청산을 제대로 하려면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적폐까지 청산돼야 한다. 정권교체 전후로 민주당으로 갈아타고 있는 지역의 토호세력이 늘어나고 있다. 경남에는 새누리당 전직 지방의원들이 민주당에 입당을 한다. 난파선에서 새로운 배로 갈아타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의 토호와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청산을 중앙당에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역 주민들의 직접정치를 통해서 지역적폐 청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직접정치는 촛불이후 시대적 흐름이 되었고, 분권은 이러한 시대변화를 반영한다.

지방분권은 대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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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6일 오전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엑스포에서 열린 지방자치 기념식에서 자치분권 여수선언에 맞춰 각 지자체를 대표하는 상징색깔로 접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지방분권은 크게 행정·재정·정치 분권의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행정분권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사무의 권한과 책임을 이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재정분권은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예산에서 지방정부의 재정비율을 높이기 위한 일련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분권은 중앙 정치에 대비한 지방 정치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이야기되는 지방분권이 촛불 민중의 힘에 근거하고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충정의 발로이기를 기대한다. 국회 개헌특위가 전국 순회 토론회에서 밝힌 방향은 크게 ① 경제·사회적인 여건 변화에 맞춰 기본권 강화 ② 분권과 협치가 가능한 정부형태(권력구조) 개편 ③ 실질적인 지방분권 구현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천명했고, 분권형 개헌과 관련해서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개칭하는 내용과 자치입법·자치행정·자치재정·자치복지권의 4대 지방자치권을 헌법에 명문화하겠다고 한다. 이 외에도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서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 등 자치분권의 제도적 기반 확보, 주민발의·주민소환·주민투표 등의 직접참여제도 활성화, 8:2인 국세-지방세 비율을 7:3을 거쳐 6:4로 개선, 주민참여예산제 확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행정분권과 재정분권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어느 정도 반영돼 있고, 앞으로 이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제대로 된 지방분권을 위한 대책 세 가지

지방분권에 대해서 대다수 정치세력과 전문가들이 찬성의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지방분권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 제시된 제도개선을 넘어서는 대책이 필요하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우선 행정·재정의 분권은 물론이고 '정치분권'이 동반돼야 한다. 현재까지 정치분권에 대해서는 조례를 법령에 근거하여 제정한다는 독소조항을 개정하겠다는 수준이다. 하지만 정치분권은 이보다 훨씬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의 정당정치에서 과도한 중앙집중이 정치분권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방의원이 사실상 국회의원의 선거운동 조직책인 상황과 주민이 아닌 중앙당에 민감한 현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정치분권이 실현돼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지방정치의 권력분립'이 병행돼야 그 의미를 제대로 할 수 있다. 현재의 강(强)시장-약(弱)의회 지방정치에서 행정과 재정의 권한이 지방으로 이양된다는 것은 결국 지방자치단체장의 권력만 막강해지는 것이다. 분권이 오히려 봉권 영주를 탄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특히 대다수 지자체에서 단체장과 지방의회의 다수정당이 일치하는 정치구도에서 지방의회가 단체장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의회의 전문성과 권한을 높이기 위해서 유급제 등을 실시하고, 지역 정치에서의 일당독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당공천과 기초의원 중선거구제 등이 도입되었지만 아직은 부족한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주민주권'이 실현되지 못하면 다분히 주민과 정치-행정을 분리시키는 엘리트주의적인 정치로 머물게 된다. 정치분권과 지방정치의 권력분립만으로는 지역주민들이 지역정치의 주인으로 나서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예산제나 주민소환, 주민투표, 주민발의 등의 제도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그 법적 근거인 조례만 보더라도 주민참여의 수준에서 지자체별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현재까지 주민참여제도의 도입 및 실행에 대한 평가 및 향후 대책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이와 함께 관변단체에 집중되는 재정지원에 대한 형평성을 확보하고, 청년과 여성처럼 정치적 약자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와 프로그램의 설계가 필요하겠다.

지역정당 운동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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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의 중앙정당 운동만 중요한 게 아니다. ⓒ pexels


지방분권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강원택 교수의 표현대로 '지방이 단순히 국가에 소속된 단위가 아닌 독립적인 단위이며, 완결된 지방이 모여서 하나의 국가가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지방정치의 독립성과 완결성이 필요하다'.

올바른 지방분권을 위한 대안적 방향으로 '정치분권' '지방정치의 권력분립' '주민주권'을 제시한 바 있다. 본인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으로 지역정당의 필요성과 그 제도화를 역설하고자 한다.

먼저 정치분권에서의 지역 정당의 역할이다. 우선 행정·재정에서의 분권을 담보하기 위해서 중앙정부의 사무와 재정을 이양받을 지방자치단체가 있지만, 중앙집권적인 정당정치의 권한을 위임받을 지역 차원의 독립적인 정당은 없다. 과거의 지구당 제도를 부활시킨다고 하더라도 중앙당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는 없다. 정치분권을 위해서 지역정당이 필요한 이유이다.

다음으로 분권은 단방제 국가에서 연방제 국가로의 전환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연방제는 지역별 독립성과 완결성이 충분히 보장돼야 하고, 정치 영역도 마찬가지다. 지역정당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한편, 대다수 정치제도들이 하향식으로 내려오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 지방자치를 위한 제도조차 중앙정부와 중앙정치에서 결정한 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주민들은 그 결정에 수동적으로 임하게 된다. 여러 가지 시혜적인 사업들보다 지역의 정치역량이 스스로 모이고 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지역정당의 제도화는 유의미한 실험이 될 수 있다.

둘째, 강 시장-약 의회인 지방정치의 권력분립을 위해서 지방의원 유급제, 정당공천과 기초의원 중선거구제 등의 도입됐으나 성과가 미비하다. 현재 단체장은 사단장이고 지방의원은 특수부대 장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앞의 제도들이 가지는 한계는 한 개 사단을 거느린 장군에 맞서서 특수부대 한명에게 식량 많이 줄테니(유급제) 열심히 싸워라, 혼자서 힘든 것 같으니 한명 더 붙여줄테니(중선거구제) 싸우라고 말하는 형국이다. 심지어 시시때때로 군사훈련 이외의 업무를 주면서(중앙정치, 공천자의 눈치보기) 말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방의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면서 지방의원들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의원들의 공천자가 전국정당의 광역시도당(실제는 지역 국회의원)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될 수 있어야 하겠다. 특히 후자의 과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지역정당이라 생각된다.

셋째 지역주민들의 직접정치를 위해서는 직접참여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직접참여제도 중에서 주민참여예산제는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그 외의 제도들은 그 적용이 미비하다. 주민소환제도를 통해서 선출직이 소환된 경우는 경기도 하남시의 시의원이 전부이다.

자치는 짜여진 틀이나 제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지역정치의 주체가 될 때 가능하다. 단체장과 의회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게 하도록 만드는 주민들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촛불항쟁의 정신은 바로 지역에서 주민주권의 정신, 지역주민들의 직접정치라고 생각한다. 이를 담을 그릇으로 지역정당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논쟁 지점 그리고 진보정치에 거는 기대

연재 '분권화시대, 지역정당으로 진보정치의 미래를 모색하다'를 준비하면서 국내외 사례나 학술자료를 검토하고, 본인이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몇 가지 논쟁 지점이 발견된다.

일단 정당법을 비롯한 법제도상의 한계로 인한 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창당조건이 완화되면 지역 적폐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강화된다는 우려가 있다.

게다가 일시적인 시도나 실패로 끝나버린 국내외의 사례를 근거로 지역정당의 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특히 진보정치의 관점에서는 전체 사회변혁의 가치를 포기하고 민족문제와 계급문제 등을 등한시하는 개량화에 대한 비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전국적인 진보정당과 대립 혹은 역량분산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러한 우려와 비판이 건설적인 토론과 공론의 장에서 합의점을 찾아가기를 기대하면서 연재를 하고자 한다.

사회를 바꾸는 운동은 열정과 헌신성을 겸비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며 시대의 변화를 선도해왔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는 실사구시의 자세, 지역에 뿌리내리는 상향식 조직건설과 다수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하는 운영이 장점이었다.

그런데 진보진영에서도 어느새 지역은 중앙에 비해서 부차적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진다. 중앙의제와 그 실천에 관심과 에너지가 집중되는 것은 아닌지? 지역이라는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중앙전선이라는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필자가 제기하는 시대의 변화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진보정치세력화의 대안으로 지역정당이 절대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연재와 논쟁의 과정에서 본인의 입장이 설득되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보정치의 구조와 방식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발버둥이라고 치고 싶은 심정으로 논쟁적인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와 동시에 본인이 살고 있는 경남 진주에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지역정당의 필요성과 그 구현방도에 대해서 실천적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불평등·불공정·불균형의 적폐로 인해 절벽으로 치닫고 있는 지역과 대한민국을 지속가능한 사회로 변화시키는 정치, 국민(民)이 주체가 되는 정치를 꿈꾸면서...

[연재 순서]
① 연재를 시작하며 ; 분권화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지역정당을 말하다
② 정권교체이후 적폐청산의 사각지대, 지역의 적폐!
③ 지방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유력한 방도, 지역정당
④ 지역정당 제도화를 위한 필요조건, 정당법 개정
⑤ 미래세대의 삶의 방식인 자발성과 창의성이 정당정치에도 구현되어야
⑥ 청년 × 여성 × 지역, 지역정당
⑦ 지역정당은 진보정치세력화에 부합하는가?
* 본 순서는 연재 과정에 발생하는 논쟁 지점에 따라서 변경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최승제씨는 행정학 박사(지방자치전공)로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입니다.
#지방분권 #지역정당 #지방소멸 #진보정치 #정당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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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박사(지방자치전공)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 통일경제포럼 운영위원장 지방소멸연구소(준) 대표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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